요즘 들어 부쩍 퇴사와 관련한 글을 작성하게 된다. 이는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아마도 요즘 내 마음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싶은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글을 주로 보게 될 취준생들 입장에서는 배부른 소리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직장 생활을 막 시작한 사회 초년생이나 연차가 제법 된 중년 사원들에게는 아마 공감가는 이야기일 수 있다. 필자의 글들이 다양한 독자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이유는 직접 겪었고, 보았고, 느꼈던 일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오늘도 사직서를 제출해 버릴까 고심하다 전자결재 임시 저장 버튼을 누르고 집으로 귀가하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직장 생활이라는 것이 일견 아무 것도 아닌 것같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을 것이다. 정말 직장 생활이라는 것이 별거 아니라면 망설임 없이 한 번 기분이 얹짢아도 참지 않고 냉정하게 사직서를 제출하고 왔을 것이다. 하지만 직장, 돈벌이라는 것이 생각만큼 그렇게 쉬운 일이, 만만한 일이 아님은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상을 해보자. 내일 아침에 팀장에게, 아니면 담당 임원에게 사직서를 제출한다면 회사에서는, 아니 각각의 동료 직원들은 어떤 반응들을 보일까?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고심하고, 또 고심해, 심지어 다소 미안한 마음에 내민 사직서를 전달받은 내 상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인사업무를 오래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직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직장 생활이 힘들어서 그만두려는 직원, 같이 일하는 동료 직원 때문에 힘든 직원, 관리하는 부하 직원 땜에 골치 아픈 상사까지 두루두루 많은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그 중 생각나는 사례가 있어 몇 개 엮어 볼까 한다.
예전에 같이 근무하던 직원 이야기다. 그 직원은 늘 불만에 가득차 있던걸로 기억한다. 회사와 경영진에 대해 비난과 냉소로 가득했고, 결론은 늘 퇴사하고 싶다고 귀결되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그 직원의 해당 팀장으로부터 해당 직원이 업무적으로, 태도적으로 늘 마음에 안들어 리더로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라는 하소연을 듣게 되었다. 그들 둘의 말을 듣는 중간자적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퇴사하고 싶은 직원과 그 직원이 퇴사하기를 바라는 리더가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안한 마음에 서로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스트레스를 참지 못한 해당 직원이 결국 팀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는데, 팀장이 그 직원에게 사직의 이유를 묻거나 다시 생각해 보라고 권유하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서 바로 수리가 된거다. 사실 그 직원은 본인이 사직함으로써 조직에 끼치게 될 안좋은 영향과 업무 Load 때문에 미안해서 오랫동안 사직서를 제출하지 못하고 망설이기만 했었다. 그러면서 사직서가 수월하게 수리되어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한편, 팀장이, 회사가 자기가 사직서를 가지고 오길 기다리고 있었던건 아닌지 다소 실망스런 상황에 안타까워 했다. 옆에서 이 상황을 모두 지켜본 필자로서는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지? 눈치가 심각하게 없는건가?’라고도 생각했지만, 누군가도 필자를 그리 생각하는데 나만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겸손한 마음으로 더 이상은 말해주지 못했다.
또 다른 직원의 Episode를 얘기해 보겠다. 그 직원은 요즘 세상에 귀하디 귀한 희귀 직종의 엔지니어로서 회사 설립 단계부터 공채로 입사해 선배들의 귀여움을 독차지 해왔었고, 회사 건설 초기부터 직원들과 함께 부대끼고, 고생해 사람들과 끈끈한 유대감까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직장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다른 좋은 기회를 찾아 사직서를 제출했다. 물론, 해당 팀장은 펄쩍 뛰었고, 위에 보고 하지 않을 테니, 일단 일주일 정도 휴가가서 머리 좀 식히고 오라고 타일렀다. 일주일 휴가를 사용하고 돌아온 그 직원은 이후에도 퇴사할 것을 일관되게 주장했으나,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경영진 보고 이후에도 경영진 역시 그 직원과 친한 사람들을 시켜 그 직원이 계속 회사에 남도록 설득해 보라고 지시했다. 이후 그 직원은 친한 선후배들과 매일같이 술자리를 가지며 함께 고생했던 지난 날들을 회상하고, 괴로움을 토로하며 거의 한 달을 보냈지만 사직하고자 하는 마음은 변치 않아 결국 임원들이 직접 가족들을 만나 회사에 남아줄 것을 설득하는 일까지 벌어졌었다.
그 직원이 결국 회사를 그만두긴 했지만, 주변 직원들에게 주는 울림은 상당히 컸다. 부득이 직장에, 선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퇴사를 하게 되었지만, 이직하려던 그 회사에서도 이 직원의 상황을 인지하고 입사를 포기할까 노심초사하며 그 직원을 잡기 위해 오히려 더 좋은 보상 조건을 제시해 모셔(?)갔다.
그간 상당수의 퇴직 사례들을 보고, 들어왔지만, 대표적으로 대별되는 극단적 두 사례를 소개해 보았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이 글을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시는가? 아니 그보다 '내가 사직서를 제출하면 직장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를 생각해 보셨을까? 직원이 사직서를 제출하면 재직하던 직장에서는 예의상 한 번쯤 사직서를 반려하고, 다만 짧은 기간이라도 한 번 더 생각해 볼 유예 기간을 주는 것이 통상적이다. (한 번의 사직서 반려로 본인이 우수인재, 핵심인재라는 착각은 흔히들 하는 오해다) 그런데 제법 오랜 시간 재직한 조직에서 그 정도의 예의조차 차리지 않는 대접(?)을 받았다면 당사자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
‘사직서 수리가 안될까봐 걱정했는데, 시원하고 좋네’라고 생각할까? 아마도 유사한 상황을 경험해 본 분들은 서운했던 당시의 감정이 생생히 떠오를 것이다. 직장에 그나마 있던 정나미도 떨어지고, 불쾌한 감정까지 느꼈을 것이다. '내가 인정을 못 받았나?', '내가 일을 못했나?', '내가 이 조직에 당장 없어도 되는 존재인가?' 라는 자괴감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돈과 금전적 보상만으로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인정, 칭찬, 격려와 같은 비금전적 보상이 오히려 개인의 존재감과 자존감에는 훨씬 더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나 중심으로만 바라보며 ‘확 사표를 던져버릴까?’만 생각하기 보다 내가 사직서를 제출하면 직장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뭐라고 해줄지를 한 번 생각해 보자. 직장 생활이 금전적 이득을 취하고, 돈 많이 버는 것이 전부인 것같지만, 같이 일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만큼 불행하고, 비참한 것이 없지 않을까? 사실 사직서를 제출한다는건 상대방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나 배려라기 보다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 나 자신에게 겁이 나서 제출을 미루는 것일 뿐이리라. 그렇다면 사직서 제출에 대해 그 이후 나 자신이 느끼게 될 마음을 고려해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사직서를 당당히 제출할만큼 내가 조직에 기여했는지,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같이 생활하게 되어 직장 생활이 심심하지 않았다거나 일하면서 많이 의존하고, 기댔었는데 아쉽다는 정도의 위로만 받아도 성공한 직장 생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