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추워진 날, 찰떡을 먹으며
*젊은 시절의 엄마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엄마는 병약한 할머니가 되어 자신의 지난 시간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지금껏 엄마 곁에 머물 시간이 많지 않았던 나는, 이제라도 엄마의 옛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엄마의 이야기>
-찹쌀 이야기-
여름 더위는 사람을 쓰러뜨렸다.
한여름 타는 볕에도 농사일은 멈출 수 없었다. 농약이 없던 시절, 여름 잡초는 맹렬하게 돋고 커다랗고 끝이 날카로운 호미 하나를 전투 무기 삼아 땡볕에 엎드려 잡초를 갈아엎었다. 등을 태우는 볕과 땅에서 솟는 열로 숨이 턱턱 막히는 낮시간을 농사일로 보내다 보면 더위를 먹어 밥도 못 삼키게 까라졌다.
그럴 때면 찹쌀을 절구에 갈아 죽을 쑤어 먹었다. 좀 나으면 찹쌀밥을 지어먹었다. 그러면 용하게도 한 이틀이면 털고 일어나 다시 일하러 나갔다. 약도 병원도 없던 시절 찹쌀은 농사꾼의 치료제였다.
찹쌀은 멥쌀보다 들이는 수고에 비해 수확량이 적어서 많이 심지는 않았다. 넓은 논을 가진 이는 많이 심어 팔았지만(찹쌀은 귀해서 비싸게 팔렸다.) 논이 적은 이들은 식구들 먹을 만큼씩만 심었다. 그 찹쌀로 명절이면 찹쌀가루 사이사이에 콩과 팥을 켜켜이 넣어 떡을 쪄먹었다.
-목화이야기-
어린 목화 열매는 달착지근한 맛이 나서 아이들이 지나며 따먹었다.(다래 같은 맛이 난다.) 열매가 익으면 갈라져 하얀 솜이 몽글몽글 퍼져 나온다. 그 솜을 따서 씨를 빼낸 후 북실북실하게 부풀려(솜활을 퉁겨서 솜을 일으킨다.) 고치를 말고 물레에 돌려서 실을 잣는다. (목화솜을 넓게 펼친 후 그 위에 고치 말대를 놓고 손바닥으로 비벼서 감은 후 말대는 빼낸다.) 콩가루를 입혀 실의 강도를 높인다.
집집마다 목화를 심고, 물레를 돌리고, 옷을 만들어 입었다. 수십 번의 반복된 손길 끝에 실이 나고 천이 만들어지고 옷이 재단된다. 어마어마한 노고 끝에 한 장의 옷이 지어진다. 입을 옷을 다 집에서 만들어 입던 시절, 노동으로 일상을 영위하던 그때는 잠시도 허리 펴고 쉴 시간이 없었다. 먹을 것, 입을 것을 비롯한 생활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는 얻을 수 있는 게 없었다.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진 날, 엄마와 찰떡을 먹으며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다.
목화에서 실을 잣고 옷을 만드는 과정은 엄마의 설명을 들어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아 자료를 찾아본다. 상세한 설명이 붙은 내용을 읽어보지만 직접 본 적 없는 장면은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패스트패션(Fast Fashion) 시대. 옷도 일회용품처럼 쉽게 사서 입고 쉽게 버리는 요즘. 한 벌의 옷을 위해 숱한 노고를 들이던 시절을 돌아보면 지금 우리는 너무 감사를 잊은 듯하다.
어린 엄마는 입맛이 까다로워 안 먹는 음식이 많았고, 그렇게 일상이 고단하던 시절임에도 외할머니는 그때마다 엄마를 위한 대체 음식을 따로 만들어 주셨다고 한다. 엄마는 까탈스럽게 굴며 힘든 외할머니를 더 귀찮게 한 어린 자신을 후회한다. 어린 시절 나도 역시 그랬다. 한 입만 먹어보라는 엄마 말을 단칼에 자르며 끝까지 입에 대지 않던 음식이 많았다.
이제 나는 엄마 입맛에 맞는 어떤 음식을 만들어 드릴까 고민한다. 씹는 데 부담되지 않고 소화에 무리되지 않으며 엄마 입맛에 맞는 그런 음식을 찾는다. 어린 나를 위해 수고를 들이던 엄마처럼, 엄마를 위한 음식을 준비하고 싶다. 바깥 활동이 쉽지 않은 엄마가 잠시나마 먹는 즐거움에라도 빠질 수 있다면 좋겠다. 이럴 때는 내가 손맛이 좋은 사람이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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