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이야기_병약한 막내의 결혼
*젊은 시절의 엄마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엄마는 병약한 할머니가 되어 자신의 지난 시간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지금껏 엄마 곁에 머물 시간이 많지 않았던 나는, 이제라도 엄마의 옛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엄마의 이야기>
"제대로 된 농짝 하나 구경 못한 시골마을에 화려한 반닫이가 두 채나 도착하자 모두들 눈을 홉떴다. 동네 여자들이 한방에 빼곡히 끼어 앉아 시집온 새색시의 물건을 열어 구경하던 시절이었다. 그들은 때깔 고운 치마저고리에 속치마, 속바지, 버선까지 갖춘 스무 벌 일상복이 줄줄이 끌려 나오자 벌린 입을 닫지 못했다. 동네의 다른 색시들은 입고 온 옷 한 벌에 갈아입을 여벌옷 한 벌, 그렇게 단 두 벌만 갖춰 시집온 사람이 대부분인 시골동네였으니 놀랄 법도 했다. 한 성씨가 모여 살던 집성촌에서 스무 벌 의상과 화려한 반닫이는 오래 회자됐다."
어릴 적 병명도 모른 채 오래 앓아누웠던 엄마는 병약한 막내였지만 크게 귀염 받으며 자랐다. 엄마가 태어난 이후 집안이 번성하여 굶주림을 면했고 하는 일마다 잘 풀려 집안의 보배로 여겨졌다고 한다.
병약한 막내가 시집살이에 치일까 혼처를 고르고 고르다 노처녀가 되어버린 엄마를 시집보내며, 할머니는 빚을 내서까지 신접살림을 장만하셨다. 아무에게도 업신여김 당하지 말라는 엄마의 응원이었다.
그 덕에 바리바리 싸들고 시집온 엄마를 아무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일손이 더딘 새댁이었지만 타박하지 않고 도와주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가난한 삶 속에도 자식을 보물처럼 귀히 여기며 아끼던 엄마의 심성은 대물림된 것이었다.
*신접살림 : 처음으로 차린 살림살이
(*이미지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