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이야기_병약한 아이에서 허용적인 엄마로
* 젊은 시절의 엄마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엄마는 병약한 할머니가 되어 자신의 지난 시간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지금껏 엄마 곁에 머물 시간이 많지 않았던 나는, 이제라도 엄마의 옛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엄마의 이야기>
"다른 집 애들은 학교 갔다 오면 집안일하고 농사일 돕고 바쁘게 일꾼 노릇을 했지. 동네 아줌마들이 우리 집은 애들을 모시고 산다고 흉봐도, 이상하게 내 애들에게 일 시키는 게 싫었어. 내가 어떻게든 다 하고 싶었지. 애들은 일꾼이 아니고 공부하는 사람이니까 공부하고 책 읽게 하고 싶었어. 우리 집 애들이 책 읽는 모습이 나는 젤로 보기가 좋았어."
어려서 넘치게 사랑받으며 자란 엄마는 받은 사랑 그대로 자식에게 베푸셨다. 시골 동네의 아이들은 집안의 작은 일꾼이어서 하교 후에는 일정량의 집안일을 자신의 몫으로 부여받았다. 그러나 엄마는 집안일을 아이들에게 배분하는 일 없이 홀로 도맡아 감당하셨다. 혼자 애쓰는 엄마에게 넌지시 도울 일을 물으면 언제나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들어가서 책 읽어."
이전의 나는 가끔 엄마의 육아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식들을 적절한 규율 속에서 좀 더 엄하게 훈육하고, 생활패턴을 바르게 잡아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MBTI 성격 유형 중 J 성향의 비중도 만만치 않게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엄한 규율이나 규칙보다는 허용적인 공감을 바탕으로 한 엄마의 육아 방식은 나를 P 유형으로 성장하게 했다. (가령 이런 것, 하교 후 귀가 때마다 엄마가 하신 말씀,
“종일 수업 듣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른 들어가서 좀 쉬어라.”
그러면서도 종일 혼자서 집안일을 하느라 동동거린 자신에게는 한 번도 적절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셨다.)
우리 집 형제들이 야무지지 못하고 물러터진 이유가 지나치게 너그럽고 허용적인 집안 분위기 탓이라는 게 내 나름의 분석이었다. 내가 약삭빠르지 못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자란 게 엄마 탓이라는 억하심정도 좀 있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바로 옆집 살던 언니는 항상 하교 후, 동네 마실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줌마를 대신해 저녁밥을 지었다. 김치를 쓱쓱 썰어 담고, 나물을 삶아 무치고, 쌀뜨물에 된장을 풀어 찌개를 끓이며 금세 뚝딱뚝딱 반찬을 한 상 가득 차려내곤 했다. 나는 책을 손에 쥔 채 언니네 부엌 문턱에 걸터앉아 마술 공연을 보듯 언니의 재빠른 손놀림을 넋을 놓고 구경했다. 엄마의 과잉보호로 집안일을 익히지 못한 채 결혼한 나는, 결혼 후에도 일손이 느려 퇴근 후 한 시간에 걸쳐 반찬 한 가지를 겨우 만들어 늦은 저녁을 먹곤 했다.)
내가 가사 노동을 힘겨워하는 게 어찌 엄마 탓일까마는, 어쨌든 자식에게 지나치게 허용적인 유약한 부모는 되지 말자고 결심했다. 그런데 엄마가 되고 아이를 기르며 어느 날 문득 나를 돌아보니 예전 엄마와 너무나 닮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 나는 엄마가 너무 많은 자유를 줘서 늘 내가 뭔가를 선택해야 하는 게 힘들었어. 때로는 엄마가 그냥 일방적으로 뭔가를 결정해서 밀어붙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어. “
에효~
나는 그냥 엄마 딸이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