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이야기_배고픔을 함께 건넌 하얀 기억
* 젊은 시절의 엄마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엄마는 병약한 할머니가 되어 자신의 지난 시간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지금껏 엄마 곁에 머물 시간이 많지 않았던 나는, 이제라도 엄마의 옛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엄마의 이야기>
"벼농사는 하늘의 뜻에 따랐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논바닥은 마르고 마르다 쩍쩍 터졌다. 모내기 시기에 논이 마르면 그해는 벼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마른 논에 벼 대신 메밀을 심었다. 동네의 논마다 메일꽃이 하얗게 흐드러졌다. 한겨울 발목을 덮던 함박눈 같은 빛깔이었다.
메밀이 익으면 겉껍질 채 절구에 찧어 키질로 껍질을 날려 가루를 받았다. 메밀가루 반죽을 떡가래처럼 늘여 떡사슬 모양으로 썰어 끓이면 영락없는 떡국이었다.
쌀이 없는 시간, 메밀은 쌀의 자리를 대신해 허기를 끄게 해 주었다."
점심으로 메밀비빔국수를 먹었다. 엄마는 붉은 양념에 버무려진 메밀국수 한 접시를 모두 드셨다. 음식에 설탕이나 화학조미료 등을 한 알도 쓰지 않던 고집스런 엄마가 설탕 범벅인 달착지근한 비빔국수를 맛있게도 드신다.
"이상하지. 나이를 먹으니 단맛이 땡긴다. 남들이 타박해도 설탕 한 알, 미원 한 톨 안 쓰던 사람인데."
엄마는 오래전 우리 집 음식을 맛본 이모가 입맛에 안 맞아 못 먹겠다고 했다는 말을 아직도 가끔 꺼내신다. 서운함과 자긍심이 묘하게 뒤섞인 기억이다.
나는 엄마가 메밀로 만든 음식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자신의 음식 취향 따위를 드러낼 수 없는 시간을 살아온 사람. 면 요리를 싫어하고 거의 온전한 채식주의자에 가까웠던 아버지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국수나 해산물이나 돼지고기 요리는 일체 만들 수도 먹을 수도 없었던 엄마. 식탁은 늘 아버지 입맛에 맞는 음식들로 채워졌다. 자식들이 나이가 들며 하나둘 이러저러한 병증을 보이자 채소뿐이던 자신의 식탁을 이제 와 후회하며 고심하는 엄마.
엄마의 남은 시간 동안은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드시고 즐길 수 있도록 챙겨드리고 싶다. 그런데 엄마의 낡은 위는 이제 마음만큼 음식을 받아주지 않는다. 속이 아프거나 쓰린 날이 많다. 노년에는 키도, 몸무게도, 행복의 분량도 줄어든다(경험의 시간이 줄어듦으로). 적은 분량의 행복으로도 오늘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도록 낙관의 마음을 키우는 수밖에. 엄마가 잘 웃는 사람으로 오늘을 지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