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희 『아주 어른스러운 산책』
중요한 것들은 보통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알고 보면 무척 단순한 것들이니까. 너무 단순해서 잊어버리거나, 또는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니까. (P.210)
『아주 어른스러운 산책』 , 한수희 , 마루비
여의도에 살 때 '미*당'이라는 쌀국수 식당을 자주 갔다. 집에서 가깝고 맛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누구나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할 수 있길 바란다'는 식당의 취지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늘 가족과 함께 갔는데, 동행이 있는 사람들도 조용히 식사에 집중하는 그 집의 정숙한 분위기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모두 무서운 침묵 속에서 묵묵하게, 경건히 먹고 마신다. (P.32)
교토의 산조 거리에 있는 고풍스러운 커피하우스 '이노다 커피 본점'의 분위기를 표현한 문장을 보며, 나도 그곳에 앉아 아침 정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조용하고 경건하게 자신의 아침을, 자신의 식사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 침묵으로 연대하는 곳. 그런 곳에 머물고 싶었다.
타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건, 타인이라는 존재를 견딘다는 건 실로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니까.(P.201)
내향형의 사람에게 타인을 견디는 건 언제나 힘든 과제다. 그렇게 조용하게(조금은 엄숙하다 해도 괜찮다) 먹고 마시는 행위에 집중할 수 있는 식당이 가까이에 있다면. 동그란 테이블을 홀로 차지한 채, 식사를 마친 후에는 커피를 홀짝이며 여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교토에서는 오래된 것들이 낡고 시대에 뒤처진 것이 아니라 시간의 힘을 증명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P.10)
교토의 오래된 건물들이 시간 앞에 무너지지 않고 고즈넉이 늙어가는 모습이 경이롭다. 닦고 매만지고 추스르며 늙은 건물과 공존하는 사람들의 지혜가 존경스럽다. 골목을 갈아엎고 어느 날 불쑥 솟구치는 서울의 아파트를 올려다볼 때면 우리의 오늘이 가엾고 불행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은 더 잘 살 수도 있을 텐데 싶다. 지나간 것들에서 냉정하게 눈 돌리는 사람들의 찬기운이 마음을 시리게 한다. 따뜻함이 그립다. 우리는 우리의 지난 시간들을 애틋하게 만져줄 수는 없는 걸까. 퇴락하고 꺾인 것들을 치워버리는 것이 최선일까.
교토의 시내버스 기사와 승객들 이야기는 마치 우리가 오래전에 잊어버린 전생의 기억 같다. 우리에게도 앞에 선 사람의 가방을 선뜻 받아주고, 곤란을 겪는 누군가를 위해 내 선의를 기꺼이 베풀던 선량한 시절이 있었는데. 내릴 역을 혼동하는 할머니들도, 잔돈이 없는 외국인도, 버스기사와 다른 승객들의 호의와 친절에 기대어 웃음 짓는 교토의 시내버스. 그곳의 다정함과 여유로움을 닮은 모습이 이제 우리에게는 없다. 나는 아직도 그런 곳에 살고 싶은데, 내가 사는 곳은 더 이상 그런 곳이 아니다.(나도 이미 그런 사람이 아니다.) 아직도 건재한 그것을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좋겠다.
교토에 다녀온 나는 늘 바란다. 내가 걷는 골목이 아름답기를. 집집마다 자신이 사는 장소에 대한 애착이 묻어나기를, 자신뿐만 아니라 이 골목을 걷는 이웃의 마음도 한 번쯤 생각해 주기를, 무슨 일을 하건 남이 시키거나 내가 이것밖에 안 되어서가 아니라 이것이 나의 일이라는 자부심으로 충만하기를, 그럴 수 있기 위해서 이 사회가 먼저 달라지기를, 내 아이가 자라서 배관공이나 그 외의 없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노동자가 되었을 때 그 아이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면서 건강히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p228~229)
안다. 볕만 있는 세상은 없음을. 그늘이 없는 볕은 없음을. 아름다운 풍경의 뒤편에도 웅크린 어둠이 존재하고 있음을.(그래서 어느 곳에도 좋은 면만 있다는 환상은 품지 않는다.) 교토에 대해서도 역시 그러하다.
그래도, 나는 교토의 모습을 보며 간절히 바라본다. 우리에게도 자부심으로 가꾼 한 집 한 집의 정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아름다운 골목이 존재하길.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품고 당당히 일하는 노동자와 그를 향한 존중이 당연한 사회를. 전생의 기억 같은 아득함으로 그 모든 것이 영원히 사라지거나 영원한 기다림으로 남지 않기를. 그것들을 지키고 키우려는 아름다운 당신이 오늘도 내 옷자락을 스치고 지나갔음을 믿고 싶다.
* 이 글은 계엄령 발표 전에 쓴 글이다. 내가 오래 살았던 동네가 여의도이고, 이 글의 첫 문단에도 여의도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그런데 계엄령 이후 지금은 '여의도'를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출렁인다. 계엄령 발표 이전과 이후의 여의도는 다른 곳이다.
『아주 어른스러운 산책』을 읽고 가본 적 없는 교토를 마음에 품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없는 무언가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 한다. 우리에게는 한밤중에 달려와 무장군인 앞을 막아서는 사람들이, 추운 겨울 고통스러운 찬바람 속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또 그들을 응원하는 수많은 또 다른 이들이 있다. 우리는 이런 연대의 힘을 갖춘 사람들이니까.(더 무엇을 부러워하리!)
어른스러워진다는 건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뜻이었다.(p121)
* 여의도의 찬 기운 속에 어른이 되어가는 수많은 젊은 당신들께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