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아메리카노』
지난 12월 3일 헌법상 주어진 권한을 훨씬 뛰어넘은 한국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이후 미국에서도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습니다. 아메리카노의 정치통인 유혜영 프린스턴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님에 더해 미시간대학교 정치학과에서 한국과 동아시아 권위주의 정치, 제도, 역사를 연구하고 가르치시는 홍지연 교수님을 모시고, 미국에서 바라본 "한국을 알아가는 시간" 특별판을 준비했습니다.(12월 9일 방송에서)
『아메리카노』는 프린스턴대학교 정치학과 유혜영 교수와 그의 남편인 뉴스페퍼민트 송인근 편집장이 함께 제작하는 팟캐스트이다. 주로 미국 사회의 정치, 경제 및 선거 관련 이슈들을 상세히 다룬다. 『아메리카노』는 미국(America)을 알아본다(know)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12월 9일 방송분은 <특별판 : 한국을 알아가는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왔다. 그중 기억나는 내용을 정리해 본다.
정리 1
<계엄령 선포 이후 미국에서는 한국의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세계 여러 곳에서 지난 10년 동안 민주주의 후퇴 현상이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여당이 제도 변경을 통한 권위주의로의 회귀를 획책하거나 아프리카국들을 중심으로 쿠데타가 있었다. 친위 쿠데타로 의심되는 볼리비아의 쿠데타도 현재 처리 중인 사안이다.
민주주의 연구의 대가인 '아담 쉐보르스키' 교수 이론에 의하면 이번 한국의 계엄 상황은 대단히 특별한 케이스에 속한다. '아담 쉐보르스키' 교수의 이론은, 2차 세계대전 이후 1975년 기준으로 6,000불 이상 소득 수준이 되는 나라에서 권위주의 독재로의 회귀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의 물가 수준으로 6,000불은 약 3만 5천 불 정도의 소득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넘어섰다.)
그런 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정치적·경제적 수준을 갖춘 나라에서 최초로 일어난 친위 쿠데타라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나 볼리비아 등의 쿠데타는 (정치·경제적 수준 차이로 인해) 미국인들에게 먼 나라 일로 치부되는 반면, 한국과 같은 수준의 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정리 2
<정치적 양극화 때문에 계엄이 불가피했다는 주장에 대하여>
대통령이 말한 계엄의 이유는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다.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서로 다른 의견이 경쟁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고 야당에서 대통령이 시도하는 일들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통치가 불가능한 상황이므로 계엄을 발령한다는 사고가 너무 어이없다. 북한의 침략이나 국내에 암살 시도 등의 극단적 폭력이 만연하지 않은 이상 계엄 선포는 말이 안 된다. 정치적 견해 차이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공화정 체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다. 개인의 정치적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하는 게 대통령의 업무이며 역할이다. 정치적 견해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의견이 견제받는 것이 싫다는 이유로 계엄을 선포했다는 게 황당하다.
*이승만 대통령 초기의 극단적 안보 상황에서 나오던 연설문의 내용과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 내용이 상당히 유사하다. 한국전쟁 이후 '민주' 대신 '자유'라는 단어의 언급이 훨씬 많아졌는데, 그때의 자유란 '반공'을 말하는 것으로 반공이 국시이므로 반공을 위해서는 민주적 가치나 개인의 자유는 억압하고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가 펼쳐진다. 윤석열의 담화나 계엄령 선포 레토릭이 이승만 시절의 지배 사상과 유사하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해 보인다. 자유는 누려야 하는 것이지 대상화되고 수호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식이야말로 자유의 정의에 대척되는 행위이다.
정리 3
<계엄 이후 한국사회의 달라질 점 >
정치인들이 어디서, 누구에게 정보를 얻는가 하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미국 정치인의 경우 청문회를 통해 정책 전문가나 정책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의견을 취합하거나 참모, 지역구 주민들, 여론 조사, 언론 등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책이나 현재 한국의 정치·경제·사회적 현황에 대해 도대체 누구에게 정보를 얻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국회를 범죄자 소굴로 표현하고,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계엄을 선포한다는 등…, 외곡·편향된 정보만 취사 선택하여 그것에 경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치에는 두 가지 시간이 있는데, ‘일상의 시간’과 ‘헌정의 시간’이다.
평소에 정치적 견해가 다른 이들이 여야로 나뉘어 찬반 공론을 벌이고 누가 옳고 그르다는 식의 다툼이 이어지고 하는 것들은 ‘일상의 시간’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공론장이 보장이 된다면 때론 논의가 교착 상태에 빠지더라도 민주주의에서는 그게 당연한 모습이다.
그런데 헌법이 짓밟히고 공론장 자체가 파괴되고 공론장 자체를 걸어 잠그려는 행위가 있을 때는 다른 차원의 시간이 시작이 된다. 그것이 ‘헌정의 시간’이다. 이때는 정치적 양극화나 그에 따른 논의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헌법을 지키려는 사람과 무너뜨리거나 우회하려는 자들 사이에 선을 긋고 그것을 가장 최우선으로 해결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함으로써 한국은 이미 ‘헌정의 시간’으로 넘어왔다. -천관율(전 얼룩소 에디터)
탄핵은 헌정의 중단이 아니라 헌정 질서의 부활이다. 현재 계엄령 선포로 인해 헌정 질서가 무너진 상황이고 그것을 회복하는 헌법에 의한 방법은 탄핵 밖에 없다.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탄핵이다. 국민의 힘에서 제기하는 방법들은 헌법에 부합하는 합당한 방법이 전혀 없다.
*한국의 여론 조사 데이터 분석의 결과 한국은 정당별 지지자들의 이슈 양극화가 없는 편에 속한다. 미국의 경우는 이슈별 양극화가 극심한 편이다. 다만 한국은 정치 지도자에 대한 양극화가 크다.(인물 중심의 정치로 정당 정치의 제도화가 약한 편이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선거가 너무 치열해졌다. 대통령 당선 결과가 박빙으로 결정되어서 다음에는 자신의 정당이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여기기 때문에 대화와 타협에 불응하는 경우가 많다.
정치적 양극화, 선과 악으로 나와 상대를 나누어 악당을 처단하겠다는 심리는 매우 위험하다. 그러나 지금은 '일상의 정치'적 시간이 아니라 '헌정의 시간'이기에 달리 생각해야 한다. 대통령이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상대를 종북 세력으로 몰아붙여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실행을 한 상황에서 그에 동조하는 당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최대한 압박을 해야 한다.(물론 폭력 이외의 방법으로) 윤석열의 다분히 불법적인 계엄령 발령에 동조하는 정당이라면 해산을 주장하는 것이 비난받을 행동은 아니다.
한국은 대통령 임기가 5년, 의원들이 4년이기 때문에 항상 선거가 대통령 선거 전후 1년 차로 의원 선거가 이어지는 시스템이다. 대통령이 여당 의원들의 커리어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대통령의 권력이 지나치게 크다.) 의회와 대통령은 헌법상 독립적 권력을 가진 기관인데 한국은 헌법에 나와 있는 제도적 장치들의 견제와 균형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게 되어 있다.
국민의 힘에서 2017년의 탄핵 트라우마를 거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대통령이 탄핵을 받았다면 트라우마가 아니라 당이 책임을 지고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민주주의의 메커니즘이다. 탄핵에 대한 정치적 견해는 다를 수 있으나 탄핵 자체가 헌법에 맞게 진행한 정당한 행위임을 인정해야 한다.
'트라우마'란 '죽음, 심각한 부상, 또는 성폭력과 관련된 실제적 경험 혹은 위협에 대한 정서적 또는 신체적 반응'이라는 뜻이다. 정치적 권한에서 밀려난 것은 트라우마에 해당하지 않는다. 국민의 힘에서 거론하는 탄핵 트라우마란 말은 결코 옳지 않다. 한국 현대사를 돌아볼 때 2024년에 계엄령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누가 참으로 트라우마를 느낄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광주시민과 1980년 광주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이 어떤 감정에 빠졌을지 생각해 보면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그렇게 함부로 남용해선 안 될 것이다.
계엄 발령으로 인한 상황으로 가장 피해를 받는 사람은 서민들이다. 한국과 무역 교류를 하는 입장이라면 정치적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앞으로 관계를 유지할지를 망설이게 될 것이다. 그 파장과 그로 인한 경제적 비용은 누가 짊어지는가. 그것은 서민들의 몫이 될 것이다. 정치인들이, 그렇게 서민들이 지불해야 하는 그런 종류의 비용은 생각하지 않고 본인들의 정치적 비용만 생각한다는 자체가 굉장히 암울하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시위 등을 통해 살려나가는 구조다. 언제까지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시민들이 나서야 하나. 제도를 충실하게 보완해서 제도의 작동으로 민주주의의 역행을 막는 시스템이 견고해져야 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정리4
<질서 있는 퇴진이 제도적으로 불가능한 이유>
대통령이 당에 본인의 임기를 포함한 모든 안정화 방향을 일임한다고 했다. 일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의문이다. 자신의 권한을 일임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권한은 지금 대통령이 가지고 있다. 일례로 임명권을 행사하고 있다. 군 통수권은 누가 가지고 있는가. 대통령에게 있다. 제2의 계엄이 없다고 확신할 수 없는 이유다. 한동훈 대표는 헌법에 의한 선거로 뽑힌 사람이 아니다. 반헌법적 상황이다.
터무니없는 계엄령을 즉시 나서서 무효화시킨 의회나 특히 시민들의 단호한 결의가 놀라웠다. 차후에 이런 위기를 예방할 수 있는 좀 더 안정적인 지속 가능한 제도를 만들기 위한 개헌을 논의해야 한다. 일단은 헌법을 유린한 사람을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응당한 처벌을 내리는 게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