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봉 『다시, 서울을 걷다』
그렇게 다시 서울을 걸으며 깨친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모든 과거가 한결같이 '현재적'이었다는 점이다.(p7)
『다시, 서울을 걷다』, 권기봉, 알마
서울에 살고 있지만 서울을 잘 모른다. 내가 살고 있는 서울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고 싶다는 생각 중, 서울의 이곳저곳에 얽힌 역사와 이야기를 발굴하여 들려주는 지은이의 행적과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저자 권기봉은 월악산국립공원에서 자란 산골소년이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올라오게 된 서울을 탐험하며 서울에 대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이 책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근현대사의 현장인 서울의 여기저기를 들여다보며 쓴 글이다. ‘명동성당’ ‘마장동’ ‘장충체육관’ 등등 익숙한 서울의 장소를 오가며 서울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고민한 글이다. 또한 익숙한 듯하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낯설기만 한 장소들을 걸으며 서울이라는 공간과 역사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무심‧무지했는지를 깨닫게 한다.
길은 인간과 물자의 신속하고 자유로운 이동을 위한 목적만이 아닌 통제를 위한 수단으로도 기능한다는 사실. 차의 원활한 소통이 먼저고, 사람은 도로 옆이나 땅속으로 밀려나 지상을 자동차가 독차지하는 구조로 고착된 서울의 도로. 자동차에게 내어준 길 위의 권력이 다시금 사람들에게 돌아오길 바라며 저자는 서울의 교통 시설을 고찰한다.(권력자 개인의 의사로 지하철 노선이 불합리하게 결정된 일, 한강 다리 건설에 안보 개념이 가장 먼저 고려되던 시대 상황, 부실 공사와 '속도전'에 무너져 내린 성수대교 등등)
일제강점기부터 자행된 우리 문화유산 파괴 행위와, 무소불위의 독재 정권 아래 철학이나 안목 없이 저비용의 속도전을 통한 서울의 개발은 우리의 역사와 살아온 흔적을 지우는 쪽으로 무분별하게 진행되었다.
오랜 기간 켜켜이 쌓인 '기억의 공간'과 '삶의 경관'들을 오래된 탁자를 내다 버리듯 취급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p271)
저자는 역사의 뒤안길로 흩어진 우리네 삶의 흔적과 시대의 진실을 찾아 적는다. 함부로 버려지거나 일그러진 채 자부심이나 자랑스러움과는 거리가 있는 역사라 해도 사실을 사실로서 기억하기를 바란다. 네거티브 문화유산조차도 존재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역사를 단순히 고개를 끄덕거리는 지식과 앎의 차원이 아니라, 현재를 읽고 미래를 가늠하는 '현재의 나침반'으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중명전*과 같은 네거티브 문화유산의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다.(p233)
*중명전 : 을사늑약 체결 현장
독재는 흘러간 과거가 아니다. 반동의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친일부역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독재자를 우상화‧미화하는 자들의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 저자는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과 신당동 '박정희 가옥', '남영동 대공분실', '전쟁기념관', '일본대사관' 등을 찾아보고 역사의 진실을 돌아본다.
저자는 한국 근현대사의 그림자를 살피며 그림자는 애써 지울 것이 아니라 우리 역사의 중요한 부분으로 엮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역사는 흘러간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의 가늠자'이자 '미래의 지표'로서 그 가치가 영원하기 때문이다.(p334)
서울의 이곳저곳을 살피며 들려주는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내가 서울에 대해 깊이 있는 관심을 가지지 못해 왔음을 깨달았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스쳐 지나는 서울의 곳곳에 역사와 이야기가 묻혀 있음을 새삼 알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서울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제공해 준 책이다. 서울을 깊이 있게 만나고 싶은 분들께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