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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Aug 24. 2024

지부장의 수첩

짧은 리뷰

2002년이었나, 2003년이었나? 발전노조(이것도 기억이 가물가물)가 파업을 결의했다. 운동권 학생들은 파업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결의대회를 하는 어느 대학에 모여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날 발전노조와 사측이 파업 직전에 최종합의를 했다는 것이다. 파업은 없던 일이 되었고, 연대 투쟁을 위해 모여있던 학생들은 망연자실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발전노조 집행부가 개량주의라며, 파업이 노동자들의 정치투쟁인데 그걸 포기했다며 맹비난을 했는데, 그때 금속노조에서 일하던 선배가 따끔하게 한마디를 했다. 선배의 말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도 현실에 발 딛지 못하고 혁명이니 변혁이니 하는 것을 머리로만 입으로만 해대는 행태에 대한 비판이었을 거라 짐작한다. 나는 딱히 선배의 말에 반박은 못했지만 그렇다고 그 말에 수긍한 것도 아니었다. 학교를 졸업한 뒤 평화운동을 하면서 내 생각이나 태도가 바뀌기는 했지만, 그 선배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고 몸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부터다.


서른 살에 처음 들어간 월급 주는 회사가 출판사였다. 그 출판사에서 3년을 다녔는데, 생각해 보면 책 만드는 일보다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노동조합 활동하는 일에 더 열심이었다. 나는 노동운동 하려고 회사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고 돈 벌려고 들어갔으니 착실히 돈이나 벌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회사에 들어간 지 한 달도 안 되었을 때 수습사원 하나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짤리는(물론 대표이사는 법적으로 문제 되지 않는 계약해지라고 했다) 것을 보면서, 가장 우선적으로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동료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동조합 조직에 나섰다. 그때 회사에서 사회운동 경험이 있는 직원은 나밖에 없었는데, 나도 사실 노동조합 경험은 없었던지라 우리는 노동법부터 하나하나 공부해야만 했다. 언론노조와 이미 노조가 있던 출판사 분회들의 도움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활동을 했다. 그 경험이 내게는 무척이나 아프고 슬프고 기쁜, 값진 경험이었다.



<지부장의 수첩>을 읽으면서 그때가 계속 생각났다. 그때 나의 감정과, 감정이 통과한 내 몸 상태와, 비루하고 비겁한 선택을 했던 동료들과, 존엄하고 고된 길을 택했던 동료들과, 둘 사이에서 어찌할 줄 몰라 갈팡질팡하던 많은 동료들이 떠올랐다. 내게 있어서 올해의 책이 이 책이 될지 다른 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책은 근 몇 년간 나에게 가장 감정적으로 다가온 책인 것은 분명하다. 책의 저자 최수근은 연세대 어학당 노조의 지부장이다. 이 책은 그가 노동조합 결성에 나서고, 지부장이 되고, 사측과 단협을 맺는 과정에서 날마다 쓴 일기를 모은 책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1년 노조조직률은 14.1%다. 그중에 민주노총 소속이면서 제대로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노동조합 조합원의 비율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그나마도 그들 중 대다수는 이미 조직된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된 케이스 일 것이고, 직접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첫 단체협약을 맺어본 경험이 되는 노동자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최수근 지부장은 그 희귀한 일의 경험을 기록했다. 아주 덤덤하게.



감정들


책을 읽으면서 좀처럼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는데, 이 책은 심한 감정의 동요를 불러일으켰다. 이 책이 아주 강렬하게 감정적으로 다가온 까닭은 책에 담긴 최수근 지부장의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 때문이다. 먼저 방식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일기에서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그날그날 있었던 일만 서술한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때도 아주 짧고 담백하게 이야기할 뿐이다.


나는 우리가 지나치게 조심스럽다고 느낀다. 아쉽다.(23쪽)

나를 진심으로 위해서 하신 말씀이라고 믿지만 귀담아듣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지부장 임기 후에 나는 사람들에게서 버림받았다고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슬프다.(37쪽)

발목이 붙잡힌 채로 날아올라야 하는 것이 이 일의 숙명이다. 나는 무척 슬퍼졌다.(43쪽)

P는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한 채로 전화를 끊었고,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65쪽)

교수님이 이런 말씀하셨던 게 기억에 남아요. "최수근, 걔 착한 애였는데 어쩌다 그리 되었다니......"라고. 그러셨군요. 네, 그래서 저는 너무 화가 났습니다. 우리가 무슨 나쁜 짓이라도 한다고 말이에요.(121쪽)

다만 무책임하다는 비난은 오랫동안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236쪽)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 프리모 레비는 자신이 아우슈비츠에서 겪을 일을 전달할 때 전혀 감정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라고 나치에 대해, 나치에 부역한 수용소 내 유대인들에 대해 감정이 없었겠나. 그렇지만 그는 최대한 담백하게 사람들의 행동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이야기한다. 첫 출판사를 그만두고도 나는 한동안 페이스북에 그 회사 이야기와, 진보인사로 이름난 대표이사 이야기를 쓰곤 했다. 그 당시 글은 무척이나 날 서 있었고, 감정적이었다. 나를 페이스북으로만 알던 사람들은 내가 뾰족한 사람이라고, 혹은 미움에 사무쳐서 날카로운 사람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내가 그런 글을 올리면 사람들은 좋아요를 누르거나 공유하며 함께 윤OO을 욕해줬지만 어쩐지 나는 갈수록 충만하기보다는 비워지는 느낌이었다. 미움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프리모 레비의 글이 좋았던 건 사람들에게 나치에 대한 미움을 강요하지 않아서였다. 레비는 자신의 감정을 독자들에게 강요하지 않았고, 담담하고 담백한 서술을 통해 독자들이 직접 자신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줬다. 최수근 지부장의 글은 그런 지점에서 프리모 레비와 무척이나 닮았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일기에선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드러내더라도 이처럼 짧고 담백하게 표현할 뿐이었다. 그가 빈칸으로 채워둔 공간에는 고스란히 내 감정이 채워졌다.


책을 읽는 동안 내 감정이 격했던 까닭은 나 역시 비슷한 경험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벌써 15년 전이지만 여전히 생생한 감각으로 살아있는 감정들. 그 사례들을 주저리주저리 몇 줄을 쓰다가 바로 지웠다. 다시 미움과 분노에 잠식당하고 싶지 않아서. 최수근 지부장이라고 그런 일들이 없었겠나. 어디 가서 이야기하기에도 창피한 일들, 이야기한들 제대로 공감해 주는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운 일들. 최수근 지부장이 담백하게 드러난 감정들, 그리고 드러내지 않은 감정들의 사연을 나는 알 것만 같아 이 책을 읽는 내내 숨이 막히고 장이 꼬이는 느낌이었다. 나에게는 정말 어려운 것은 대표이사나 사측과 싸우는 일이 아니었다. 조합원 사이의 갈등이나 이견, 회사가 던지는 떡고물에 흔들리는 이들. 그리고 의도적이고 노골적으로 조합원 내 갈등을 부추기는 회사. 이런 것들이, 차마 공개적인 글로 쓸 수는 없는 일들이 노동조합 활동의 가장 큰 슬픔이었다. 아마도 최수근 지부장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일기장에도 쓰지 못한, 일기장에는 썼지만 책으로는 출판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을까. 지부장이기 때문에 꾹꾹 눌러야만 했던 감정들이 마치 내가 느꼈던 감정처럼 여겨져, 나는 하지 못했던 그래서 조금은 후회하는 일들인 것만 같아 이 일기가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만약 내가 최수근 지부장처럼 감정을 이처럼 꾹꾹 눌러서 일기를 썼더라면, 나 역시 그처럼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통찰들


노동조합 활동은 때로는 당사자에게 인간에 대해, 세상에 대해, 그리고 사회운동에 대해 큰 통찰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최수근 지부장의 일기에도 이런 통찰이 자주 등장한다.


나는 P의 제안이 타당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가 타당하냐는 감각이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도 여긴다. 사울 알린스키는 "사안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일수록 당위를 논한다."라고 지적했다. 무엇이 옳은지를 말하는 것은 쉽지만 실제로 그 길을 걸어가고 그 일을 되게 하는 사람은 당위를 넘어선 결단을 내리기도 한다는 것이다.(64쪽)

사람들이 나뉘어 서로 오해하고 대립하는 일은 노동조합에도 있다. 실은 더 흔하지 않나 싶다. 조합은 수면 아래에 있던 갈등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93쪽)

단체교섭을 비롯한 여러 노동조합 활동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인데 사명감만 반복해서 강조한다는 건 어쩐지 히포크라테스 선서만 외우게 하고 의술은 안 가르치는 의학대학 같은 느낌이다. '투쟁 현장이야말로 최고의 교실'이라는 말은 그럴싸하긴 하지만 무책임하다.(131쪽)

사람들의 다정함을 매번 실감하는 것이 조합 활동의 큰 기쁨이고, 사람들의 매정함을 매번 실감하는 것이 조합 활동의 큰 괴로움이다.(156쪽)

혼란스럽다. 노동운동을 할 때, 어째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결실은 운동을 하지 않는 자들과 공유되어야 하는가가 나에게도 오랜 숙제다. 투쟁의 결과가 온전히 노동조합의 것으로 독차지되었다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모두 얼굴을 모르는 투쟁가들이 얻어 낸 결실의 혜택을 보고 있다. 그러나 투쟁가들은 투쟁하지 않는 자들에게 어리석다는 비난을 받고, 투쟁의 결실이 공유되지 않으면 투쟁한 자들은 부도덕하다고 비난을 받는다. 출구가 없어 보이는데, 이런 출구 없는 상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굳이 투쟁을 하는 이유는 뭘까. (281쪽)


그가 남긴 생각들, 질문들, 대답을 따라 읽었다. 나 또한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나마 활동가로 제대로 구실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노동조합 활동을 경험한 2012년 이후다. 현실성, 구체성을 가진 고민과 생각들이 노동조합 활동에서 발견할 수 있는 통찰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야 비로소 현실에 발 딛고 사회운동을 하는 활동가가 되었다. 그전에는 병역거부를 하고 감옥에 가면서도 나는 줄곧 내 주장을 펼치기만 했었는데, 노동조합활동을 하면서는 어쩔 수 없이 지극히 현실적이고 모순적인 사람들(조합원)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설득을 하고 이견을 조율하는 일이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옳은 말을 하는 것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옳은 말을 어떻게 설득하고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계획이라는 것을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깨달았다. 마르크스가 이랬다, 레닌이 저랬대, 이런 말들을 늘어놓기보다는 남성들은 생리휴가 없는데 여성만 생리휴가 유급으로 주는 거는 차별이 아니냐는 조합원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이 나에겐 더 필요했던 것이다.


이 책을 사람들이 어떻게 읽을지 무척 궁금하다. 누군가는 한국어교육 현장에 대한 설명서로 읽을 것이고, 누군가는 추천하는 글에서 <재난에 맞서는 과학> 저자인 박진영 선생님이 말했듯이 "노동운동의 기쁨과 슬픔"으로 읽겠지. 나처럼 이 책의 감정들과 통찰들에 주목해서 읽은 이들, 그렇게 읽을 수밖에 없는 이들을 따로 모아 저자와 함께 북토크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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