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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Sep 03. 2024

재판이라는 익숙한 일

활동가의 일이란 게 딱 뭐다,라고 정의 내리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업무가 있다. 그 다양한 업무조차도 단체의 성격에 따라, 이슈의 성격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어떤 활동가는 엑셀에 파묻혀 지내고, 다른 활동가는 아스팔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이고, 누군가는 무대 세팅을, 홈페이지 개발을, 정책제안서 집필을, 회원모임 기획 조직을 하고 있겠지.


전없세 활동가들은 법원에 가는 일이 잦다. 동료의 재판에 연대하고 응원하기 위해 갈 때도 있고, 자기 자신이 재판받으러 갈 때도 있다. 우리는 병역거부를 해서, 직접행동을 해서 고발당하고 기소되고 재판을 받는다. 우리에게 재판정은 매우 익숙한 공간이다.


재미있는 경험도 한다. 우리들의 재판을 기다리며 앞선 재판도 방청하는데 한 번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 씨가 피고인이었다. 법정 앞 복도에서 증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라, 저렇게 대답하지 마라 지시하는 모습을 보곤 변호사인 줄 알았는데 피고인 심문을 들으면서 그가 피고인이고 박정희와 육영수의 딸이라는 걸 알았다. 배우 송혜교에게 염산 테러를 시도했던 송혜교의 전 매니저 재판도 기억에 남아있다.


내가 받은 재판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평택 대추리 투쟁 때 평택경찰서 앞에서 집회하다 연행된 건으로 받은 재판이다. 당시 병역거부로 구속되어 군산교도소에서 살다가 수원지법에서 재판받으려고 수원구치소로 이감 왔는데,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받으러 가는 게 그렇게나 좋았다. 구치소에서 법정까지는 수갑 차고 포승줄에 엮여서 가는 과정은 조금은 수치스럽고 모욕적이었지만, 법정 대기실은 또 색다른 경험이었다. 법원에 그렇게나 들락거렸지만 피고인이나 방청객은 갈 수 없는 공간이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동료들이 재판 방청을 와준 덕에, 마치 집단 면회라도 한 것처럼 반가웠다. 감옥 면회실의 투명 플라스틱판 없이 같은 공기를 숨 쉬고 있다는 그 감각이 너무 좋았다. 약간의 수치심보다 훨씬 큰 그 기쁨 덕분에 나는 재판받으러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재판이 익숙해지다 보니 이제 피고인석에서 재판받는 것이 무섭거나 긴장되는 일이 아니다. (사실 이건 익숙해진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우리가 한 행동의 정당성에 확신이 있고 스스로 떳떳하기 때문,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때문일 거다.) 물론 피고인들의 시간을 똥으로 아는 검사 나으리들은 짜증 나고, 검사들 때문에 파주에서 의정부지법까지 헛걸음을 하는 날에는 검사들 똥 싸다 스마트폰 변기에 빠트리라는 저주를 퍼붓는 일은 아주아주 짜증 나는 일이다. 그렇더라도 우리에겐 법원은 기념사진 찍는 곳, (재판에서 무죄 선고받으면) 파티할 구실 만들어주는 곳, 우리들의 주장을 사회적으로 더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곳일 뿐이다.


활동가의 일 중에서 법원에 가는 일은 나에게는 가장 쉬운 일중 하나다. 물론 다른 활동가들에게는 또 다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무척 두려운 일, 번거로운 일, 곤란한 일일 수 있다. 나에게는 재판만큼 마음 편한 일이 없고, 재판보다 백만 배는 어려운 일들이 나를 괴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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