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미 선생님을 모시고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북토크를 했다. 이럴 때 나는 첵의 저자와 단체 상근활동가라는 두 가지의 정체성 속에서 약간은 혼란스럽다. 내가 쓴 책의 북토크이니만큼 내 이야기를 들으러 온 독자들과 나는 저자로서 만나야 하는데, 동시에 나는 북토크 행사를 주최한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로서 행사 준비, 홍보, 실행까지 실무를 모두 담당해야 한다. 북토크 행사 때 저자의 마음가짐과 실무자의 마음가짐이 다를 텐데, 전쟁없는세상 행사로 북토크를 하면 나는 늘 그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게 된다. 원래 긴장 잘 안 하는 편인데, 생방송 나갈 때도, 판검사 앞에서도, 사람 많이 모인 집회에서 발언할 때도 아주 살짝 들뜬 정도일 뿐인데 이번 북토크는 무척이나 긴장되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두 가지 정체성 속에서 갈팡질팡 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거 같다.
그리고 더 결정적인 이유는 내 책에 대해 내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북토크 때도 이야기를 했는데 활동가로서 내 글의 장점은 평화운동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연구자나 전문 작가들은 할 수 없는 경험을 바탕으로 쓰는 글. 그런데 이번 책에서는 청소년 독자들과 접촉면을 넓히기 위해 활동가로서 경험이 전무한 분야에 대해서도 글을 썼다. 연예인의 병역문제, 여성징병제, 폭력 게임 같은 소재들이다. 나름 해당 분야 글이나 책도 찾아 읽는 등 공부도 했지만 그래도 스스로 만족하기에도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북토크에는 제법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고, 참여자들 중에 교사나 청소년 비율이 다른 전쟁없는세상 행사와 비교해 많이 높은 편이었다. 단체 실무자로서는 무척 기쁜 일이었다. 처음부터 이 행사의 초점을 청소년들, 학부모들, 교사들에 맞췄다. 그런데 문제는 전쟁없는세상의 그동안의 활동이 청소년이나 교사 집단과 접점이 많지 않았다는 것. 홍보할 루트도 마땅치 않았고 과연 사람들이 행사에 참여하게 할 만한 매력포인트가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김중미 선생님을 이야기 손님으로 섭외한 것이었다. 교사나 학부모들에게 인지도가 높고, 책 읽는 청소년들이라면 적어도 김중미 선생님 소설 한 권 정도는 봤을 거니까, 그리고 김중미 선생님은 전쟁없는세상 초창기부터 병역거부운동과 평화운동을 지지하고 후원하시는 등 전쟁없는세상에 대한 이해도도 높으시니 안성맞춤이었다.
북토크는 합정역에 위치한 플랫폼P에서 열렸다. <병역거부의 질문들> 나오고 허윤 선생님과 함께 북토크를 한 곳이기도 하다. 이미 아는 공간이라 낯섦도 없었는데 북토크 시작과 함께 나는 횡설수설했다. 공간 자체가 차분한 분위기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늦더위에 다들 지쳐있었는지, 암튼 나는 전체 분위기가 좀 쳐져 있다고 느꼈고 분위기도 좀 올릴 겸 내 긴장도 풀 겸 농담을 몇 개 던졌는데 반응이 영 시원찮아서 더더욱 횡설수설하게 되었다. '아... 오늘 날이 아닌가 보다. 그냥 중간만 하자.'는 생각으로 임했다. 미리 준비한 질문들인데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이렇게 대답할 걸, 이런 순간이 여러 개 떠오른다. 북토크를 많이 해본 건 아니지만 그동안 해온 북토크들과 비교하더라도 이번 북토크에서 내 퍼포먼스는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런데 북토크라는 형식 자체가 나는 늘 어렵다. 스스로를 작가라고 생각하기보다 활동가라고 생각해서일까? 책을 쓸 때는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독자들에게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는데, 앞에서 말로 하면 여지없이 내 생각과 주장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활동가 이용석을 확인하게 된다. 마치 작가의 북토크가 아니라 활동가의 강연이 되어 버린달까. 내가 써온 글의 주제가 평화운동이고 전쟁없는세상의 활동이긴 한데, 그렇더라도 북토크에 온 사람들에게 내 개인 이야기는 어느 정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지만 막상 입을 떼면 나는 내 이야기를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게 어색하기만 하다. 그런 와중에 이번 북토크는 긴장까지 했으니...
긴장하고 컨디션 난조를 보인 나와는 다르게 뭉치(사회자)와 김중미 선생님(이야기 손님)은 차분하게 이야기를 잘 이끌어가 주셨다. 덕분에 나도 말을 이어가면서 차츰 마음이 편안해졌고 나중에는 편안하게 주변을 살피며 농담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어차피 책 쓸 때부터 완벽한 텍스트를 구성하겠다는 욕심보다는, 먼저 이야깃거리를 던지고 다른 이들이 생각하고 말할 기회를 만들겠다는 생각이었으니. 책뿐만 아니라 북토크에서 내가 하는 말도 완벽하지 않아도 될 거였다. 틀린 게 있으면 뭉치나 김중미 선생님이, 혹은 북토크에 참여하고 있는 다른 평화활동가 동료들이 잡아줄 것이고, 부족한 게 있으면 채워줄 거라 믿으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여유가 생기자 좀 더 넉살과 유머를 섞으며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책을 소개해달라는 질문에, 내가 쓰려는 책보다는 동료 평화활동가들이 쓰고 있거나 쓸 계획인 책들을 이야기했다. 평화활동가들이 꼭 책을 쓰면 좋겠다는 내 욕심에 더해, 아주 현실적인 관점에서도 내 책이 더 잘 팔리기 위해서라도 평화 분야 책이 더 많이 더 다양하게 나와야 한다. 지금은 시장 자체가 아예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북토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결국 말하기의 방식에 대한 내 고민과 그에 대한 뭉치와 김중미 선생님의 말이었다. 특히 김중미 선생님은 어떻게 청소년들과 만나고 대화해야 할지에 대해 공부방에서 만나는 청소년들과의 경험을 들려주셨다. 먼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하셨다. 얼핏 생각하면 공자님 말씀처럼 느낄 수도 있는데 직접 경험을 들려주시니 아주 구체적인 상황들이 겹겹이 펼쳐진다. 구체적인 상황은 사실상 딜레마적인 상황이기도 하다. 좋은 가치를 좋다고 말하는 것과 구체적이고 딜레마적인 현실에서 그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김중미 선생님의 이야기는 아주 간결하면서도 힘이 세다.(벌써 이틀이 지나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은데) 뭉치는 김중미 선생님의 경험과 내 고민을 엮어서 평화를 청소년들에게 이야기할 때 필요한 관계성에 포커스를 맞춰줬다. 활동가들은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말하는 데 능숙한 반면, 듣는 사람의 자리에서 고민하는 데 서툴다. 옳은 이야기는 잘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리게 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그리고 그 방법은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닌데, 듣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말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어떤 관계가 쌓여 있는지, 혹은 어떤 관계를 쌓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뭉치와 김중미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해볼 수 있었다.
플로어에서 참가자들이 해준 질문도 재밌었다. 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인 우공이 나에게 던진 질문은 내가 이해하기로는 "활동가들에 이 책을 읽으라고, 매력 포인트를 어필해봐라"였는데, 나는 내 대답이 맘에 안 들었다. 다시 대답하고 싶은 질문이다. 여러분들이 다 아는 내용이겠지만 평화운동은 팀플레이니 읽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달라고 말했는데, 이렇게 말할 걸 그랬다. "여러분들이 모르는 내용도 있다. 나도 모르는 것들을 공부하고 썼으니까.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읽으면서 아는 부분은 건너뛰더라도 모르는 내용, 처음 보는 이야기들을 읽어달라. 아마 책에서 가장 취약한 파트가 바로 여러분들이 잘 모르거나 처음 보는 내용일 텐데 읽어보고 함께 고민해 달라."
여러 질문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질문은 청소년 참가자가 건넨 마지막 질문이었다. 군수산업체들이 게임회사와 협력하거나 혹은 게임산업에 개입하는 것을 어떻게 보냐는 질문이었다. 게임에 대한 이야기는 관점은 있지만 내가 잘 모르는 분야다. 솔직하게 아는 만큼만 말해다. 군수산업체나 미국 국방부 같은 곳들이 게임을 비롯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자신의 나쁜 이미지를 불식시키려는 일종의 워싱은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그리고 그런 커넥션을 찾아보고 항의하는 것이 우리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전쟁에 저항하는 평화운동이라고 설명을 했다. 김중미 선생님은 거기에 덧붙여 우리는 게임을 잘 모르니 질문을 해준 청소년 같은 분들이 직접 나서면 좋겠다고 하셨다. 직접 나서 달라는 김중미 선생님 대답을 들으며, 나는 다시 한번 청소년들에게 평화를 말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정중하지만 거침없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김중미 선생님에 비해, 나는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기 위해 너무나 소극적인 말 걸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아마도 청소년들을 만나온 경험의 차이가 만들어낸 자신감과 말하기 기술의 차이이리라.
이번 북토크는 힘들었지만, 다음 날 하루 종일 빌빌 거릴 정도로 고됐지만 그래도 북토크 계속하고 싶다. 부족하더라도 공부하고 노력해서 쓴 책인데,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기를 바란다. 무플보다는 (읽고 쓴) 악플이 백만 배는 좋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