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고민시, 이정은, 김윤석 배우가 나온다 해서 봤다. 하윤경, 박지환, 윤계상 배우까지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잔뜩 나와서 좋았다. 범죄도시에서 적대관계였던 윤계상과 박지환이 친구로 나오는 것도 재밌는 포인트였다. 하지만 배우들이 높여놓은 기대감을 드라마가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어쩌면 생각보다 괜찮은 드라마고, 단지 요즘 내가 드라마 보는 재미를 상실한 까닭에 만족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재밌게 본 최근 드라마가 <닭강정>이니까... 못 만든 드라마냐 하면 그렇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친구들한테 꼭 보라고 추천하지는 않을 거 같다. 미스터리라 스릴러, 범죄물 좋아하는데 나한테는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군불만 엄청 때우다가 피시식 꺼져버리는 느낌이다. 모완일 감독 연출이라는데 <부부의 세계>는 안 봤고, <미스티> 또한 초반의 긴장감이 후반에 가서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던 기억이 있다. 모완일 감독의 장르물은 나랑은 안 맞는 듯.
그럼에도 리뷰를 쓰는 것은 이정은/하윤경 배우가 연기한 윤보민이라는 캐릭터가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시차를 둔 두 개의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2000년대 초반 모텔에서 일어난 연쇄살인마의 살인행각과 세월이 한참 흐른 뒤 펜션에서 일어나는 살인 행각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별다른 설명 없이 두 살인 행각이 나열되어 있어서 나는 한참 뒤에야 두 사건이 시차를 제법 두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김윤석과 고민시는 스마트폰을 쓰고 윤계상은 폴더폰을 쓰는데 말이다. 이 두 살인 사건이 연결되는 지점에 놓인 인물이 바로 윤보민이다. 모텔 살인 사건에서는 하윤경 배우가, 시간이 지난 뒤 펜션 살인 사건에서는 이정은 배우가 각각 연기했다.
윤보민은 경찰이다. 별명이 술래다. 술래잡기처럼, 범인을 잘 잡는다고 붙은 별명이다. 그렇지만 살인범을 쫓되 넘치는 열정으로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혹은 정의감에 넘치는 그런 강력계 형사 캐릭터가 아니다. 경찰이 천직이고 사명감에 가득 차 있는 시그널의 차수현(김혜수), 비밀의 숲의 한여진(배두나)보다는 그저 경찰이라는 직업을 수행하는 라이브의 한정오(정유미)에 가까운 느낌이다. 그런데 또 살인현장을 보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한정오와는 달리 윤보민은 강력반 형사도 아니고 일개 순경인데요 자기도 모르게 자꾸 살인현장, 피냄새, 범인 같은 것들에 끌린다. 사회적 정의감, 사명감, 하다못해 복수심 같은 사적인 동기도 없이 그냥. 이를 눈여겨본 강력계 형사 선배의 권유로 강력반으로 옮겨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경찰이 아니라면 (아마도 추리소설 작가 정도를 제외하곤) 사회적으로 용인받기 힘든 취향 혹은 재능이 빛을 발한 것이다.
사명감이나 정의감에 움직이는 사람이었다면 좀 더 비장했을 것이고, 복수를 위해 경찰을 하는 이였다면 좀 더 악다구니를 썼겠지만 윤보민은 범인을 쫓아 잡고, 여죄를 밝혀내는 것을 술래잡기 놀이를 하는 것처럼 즐긴다. 그렇기 때문에 납치현장에서 체포된 유성아(고민시)가 자기 아빠 권력으로 법망을 빠져나갈 때도 분노하기보다는 여죄의 증거를 찾는 일에 몰두하고, 유성아의 죽음 뒤에 남겨진 미스터리(유성아의 전남편이 유성아를 쏜 총의 출처)를 풀었음에도 그걸 사법적으로 처리하려고 굳이 노력하지 않는다. 피냄새에 끌리는 본능이나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력을 갖춘 윤보민 같은 이가 조금 더 도덕심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경찰이 아니라 희대의 범죄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윤보민이라는 캐릭터가 유독 인상 깊었던 건, 그가 시종일관 차분했기 때문이다. 윤계상(좌절, 슬픔), 김윤석(후회, 복수심), 고민시(질투, 살인충동)가 모두 감정적인 폭주를 하는 와중에도 혼자 고요하다. 연쇄살인범 지향철(홍기준)을 쫓던 윤보민(하윤경) 순경도, 살인용의자 유성아(고민시)를 쫓는 윤보민(하윤경) 소장도 아주 조용하게 활발하고 차분하게 뜨겁다. 이 모순적인 표현이 윤보민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눈에 덜 띄기도 하지만, 다른 캐릭터들이 약간은 뻔한 인상을 주는 동안에도 윤보민이라는 인물은 자꾸 궁금해진다.
정의로운 사람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정의를 구현하는 윤보민은 아주 운이 좋게도 자기 적성을 잘 살릴 수 있는 직업을 찾은 것이다. 현실 세계에도 윤보민 같은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사회운동 영역으로 한정해서 보자면, 활동가라는 직업도 사명감이나 정의감이 투철한 사람들이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명감이나 정의감이 활동가의 필수적인 조건은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는 윤보민이 술래잡기를 즐겼던 것처럼, 마치 게임하듯 사회변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즐길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나에게도 어느 정도는 이런 특성이 있는지도 모른다. 확실히 나는 선배들에 비해 비장한 마음으로 활동을 하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의 정의감이 내 활동의 이유지만 사명감 같은 것은 없다. 그리고 나 또한 마치 게임에서 퀘스트를 하나씩 깨 나가듯, 사회운동 캠페인의 크고 작은 목표치를 달성해 나가는 것이 재밌다. 돈도 많이 벌지 못하고, 명성이나 권력을 얻기에도 썩 적당하지 않은 이 직업을 내가 계속해서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일이 가장 재밌는 일이라는 것도 크게 작용한다. 물론 힘든 점도 있지만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이고, 힘들지 않은 일에서는 성취감을 얻을 수 없다. 과도하지 않게 관리할 수 있다면(그리고 꼭 그렇게 관리해야 한다!) 힘듦은 재미와 성취감을 위한 필수적인 재료다. 때로는 이런 성정이 도파민 중독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윤보민이 자기 안에 있지 않을까? 나는 이게 꼭 나쁜 성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오히려 자기 안의 윤보민을 외면하는 것이 더 안 좋다고 생각한다. 정의감만으로, 사명감이나 공적인 의미에 취해 무언가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무너질 때 자신도 함께 무너지기 마련이다. 누구보다 정의로웠지만 타락해 범죄자와 결탁한 경찰, 세상을 바꾸려다가 희망이 무너진 뒤 반동이 되어버린 혁명가들이 떠오르고, 너무 멀리 가버린 정치인들은 하도 많아서 말하자면 입이 아플 지경이니까.
내 안의 윤보민을 긍정하고 나에게 술래잡기가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하다. 만약 이 술래잡기가 더 이상 재미있지 않은 순간이 온다면 나는 무엇으로 내 활동을 지탱해 갈 것인가? 재미만이 전부는 아니지만 재미가 없어진다면 정의감만으로 지탱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