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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만난 과학

짧은 리뷰

by 이용석

일부러 과학이 바꾼 전쟁의 역사와 연달아 읽었다. '전쟁'과 '과학'이라는 키워드를 포개어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했다.


이 책은 서양현대과학이 어떻게 지배계급의 이익이 복무해 왔는지, 그러면서 피지배계급의 해방을 위한 과학의 시도는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제목은 '노동자가 만난 과학'이지만 월급을 받는 고용형태에 놓인 노동자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노동계급, 소수자, 글로벌사우스, 식민지배를 받는 이들처럼 사회적 약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과학과 자본주의의 역사를 두루 다루고 있다.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1부 '제국주의와 과학'에서는 19세기~20세기 제국주의의 팽창에 과학은 어떤 도구로 쓰였는지를 다뤘고, 2부 '현대 자본주의와 과학'에서는 상품화된 과학이 어떻게 가난한 이들을 소외시키는지 살펴보고 안보나 건강권이 돈벌이의 수단이 될 때의 문제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3부 '민중의 과학'에서는 권력의 이익에 복무하는 과학에 맞선 다양한 저항과 대안을 위한 실천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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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과학과 군수산업


평화활동가로서 내가 가장 재밌게 읽은 내용은 역시나 네 번째 챕터 '현대 자본주의와 거대화학: 거대 기업이 주도하는 거대과학'에서도 군수산업과 결합한 거대과학 이야기였다. 거대과학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가 우주 탐사나 입자물리학 혹은 핵융합이 아니라 바로 군사분야라는 점이 무척 흥미롭고 소름 돋는다.(84쪽) 핵개발, 위성항법시스템, 탄도미사일과 위성방어체계 같은 것들의 개발과 생산이 군사 분야의 거대과학이라고 한다.


여기서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군산복합체다. 저자는 과학이 산업화되면서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탁월하게 분석해 내는데 군수산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무기인 F-35 전투기(개발에만 3,910억 달러(500조), 50년간 운영유지비 포함하면 1조 5,000억 달러(2,000조) 추산)의 경우를 예를 들어 설명한다. 록히드 마틴이 만드는 "F-35 전투기 한 대에 5만여 개의 부품이 들어가는데 이를 위한 공장, 연구 시설, 부품 조달 업체가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47개 주에 흩어져 있다."(85쪽) 물류라든지, 운송을 생각한다면 모여 있는 게 유리하다. 더군다나 미국의 그 엄청난 땅 덩이를 생각해 보면 이건 경제적이지 않은 일이다. 이렇게 분산시켜 놓는 이유는 국회의원들을 공략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록히드 마틴의 공장이 있는 지역구 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을 대고, 업체와 직원들이 자기 지역구 의원들이 국회에서 F-35 사업을 지지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실제로 2008년 미국 대선 후보였던 존 매케인 의원은 2011년에 F-35 사업을 비판했다가 그의 지역구인 애리조나에 F-35 부대가 생기고 난 뒤 입장을 바꿨다 한다.


이런 군사 분야 거대과학이 기술 개발하는 과정도 무척 흥미로웠다. 거대과학의 특징은 각 분야가 잘게 쪼개어져 있다는 것이다. 수학자 허준이가 말했든 현대 과학은 천재가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팀플레인 셈이다. 허준이의 그 말은 아름다웠는데 현실로 오면 각자가 자신의 연구가 사회에 어떤 괴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인지 모르고 연구에만 몰두하게 되는 풍경이 상상돼 섬찟하다. 미국의 경우 핵심기술의 기초과학 연구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이나 스탠퍼드대학교, 조지아공과대학 등 대학의 연구소가 수행하는데 이 연구 자금을 국방부나 방위산업체에서 지원한다고 한다. 이 성과를 정부 출연 연구소가 이어받아 응용 연구와 개발을 담당한다고 한다. 그리고 군 연구소는 이 연구 성과를 가지고 실제 무기 체계에 적용될 기술 개발과 테스트를 담당하고, 마지막으로 군수산업체의 연구소가 상용화 가능한 기술 개발에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 대학, 정부 연구소 등 세금과 공적 자원이 아주 많이 투여된 곳이 결국에는 거대 군수산업의 이익에 복무하는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는 꼭 평화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문제 삼을 만한 일이 아닌가 싶다. 한정적인 사회의 재원과 자원을 특정 업계의 기업들이 수혜와 혜택을 받는 연구에 쓰는 문제니까.


이런 문제에 대해 군사용으로 개발한 기술이 일상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며 군수산업체의 이익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는지(당연히 있겠지) 저자는 친절하게 이에 대한 반론까지 이야기한다. 일명 스핀오프(spin-off) 기술인데 냉전시대 핵전쟁의 우위를 점하려 만들었지만 지도앱이나 내비게이션에도 쓰이는 GPS, 군사용 기술과 민간 기술이 합쳐져서 만들었지만 이제는 드라마 촬영부터 재난 구조에 까지 널리 쓰이는 드론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이런 기술의 효용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군사 분야의 폐쇄성 때문에 이러한 연구가 중복되는 경우도 많고 안보상 기밀이라는 이유로 이러한 기술이 공유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지적한다.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쏟아붓는 일을 애초부터 여러 정부가 함께 한다면 연구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그 성과도 모든 인류의 상생을 위해 쓰일 수 있는데 오히려 군사 분야 이를 개발하면서 경제성이라든지 공공성이 침해된다는 것이다.



실패한 정의로운 전환 '루카스 플랜'


과학 운동이나 대안적인 시도를 여럿 소개하는데, 내 지식이 부족해서인지 약간은 병렬적으로 나열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좀 아쉬웠다. 차라리 한두 개를 집중적으로 분석해 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래도 눈길을 끄는 사례를 하나 만났다. 주로 군수 산업으로 돈을 버는 영국의 루카스항공 노동자들이 오일 쇼크 시기 회사가 대규모 감원을 예고하자 이에 맞서며 대안적인 생산 계획인 '루카스 플랜'을 내놓은 사례다. 13,000의 현장 노동자가 자신의 전문성과 경험을 살려 토론을 해서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도 무척 대단해 보였고, 그렇게 만든 대안이 특히나 눈길을 끌었다. '사회적으로 유용한 생산'이라는 표어 아래 군수산업을 재생에너지 기술, 의료기기, 에너지 효율적인 교통수단, 대체 에너지 난방 시스템, 산업 안정 장비 등의 영역으로 탈바꿈하자는 제안이었다 한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노동자들의 토론으로 도출된 결론이었기 때문에 단순 아이디어 수준을 넘어서 상당한 수준의 구체성과 전문성을 보였다 한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아쉽게도 노동자들이 회사 경영에 개입하는 것을 꺼려한 경영진의 반대와 노동자들의 군수산업 축소 주장에 대해 정치적 부담감을 느낀 정부의 반대로 실현되지는 못했다고 한다.(225쪽~227쪽)


이 책에서는 비슷한 한국 사례로 키친아트와 우진교통의 예를 들고 있다. 물론 노동운동의 관점에서는 두 사례 모두 아주 중요한 사례인데, 나는 노동자의 자주관리나 직접경영보다는 군수산업의 정의로운 전환에 더 눈길이 갔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려는 실질적인 노력이었고, 무기회사에서 재생에너지 회사로 탈바꿈하는 토니스타크의 스타크 컴퍼니 실사 버전이 될 뻔했던 사건이었으니. 특히나 중앙정부에서 아주 대놓고 방위산업을 밀어주고 있고,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 일자리 개념으로 방위산업체를 유치하려고 안달인 이 시점에서 무기산업의 정의로운 전환은 시도에만 그쳤더라도 무척이나 반가운 역사적 사례일 수밖에 없다. 평화운동이 더욱 활발해져서 지역 사회의 군수산업체들과 맞짱 뜨게 될 때, 거기서 생계를 해결하는 노동자들의 문제를 피해 갈 수 없다. 캠페인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지역사회와, 군수산업체 노동자들의 지지 혹은 연대가 필수적일 텐데, 이런 사례를 많이 발굴하고 분석하는 것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관련 책이나 논문을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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