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가을 자전거 여행은 전라남도, 내장산에서 시작해서 담양과 광주를 거쳐 영산강을 따라 목포로 가는 코스를 달렸다.
미세먼지로 시야가 깨끗하진 않았지만 내장산 단풍의 곱디고운 색은 미세먼지 따위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는 단풍을 '물든다'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단풍은 채워짐이 아니라 비움, 혹은 결핍의 결과다. 나뭇잎에 새로운 색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기온이 낮아지면서 녹색의 엽록소가 분해되면서 그동안 엽록소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았던 빨간색, 노란색들이 비로소 자신을 드러내는 것. 그러니 녹색의 비움, 혹은 결핍이 가을의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비워지고, 결핍된 것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이라니. 가을의 이미지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내장산에서 하루 자고 자전거를 타고 고개를 힘들게 넘어와 담양에서 점심을 먹었다. 광주에 숙소를 잡아 두지 않았다면 담양에서 또 하루 지내면서 여기저기 다녀보고 싶을 정도로 아담하고 예쁜 도시였다. 아쉽지만 점심만 먹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담양에 접어들면서 뒷바퀴 펑크가 난 경수는 버스에 싣고 광주로 먼저 가서 자전거를 수리했고 나와 나동은 강을 따라 남하했다. 자전거길은 극락강으로 이어졌고, 광주에 접어들었을 때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했다. 원래 가려던 자전거길 대신 코스는 자동차 도로로 도시를 가로질렀고, 양림동 호랑가시나무언덕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룻밤 잤다. 자는 내내 비가 내렸다. 자전거를 탈 때 비가 오면 난감하지만 자는 동안 비가 오면 다음 날 하늘이 맑아서 탁 트인 경치를 볼 수 있어서 좋다.
아니나 다를까 광주에서 목포로 향하는 영산강 자전거 길은, 아름다웠다. 영산강은 한강이나 낙동강에 비해 확실히 개발이 덜 되어 있었다. 광주에서 목포까지 100km. 우리의 컨디션으로 하루에 가기는 무리였고 나주에서 자는 건 너무 짧은 코스였다. 한 60~70km쯤 되는 무안이나 함평쯤에 숙소 시설이 있으면 좋으련만, 나주에서 자거나 아님 목포까지 가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하는 수없이 무안까지 타고 가서 기차에 싣고 목포에 가기로 했다. 이날은 내 자전거 바퀴가 펑크가 났다. 다행히 하루를 거의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펑크가 나서 무안역까지 택시에 싣고 갔다.
목포는 울 엄마의 고향. 외갓집이 목포여서 광주 살 때 자주 갔었다. 거의 한 달에 한 번은 목포에 갔던 걸로 기억한다. 할머니는 영산강 하구둑 앞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하셨는데 나와 동생은 외삼촌네 사촌들과 함께 하구둑 옆 갯벌에서 게를 잡고 놀았다. 지금 그 갯벌은 모두 사라지고 그 위에는 빌딩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목포 전체로 보자면 변화가 더딘 도시다. 원도심이 특히 그런데, 막내이모가 태어났던 집도 그대로 있다고 한다. 덕분에 여행자들에게는 약간은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을 자아낸다. 목포 원도심을 쏘다니고, 해상케이블카를 타고 고하도에 가서 해안 데크길을 걸었다. 탁 트인 풍경은 언제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찌꺼기를 씻어준다. 바닷바람에 내 감정을 맡겨 본다.
2020년 동해안을 시작으로 해마다 봄가을이면 친구들과 자전거 여행을 다녔다. 낙동강, 남한강, 섬진강, 금강, 만경강과 동진강, 형산강, 제주도를 누볐고 이번에 영산강까지 갔으니 임진강을 제외하면 국내 어지간한 강은 죄다 가본 셈이다. 그래서 작년 가을에는 대만 자전거 여행을 갔다가 함께 간 나동이 쓰러지는 사고까지 났다. 죽었다가 살아난 나동이 다시 자전거 여행을 함께 다닐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자전거 여행 멤버는 더 여러 명이지만 가장 핵심적인 멤버는 나와 나동. 만약 나동이 없다면 어쩌면 여행은 중단될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더 예전에도 우리는 자전거를 탔다. 전쟁없는세상 초창기부터 꽤 오랫동안 자전거는 전쟁없는세상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전쟁없는세상 창립은 2003년 5월 15일, 그해 3월 20일은 이라크 전쟁 발발일이었다. 이라크 전쟁의 원인은 여러가지겠지만 그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석유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라는 점. 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의 평화활동가들이 군인으로 동원되지 않기 위해 병역거부 운동을 시작했던 것처럼, 우리도 석유에 의존하는 삶을 벗어나는 것으로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자전거를 탔다. 물론 자가용을 살 돈도 없었지만 정치적인 목적으로 자전거 출퇴근을 했고, 시위나 행진 때도 자전거를 탔다. 2010년대 중반까지 대체복무제 도입을 주장하며 헌법재판소에서 국회까지 자전거 행진을 했고,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며 구럼비 발파 시공사인 삼성역 인근 삼성물산 앞에서 출발해서 삼각지역 국방부까지 자전거 행진을 했다. 수십 명이 모여서 자전거 행진을 하는 풍경은 꽤나 멋지고 인상적이었다.
그러다 사고가 나기도 했다. 평화캠프를 하러 평택에 자전거로 내려가던 중 수원 지지대 고개를 넘을 때였다. 내가 기억하는 건 “뻥”하고 무언가 터지는 소리였다. 그 소리와 함께 나는 정신을 잃었다. 그러곤 정신을 차렸을 때 오리가 양팔로 부여 안고 펑펑 울고 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자전거 일행 맨 뒤에 내가 가고 있었는데 차가 와서 내 자전거 뒤쪽을 들이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뒷바퀴가 터지면서 펑 소리가 났던 거다. 나는 마치 영화 <E.T.>처럼 자전거와 함께 하늘을 날았고 오리 앞에 철퍼덕 떨어졌다고 한다. 떨어지면서 도로에 귀가 쓸렸는지 피가 났는데 오리는 그게 내 머리에서 나는 피인 줄 알고 놀라서 나를 부둥켜안고 울었던 거였다.
내가 감옥에 갈 무렵에 전쟁없는세상 친구들은 50일 동안 유럽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어지간해서 다른 사람 부러워하는 일이 없는 편인데, 그때는 어찌나 부럽던지. 출소하고 나서 다음 해, 전쟁없는세상은 일본 자전거 여행을 갔고 이번에는 나도 함께 갔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오사카로 갔고, 오사카에서 도쿄까지 자전거로 가는 루트. 대략 1000km를 타야 했는데, 아쉽게도 하코네 산맥을 앞두고 도저히 넘을 자신이 없어서 거기서 기차에 싣고 도쿄로 점프했다. 도쿄에서 일주일을 머물면서도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오토바이용 종이지도책을 사서 보고 다녔는데, 당연하게도 일본어로 가득한 책이어서 우리는 종종 길을 잃었다.
처음에 자전거랑 친해진 계기는 정치적인 목적이 강했던 게 사실이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자전거 여행이 주는 특별한 재미나 경험 때문이지 않을까.
예컨대 자전거 여행은 늘 돌발상황의 연속이다. 우리는 계획을 짜지만 언제나 계획은 어그러진다. 누군가 다치거나 컨디션이 유난히 안 좋으면 원래 목표했던 거리를 다 갈 수 없다. 우리 몸이 아니라 자전거가 말썽일 때도 있다. 이번만 하더라도 경수의 자전거와 내 자전거가 한 번씩 펑크가 나지 않았나. 혹은 때로는 숙소를 못 구하는 경우도 있다. 정해진 계획대로 가지 못하니 숙소를 미리 잡아두는 일이 별로 없고 그날그날 숙소를 잡는 편인데 어떨 때는 그러다 보니 숙소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일본 여행 때는 결국 노숙을 감행한 적도 있다. 시골 편의점 주차장에 텐트를 치고, 화장실 세면대에서 씻고 그 물을 받아 밥을 해 먹었다.
이렇게 변수 투성이라서 나는 자전거 여행이 재밌다. 불확실성에 나를 내던지고, 내 앞에 펼쳐질 돌발상황들을 마치 게임하듯 하나씩 클리어해나가는 즐거움이랄까. 친구들과 함께 하는 협동게임인 셈이다. 자전거 여행의 돌발 상황들은 일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이번만 하더라도 전쟁없는세상 후원캠페인 준비로 바쁜 와중에 여행을 가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는데, 여행에서 겪은 여러 돌발상황들을 거뜬히 해결하고 나니, 여행이 끝난 뒤 마주하는 여러 상황들이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사는 게 뭐 그렇지. 갑자기 자전거 바퀴 펑크 나는 일처럼 말이야. 그렇다고 내 인생 망가지는 거 아니잖아.' 이런 생각이 나를 보호해 준다.
그리고 자전거의 속도. 빠르다면 빠르고 느리다면 느린 자전거의 속도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의 속도와 무척이나 닮았다. 자전거의 속도는 정직하다. 내 몸의 상황과 컨디션만큼 움직인다는 면에서 기름만 넣으면 내 통제범위를 벗어나는 속도를 언제든 낼 수 있는 자동차와는 다르다. 오래 멀리 가야 하는 길이라면 나는 순식간에 속도를 올릴 수는 있지만 지속가능하지 않은 자동차보다는, 내 몸의 속도에 맞춰 움직일 수 있는 자전거의 속도로 가고 싶다. 만약 내장산에서 목포까지 자동차로 갔다면 두 시간이면 도착했겠지만 그 여행은 출발점과 도착점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자전거는 내가 거쳐온 도시들을 기억하게 만든다. 담양의 여유, 광주의 숙소, 나주 영산포 홍어집의 점심, 목포의 구도심과 바다가 만드는 독특한 풍경, 그리고 이들을 잇는 영산강 자전거 도로의 경치까지. 자전거로 여행할 때 이동은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여행 그 자체가 된다. 마치 평화로 가는 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평화가 길 그 자체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