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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사이 Mar 14. 2022

삶은 계란 맛

살아 있는 내가 만들었던 살아 있는 추억들

살아 있는 내가 만들었던 살아 있는 추억들


최승자 시인의 아이오와 일기
『어떤 나무들은』 / 난다





나는 다만 하루하루 흔들리고 있었을 뿐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품위, 그 격식, 규격이 싫었다.

_p.4 「1995년 4월 시인의 말」


시인이자 번역자인 최승자 시인의 두 번째 산문집 『어떤 나무들은』. 1995년에 출간된 책을 26년 만에 난다에서 다시 펴냈다. 미국 아이오와주 아이오와시티 아이오와대학에서 주최하는 인터내셔널 라이팅 프로그램(IWP, International Writing Program)에 참가하게 된 시인의 첫 외국 여행 이야기다. 1994년 8월 28일 일요일부터 1995년 1월 16일 월요일까지의 여정을 담은 일기 형식의 산문을 엮었다.


광명시 경남이네 집에서 친구의 도움으로 짐을 꾸린 시인이 공항으로 떠나며 여행은 시작된다. "아침식사 준비를 하면서 경남이가 원, 내 딸 시집보내는 것 같네라고 말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Lonely rivers going to the sea give themselves to many brooks." 이건 내가 슬며시 외로운 생각이 들 때마다 나 자신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다시 되살려보곤 하는 구절이다. "바다로 가는 외로운 강물은 많은 여울에게 저를 내준다."

_p.49 「1994년 9월 6일 화요일」


"바다로 가는 외로운 강물은 많은 여울에게 저를 내준다."
로드 맥퀸이라는 싱어송라이터가 쓴 시집 중에 나오는 구절로 최승자 시인이 대학교 1학년 때 그의 시집을 읽다가 기억해둔 것이다. 시인은 아이오와에서 만난 작가들과 교류하며 생활하는 모습을 솔직하고 유쾌하게 그려냈다. 아이오와에서 교류했던 작가들과의 일화에는 시인의 시선이 선명하게 담겨있다.

시인은 구어체 문장과 히어링을 공부해 올 걸 하며 영어 표현이 서툴다고 말했지만, 공식 일정과 사교모임에 참석해 의사소통하는 모습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기억의 서랍 속에 그대로 간직되어 있는" 이야기와 일상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하루종일 빗물 먹은 나뭇잎에 아직 물기가 남아" 있듯 촉촉하게 빛난다.





어떤 나무들은 바다를, 바다의 소금기를 그리워하여 바다 쪽으로, 그 바다가 아무리 멀리 있어도, 바다 쪽으로 구부러져 자라난다고 한다. 그런 나무들이 생각났다.

_p.51 「1994년 9월 7일 수요일」


아이오와 침례교 교회에서 예배가 끝나고 목사님의 소개로 마주한 사람들의 표정에서 떠오른 나무들. 그들이 외국의 땅에서 고향을 그리듯, 시인이 시를 그리워하며 문학 쪽으로 구부러져 자라나는 모습을 그려본다. 예측하기 어려운 아이오와 날씨에 밋밋한 벌판, 갑작스럽게 붉은색으로 변하는 나무들을 보며 "미국은 나무들조차 지극히 개인적인 모양이다."라는 말이 묘하게 다가온다.





이상하게도 나는 아이오와에서 단 한 편의 시도, 아니 단 한 줄의 시구도 얻지 못했다. 모든 게 너무 다르기 때문에 내 감수성이 문 꽉 닫아버리고 있는 걸까. 그렇긴 하지만 안타깝지는 않다. 내가 체험하는 것들 모두가 착실하게 내 내부로 가라앉고 있을 거다. 그리고 어느 날 시로 나오겠지.

_p.172 「1994년 10월 21일 금요일」


"나는 왜 쓰지도 않고 나는 무엇을 쓰지도 않는다. 나는 나를 쓸 뿐이다. 그게 왜가 되고 무엇이 된다면 좋고, 안 돼도 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시인이 영어로 번역한 마흔네 편의 시. 자신의 시를 번역하며 고민한 부분을 다른 작가들과 의견을 나누며 번역하는 마음을 들려준다. "내가 번역하는 사람이니까. 한 구절을 멋있게 번역해놓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아지는지."





기억의 집, 기억의 집 한 채 서 있다.
기적처럼, 금방 신기루처럼 무너질, 그러나 기적처럼.

_p.248 「1994년 11월 12일 토요일」


"공중에서 사라진 줄 알았더니, 살아 있으니 다행이로구나." 플로리다에 머물고 있는 삼촌이 시인께 전화로 한 말씀이 울림을 준다. "다만 뭔가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새로운 변화에 내 육체와 정신이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어떤 예감에 잠 못 드는 시인의 시간이 천천히 지그시 마음을 누르고 지나간다. 시인이 지나온 그때의 기억, 느낌, 사람들이 "아이오와는 좋아했었다."라는 문장에 기적처럼 담겨 있다.


청춘이 지난 지 하많은 세월이 흘렀다.
문득 소식이 와서 묻혀 있던 책이
지금 살아나고 있다.
그것을 나는 지금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것으로 끝이다.

아이오와는
좋아했었다.

2021년 11월 15일
최승자

_개정판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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