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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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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사이 Feb 15. 2022

영화관 팝콘 맛

영화가 끝나고 도착한 편지들

설가 조해진과 시인 김현의 다정한 응답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



우리가 잃어버린 것.
영화와 편지는 어쩌면
그러한 것들에 관한 응답일지도 모릅니다.
  (...중략...)
그것은 멀리 있지 않다.

_p.005 영화는 편지처럼 편지는 영화처럼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와 이유를 댓글로 남기는 이벤트에 당첨되어 저자 사인본을 선물 받았다. "우리의 삶이 상영되는 허공의 영화관에서..." 조해진 소설가의 가지런한 손글씨와 "싱거운 사람이 되기로 해요."라고 쓴 김현 시인의 담백한 사인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책 속에는 잃어버린 시절과 마음을 찾아가는 길 위에 상영된 영화와 다정한 편지가 들어있었다.





곧 영화가 시작됩니다. 늦지 말고 와주세요.
_p.180 시라는 선생님


1부 '상영 시간표를 확인해주세요'에는 소설가와 시인이 서로에게 쓴 편지를 묶었다. 겨울과 여름 사이의 계절 동안 주고받은 스무 통의 편지가 번갈아 날아든다. '머뭇거리는 우정'이라 표현한 우정의 기록은 서로에게 묻고, 듣고, 답하고 싶은 것들로 채워진다.

2부 '모모 님이라고 부를게요'에는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담았다. 두 저자의 편지를 받게 될 모모 님의 좌석은 '달빛 열 공중전화 석'이다. 우리 각자의 장국영과 단짝 친구, 사랑과 연애편지, 영화와 시라는 선생님, 알다가도 모를 사람, 마음. 안부를 묻는 일에서 시작해 쉬이 답할 수 없을 것 같은 질문으로 이어지는 편지를 읽고 있으면 문득 편지가 쓰고 싶어진다.



눈이 녹으면 사람들은
다시 눈을 기다린단다

_p.025 겨울 예감


조해진 소설가의 "인간은 아름답니?"라는 질문에 김현 시인은 불현듯, 죽고 싶지만 소설은 쓰고 싶다는 청소년 성소수자를 만났던 일을 이야기한다. 그에게 구십구 방울의 슬픔이 아니라 한 방울의 기쁨을 더 소중히 여기며 소설을 쓰면 좋겠다고 말해주었다는 말과 그는 어떤 대답을 할까 하는 질문을 건넨다.

생의 스크린에는 영화처럼 다시 오지 않을 날들이 흘러간다. 오늘을 사는 이야기와 삶의 의문, 영화 그리고 글쓰기. 편지라는 형태로 일상을 주고받지만, 그 안에는 삶과 죽음, 사람, 사랑, 행복과 계절이 녹아들어 있다. 인간은 저마다 아름다움의 조각을 지니고 있다고 여기며 온기 있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쪽에 가까운 사람. 서로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는 일을 통해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 두 사람이 응시한 시간이 담겨 있다.


응시하는 사람만이 대상의 심연에 닿지요.
_p.049 바라보는 마음


책을 읽으며 보고 싶은 영화가 여러 편 생겼다. 특히 '손가락을 움직여서, 씁니다'에 나온 김보라 감독의 <벌새>. 김현 시인이 '그 시절'에 관해 적어 보내며 예상했던 <벌새> 얘기를 답장으로 받았을 때 '통했구나' 느낀 순간, 오랜 의문이 풀렸다.
즐겨 듣는 <FM 영화음악 김세윤입니다>에서 사연과 신청곡을 보내 달라고 말할 때 들려주는 영화의 한 장면이 <벌새>라는 걸. 들을 때마다 어떤 영화의 어떤 장면인지 궁금했는데 생각지 못한 곳에서 답을 만났다.





이제 우리 저마다의 삶이 영사되는 허공의 영화관에서 만나요. 티켓도, 팝콘과 콜라도, 스크린과 푹신한 의자도 필요 없는 그 영화관의 제 옆자리는 당신을 위해 비어 있을 것입니다.          _p.224


영상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는 문장을 주고받는 기분은 어떨까 궁금하다. '현아, 시인님, 너'와 '누나, 해진 누나, 소설가님'이라고 호칭이 달라질 때마다 존대의 표현과 말을 놓고 편하게 이야기하는 글의 분위기가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살면서 이름에 밝을 '현(炫)'을 쓰는 사람은 처음이라 반가웠다. 밝은 공통점도 있고 글에 스며든 다정함이 더해져 내게 온 편지를 펼친 느낌이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 꾸러미를 펼쳐보며 설레고 행복했다. "시를 읽는 이들의 가슴속엔 정답이 아니라 질문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읽고 나서 가슴속에 질문이 쌓인 걸 보니 편지가 아니라 시를 읽은 듯하다. 구체적인 형태의 행복을 주고받은 두 사람의 편지는 자꾸만 질문을 건넨다.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부치지 않을 편지를 쓰고 또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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