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회사생활 중 가장 큰 차이점을 말해보라 하면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할 것 같다. 이곳에는 정말 다양한 나라들에서 넘어온 팀원들이 많다.
미국에 간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다. 회식자리에서 백인 흑인 히스패닉 등 다양한 인종의 팀원들이 모여서 미국 정치 이야기를 쭉 하다가, 문득 어느 팀원이 이런 말을 했다. "근데 우리 중에 누가 미국인이야? 투표권 있는 사람?" 그랬더니 모두 가만히 있다가 어떤 동양인 혼자 수줍게 손을 들어 올렸다. 응? 나는 당연히 영어 잘하는 저 백인들이 미국인일줄 알았는데, 구석에서 조용히 있던 일본 이름을 가진 팀원 혼자 미국인이었다. 아 미국 IT기업은 이런 곳이구나 싶었다.
이곳에서는 너도 나도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서 각자의 방식을 더 존중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국에 있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뭐가 옳고 일반적인 방법인지를 눈치껏 살펴서 찾게 되는데, 여기서는 좀 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하게 된다.
이런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환경은 내가 약해져 있을 때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서, 팀에 처음 조인해서 적응할 때나, 성과가 잘 나지 않아서 자책하고 있을 때, 본능적으로 주변에 비슷한 사람은 있는지, 나 혼자만 이러고 있는지 찾게 된다. 이전 회사에서 한참 자신감이 추락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혹시나 주변에 나처럼 영어를 못했다가 잘해진 경우는 있었는지, 아니면 나처럼 동아시아권 문화에서 넘어와서 잘 적응한 사람들이 있었는지를 찾아보게 되더라.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친절하고 포용력이 넓은가와는 별개로 다양성 그 자체도 확실히 영향을 주는 것 같다.
회사 차원에서도 지나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은 교육을 한다. 심지어는 연말 업무 평가 때나 승진 심사 때 다양성과 포용성에 대해 기여한 점도 적어야 하고, 채용을 할 때도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채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젠더 문제로 시끄럽고, 미국에서도 대학 입시 때 인종에 따른 가산점이 위헌 판결이 나면서 논란이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어느 정도가 적정 선인지는 확실히 어려운 문제다. 저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싶은 정책들도 분명히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원자들이 모두 업무에 필요한 실력 이상을 갖춘 인재들이라면, 팀의 다양성을 높일 수 있는 지원자를 뽑자" 정도까지는 공감하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미국이니까 그런 것도 가능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전 세계에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몰려드니, 실력이 있는 사람들은 충분하고 다양성을 높이는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내 실력이 남들보다 좋은데 왜 떨어졌나 싶은 억울함도 있을 수 있겠지만, 팀의 입장에서 보면, 개개인의 실력이 정말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은, 서로 다양한 의견들을 주고받고 편안함을 느끼는 환경에서 팀이 오래오래 지속되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내가 다른 팀을 알아볼 때도, 팀의 구성원들이 하나의 인종이나 국가의 사람들로 치우쳐져 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