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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란 Nov 30. 2023

나의 세계에서 탈출해야 하는 이유

시야를 확장해야 되는 이유에 대한 고찰


사람은 좋은 기억의 힘으로 일상을 버틴대.
나는 우리의 첫 여행이 너무너무 기억에 남아, 또 얼른 같이 여행 가고 싶다.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의 여름즈음부터 스스로가 우울함의 수준이 심각 단계를 넘어섰다고 인지하고 있었다. 출퇴근을 제외하고는 거의 집 밖을 나서지 않았고, 주말에는 내내 방에 머무르기만 했다. 하루 온종일 하염없이 미드, 영화를 이어보고 사부작사부작하는 취미 활동들이 스스로를 안정시켜 준다고 생각했고,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고 잘 보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늘 그랬듯 그것은 나의 오만한 착각이었고 실상은 달랐다. 두꺼워지는 마음속 벽의 두께와 비례해 점점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이 되어갔고, 친구들을 만난 횟수는 2년 동안 열 손가락 안에 꼽혔다. 일 핑계를 대는 것이 가장 마음이 편했다. 주변에 우울하다, 힘들다 내비친 적이 없어서 친구들에게 나는 늘 바쁜 사람일 뿐이었다. 


3월의 출국을 앞두고 2년 7개월, 953일 간 몸담았던 첫 직장을 퇴사했다. 퇴사하고 가장 처음 했던 건 여행이었다. 사실 난 여행에 그리 큰 관심을 두는 사람이 아니었다. 또래와 여행해 본 경험도 없었다. 종종 "시간 맞을 때 셋이 여행 가자."라고 말해왔지만 시간이, 상황이, 생각만치 그리 잘 맞아떨어지지 못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고, 내가 회사에 퇴사 통보를 했을 즈음 지금이 아니면 또 몇 년 미뤄질 기회를 -헤어짐을 덜 아쉬워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냥 지나치지 않기로 했다. 


제주도 여행이 시발점이 되어 작년 그리고 올해 동안 몬트리올, 퀘벡, 옐로우나이프, 밴쿠버, 뉴욕을 여행했다. 모든 도시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테지만, 지금도 앞으로도 밴쿠버만큼 진하게 기억될 여행은 없을 것 같다. 여행의 의미를 재정의 해 준 도시이자, 처음 혼자 -전혀 계획에 없던- 여행을 떠난 도시이기 때문에. 사실 출발하는 비행기 안에서까지 마음이 계속 좋지 못했다. 그 이유는 이러했다. 우리 매장은 보통 1주-2주 치 스케줄이 한 번에 업데이트된다. 여느 때와 같이 스케줄 알림을 보고 앱에 들어갔더니 어라? 연달아 4일간 스케줄이 비어있었다! 다른 친구들 스케줄은 모두 평소와 비슷했고, 혹 '매니저가 아직 업데이트 중인가?' 싶은 생각에 며칠 기다려봤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신규 매장 발령 전 잠깐 쉬라는 의미인가 싶은 생각에 마음이 슬슬 들뜨기 시작했다. 당시 예상치 못한 승진에, 고전하는 세컨드잡 업무에, 프라이팬에 똑떨어진 계란프라이처럼 퍼져버린 나는 그 짧은 며칠을 아주아주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 계획에 살고 계획에 죽는 내가, 당장 이주 뒤에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매니저와 나의 소통의 오류로 발생된 그 3일의 휴가는 -미안함과 죄책감에 여행 바로 다음날 아침 출근을 강행했다.- 내가 여태껏 품어온 생각, 관점을 한 번에 확 넓혀주는 포털이 되었다. 토론토에서 혼자 1년 남짓을 이미 보냈음에도, 풍경부터 가게, 음식 모든 게 새롭게 느껴졌다. 


마냥 걷고, 마냥 먹고, 마냥 구경했다. 사실 여행 중간엔 새로운 도시가 주는 새로움 외에 달리 영감을 받았다 생각하지 않았다. 여행이 가져다준 변화를 실감한 건 여행을 다녀오고 열흘 정도가 지나고 나서였다. 6일 근무하고, 3일 여행, 그리고 다시. 6일 근무를 마치고 나서. -여전히 대체 무슨 체력으로 그 일정을 소화했나 싶다.- 커피 한 모금으로 말랑해진 마음으로, 여행 도중 끄적였던 메모를 열었다. 진짜 생각나는 대로 막 적어서 글씨도 꼬불꼬불하고 대단한 내용이 담기지도 않았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 내 기질 같은 것들을 쭈욱 적어 내린 한 장이었다. 


나는 현재를 살지 않았다 늘 현재에 집중하지 않았다. 지금은 잠시 거쳐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내가 하는 일, 내 주변 사람들에 집중하지 않았다. 무지개를 바라보듯, 이상을 꿈꾸며 살았다. …. 그렇게 현재가 아닌 미래를 바라보며 달려가는 나는 늘 불안을 안고 살아왔다. 현재 내 모습이 꿈꾸던 이상과 달랐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는 상당한 스트레스가 되었다. 늘 꿈을 꾸기만 하는 사람은 그 꿈이 실현되지 않으면 절망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반복되면 아프게 된다. 나처럼.

서박하, ⌜소비단식 일기⌟, 휴머니스트, 2022, p.66~p.67


그렇게 원하던 걸 이뤘는데, 나는 늘 다음엔 무얼 할지를 고민했다. 막 승진하고, 세컨드잡에 적응했으면서 이직을 생각했고, 한국에 돌아가면 커리어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했고, 오늘이 아닌 다음 주를, 다음 달을 고민하고 걱정했다. 뭐든 현재를 위해 쓰기보단 미래를 위해 아껴두려 했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수년간 계획하고 노력해서 이뤄냈는데, 이뤄낸 것을 바라보기보다 금세 또 다른 것을 계획하고 있는 내 모습이. 


우연히 들른 레코드샵에서 좋아하는 음반의 희귀 LP를 구하고, 온종일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꾸물꾸물하던 하늘이 창가에 앉기 무섭게 서서히 바다를 보여주고, 짧은 일정 탓에 발걸음을 돌렸던 아이스크림 가게가 식당 바로 앞에 푸드트럭으로 찾아오고. 나의 3일은 예상치 못한 것들로 계속해서 가득 채워졌다. 어쩌면 삶 또한 여행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떨결에 붙은 워킹홀리데이 비자에 출국 2달 전 갑자기 체류 기간이 1년 늘어나고, 팝업만 참여하려던 회사는 1년 반째 다니고 있고. 모두 내가 내린 결정 같지만 -결과만 보면 그게 맞지만- 사실 눈치채지 못한 우연들이 모여 나의 매일을 구성하고 있었다는 걸. 실제로 보면 계획한 대로 완벽히 이뤄진 건 없다는 걸 말이다. 결국 늘 끝에 가선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선택의 방향이 틀어졌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을 살아야 한다. 오늘은 살고 또 오늘을 살아야 한다. 오늘이 모여 매일이, 매일이 보여. 내일이 된다.


방에만 계속 있다 보면 사람들과 만나기 더 싫어지는 것처럼. 너무 같은 상태, 같은 환경에만 머무르다 보면 생각의 시야도, 마음의 그롯도 서서히 좁아지고 작아진다. 그러다 보면 결국 내 세계가 축소된다.  머무르는 공간은 자주 환기도 시키고 공기를 순환시켜 주면서 스스로에게도 환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우리는 종종 놓치곤 한다. 우리 자신도 자주 환기를 시켜줄 필요가 있다. 방식이 꼭 여행일 필요는 전혀 없다. 또 모든 사람에게 여행이 환기를 시켜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의 세계를 환기시켜 줄 수 있는 그 방법을 꾸준히 찾고 또 찾으면 된다. 방법을 찾고 나면 거기에 변주를 주면 되고. 가장 중요한 건 우리는 자주, 주기적으로 자신만의 세계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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