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란 May 20. 2024

어떤 문장

미완결의 문장까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

 늘 무언가를 쫓으며 살아왔다. 단 하나의 문장들이 나를 계속해서 움직이게끔 했다. '캐나다 어학연수 가기'라는 문장을 완성시키기 위해 일찍이부터 돈을 벌었고, '캐나다에서 일하기'라는 문장을 완성시키기 위해 안 되는 것들을 되게 만들고자 노력했다. 모든 문장이 완벽하게 완성되진 않았지만, 적당히 괜찮은 수준으로 문장들을 완성시켰고 어느 새부턴 가는 완성된 문장들이 쌓여 나의 이야기가 되어갔다. 미완성인 이야기지만 차츰차츰 어떠한 형태를 이뤄나가는 듯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어느덧 3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나는 그 완성되지 않은 어떠한 것에 완벽하게 갇혀있다. 완성시킬 문장이 없다는 사실에 갇혔다.


 애정 하는 사람들과 그간 밀린 이야기들을 와르르 풀어내고, 나의 새 공간을 정비하며 두 달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더워, 더워!' 하며 아침에 눈을 뜨는 계절이 되었다. 시간은 그렇게나 빠르게 흘렀지만, 나 자신은 여전히 올 초에 멈춰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회포도 다 풀었고, 공간도 얼추 정리가 되었고, 오롯이 혼자가 된 나는 더 이상 그 생각에서 도망치기가 어려워졌다. 완성시킬 문장이 없는 나를 마주하자니 그 공허함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운 좋게도 당장 어떠한 것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스스로를 문장에 자꾸만 다시 가두려고 하였다. 왜일까. 그 이유를 찾지 못하고 방황한 지 몇 주 정도 흘렀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이 강박에 서서히 갇히기 시작한 시기에 읽은 책의 문장들을 정리하면서 그 이유를 찾게 되었다. 

무언가가 진행되는 중에 수반되는 열정과 기대와 불안이 아니라, 어떤 기다림도 남지 않았을 때 비로소 손에 쥐는 안정과 관조와 초연함을 갈망했다. 영화관에서 나오거나 읽던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찾아오는 고요와 적막을 사랑했다. 거기에는 픽션 속에 들어가 모든 것을 겪어낸 후, 손 위에 쥔 행복도 슬픔도 절망도 모두 곧 희미해져 갈 일만 남은 데서 오는 절대적인 안정감이 있었다. 

강지희, 김신회, 심너울, 엄지혜, 이세라, 원도, 이훤, 정지돈, 한정현, 황유미, ⌜혼자 점심 먹는 사람들의 산문⌟, 한겨레출판, 2022, p.9~p.10


 따지고 보니 나의 문장은 모두 완결형이었다. 열린 문장은 없었다. 즉, 늘 끝이 있는 것들을 쫓고 그 끝이 오는 순간을 지독하게 갈구했던 것이다 완성시킬 문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완결형 문장만을 바라왔던 것이 내 고민의 근본적 문제였다. 안정보다는 도전을 지향한다고 생각했는데 도전이 끝나고 난 후에 남는 안정감을 좋아했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싶었다.


 강박의 이유는 찾았지만 변한 것은 없다. 여전히 어떤 일을 하며 일상을 꾸려갈지, 내 열정이 닿아있는 것은 무엇인지와 같이 내 문장을 정의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질문한 것들에 대해서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아마 한동안은 몸으로 부딪혀가며 그것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시도해 보지 않을까 싶다. 한동안이 몇 개월이 될지 몇 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나는 계속해서 완결형 문장만을 완성시켜 나갈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나에 대해 하나를 더 알았다 사실에 만족하기로 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세계에서 탈출해야 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