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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Feb 15. 2024

애정하던 출판사에게 메일을 받았다

메일함을 열었다.

'어라? 내가 잘못 본 건가?'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이 도착해있었다. 발신인은 다름 아닌 유유출판사의 편집자님이었다. 이분은 작년에 유유출판사로부터 독자교정 제안을 받았을 때, 나와 함께 일했던 분이다. 어리둥절한 마음에 메일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독자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유유의 OO입니다.
이전에 독자 교정을 요청드리면서 몇 번 소통을 했었는데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잘 지내셨지요?

다름 아니라 이리 불쑥 메일을 드리는 건,
인터뷰를 요청드리고 싶어서여요.



유유출판사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 <보름유유>에 나를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싶다는 내용의 메일이었다. <보름유유>는 '책 주변의 사람들을 만난다'는 모토로 책을 만들고 소개하고 파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해 한 달에 한 번씩 발행하고 있는 레터로 나 또한 이 레터의 오랜 구독자 중 한 명이다.

근데 세상에, 나를 이번 달 인터뷰이로 초대하고 싶다는 연락이라니!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싶었다.



저희 유유를 좋아한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은 왕왕 있지만, 독자님처럼 여러 차례 정성 깊은 메일을 주시는 분은 흔지 않아서 마음에 깊이 남았었어요.
함께 책도 만들기도 했고요! 특히 저희 책을 오래 읽어 주신 것 같아 꼭 뵙고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다 그리 생각하고 있던 차에, 인터뷰이로 모시면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9월, 회사 복지로 한 달의 장기 휴가를 받고 유유출판사에 메일을 보냈던 적이 있다. 독서 생태계에 관심이 많았기에 한 달의 쉼 동안 혹시 출판사에서 어떤 일을 맡아볼 수 없겠냐는 제안이자 부탁의 메일이었다. 그렇게 유유출판사가 내게 요청한 일이 바로 독자교정이었다. 평소 책을 읽다가도 오탈자를 발견하면 출판사로 메일을 보낸 적은 많았지만(재쇄시 반영될 수 있도록) 교정교열이라는 걸 해보는 건 처음이었다. 경험이 없는 나에게 선뜻 업무를 제안한 유유출판사의 요청 덕분에, 판권에 내 이름이 들어가는 신선한 경험도 맛봤던 터였다.


독서 생태계에는 여전히 진심이다. 좋은 책과 좋은 글을 만나면 저자에 대해 궁금했고, 작은 동네 서점에서 열리는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며 나만의 독서 생태계를 부지런히 확장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질문을 건넸던 적은 많았지만, 내가 인터뷰이가 된다는 건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 모든 상황이 그저 생경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용기를 내 수락했다. 내가 오랫동안 애정 해왔던 유유출판사였고, 작년 한 달 동안 독자교정을 통해 메일로 소통을 이어갔던 편집자님이 계시니 든든한 마음이 더 컸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건, 내 일. 나의 본업이 마음에 걸렸다. 지금 이 시기는 내 업무 특성상 가장 바쁜 시기다. 재무팀에 근무하고 있어 결산과 감사를 준비하느라 업무 강도가 평소보다 더했다. 시간을 꾸역꾸역 만들 수는 있었으나 나는 나를 안다. 그런 상태로 임하면 모든 일을 그르칠 것이라는 것을, 에너지 자체가 낮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편집자님과 일정을 조율하며 직접 만나 뵙기 보다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쪽을 제안 드렸다. 레터 발송일까지 시간이 넉넉하지도 않았고, 바쁜 시기와 겹쳐 나 또한 물리적으로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그렇게 사전 질문지를 받고, 긴 답장을 드린 후에야 우린 전화 통화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메일과 문자만 주고 받다가 전화 통화를 하면서 가장 놀랐던 점 중 하나는 편집자님의 성별이었다. 나는 그동안 편집자님의 이름만 보고 남성분일 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너무나 고운 목소리의 여성분이셨다. 이름만으로 편견을 가졌다는 게 부끄러워 솔직하게 말씀드렸더니, 편집자님은 종종 그런 오해를 사곤 한다며 너그러이 웃으셨다. 핑퐁 하듯 질문과 답변이 밀도 있게 오갔다. 사전 질문에 대한 답변을 A4 3장 분량으로 넉넉하게 드렸기에 본 인터뷰는 다소 짧을 거라 생각했는데, 질문지에 없던 질문에도 차근차근 답하다 보니 인터뷰 시간은 어느새 1시간을 훌쩍 지나있었다.


그럼에도 그 시간 자체를 온전히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면접관들이 쏟아내는 공격적인 질문과는 차원이 다른, 나를 궁금해하는 누군가의 순수한 질문이었으니, 비교 자체가 되겠느냐마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답하면서 계속 느꼈던 건, 내가 책을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좋아하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어떻게 좋아하는지, 어디까지 좋아하는지 하나하나 설명하다 보니 화수분처럼 계속해서 말이 쏟아져 나왔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만으로 편집자님의 나이대를 가늠하기는 어려웠지만, 어느 정도 비슷한 연배로 여겨져 더 친근하게 대화를 이어간 점도 없지 않았다. 통화를 종료하기 전, 앞으로도 이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다음 번에는 직접 만났으면 좋겠다는 편집자님의 말씀에 나 또한 웃으며 화답했다. 책을 통해 또 하나의 좋은 인연이 만들어진 셈이다.


뉴스레터는 오늘 아침 9시에 발행됐다. 매달 15일이면 나의 메일함에 도착해있던 <보름유유>에 이번에는 나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몇 번을 읽고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읽고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내게 책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이자, 지금껏 내가 해온 것들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하나의 방증이지 않았을까.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 부러 천천히 걸으며 느릿하게 무언가를 읽고 사유하는 밀도 있는 과정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 세계에 몰입하다 보니 그곳에 속한 가지 또한 끝도 없이 뻗어간다. 무럭무럭 뻗어가는 가지처럼, 내 삶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다름 아닌 책과 함께 말이다.


작년 말부터 천천히 구상해왔던 독서모임의 밑그림이 드디어 이번 주말, 조금이나마 선명해진다. 브런치를 통해 알게 된 작가님과 처음으로 카페에서 만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읽고 쓰는 감각에 대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신 분과 독서모임을 만든다는 건, 내 삶에 또 어떤 경험이 될지 벌써부터 설레는 마음이 가득하다(물론 걱정도 살짝). 우리의 이번 만남이 부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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