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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Feb 22. 2024

배우가 되고 싶었다

제목 그대로 배우가 되고 싶었다.


다소 뜬금없는 첫 문장이려나. 근데 정말 그랬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종종 했던 질문 중 하나인데, '만약 당신이 지금 갖고 있는 외모, 나이, 학벌, 능력, 가정환경, 경제적 여건 등 온갖 조건을 다 빼놓고 순수하게 도전해 보고 싶은 직업이 있다면 무엇인가' 하는 질문. 상대의 대답은 여러 가지로 돌아온다. '아 이 사람이 이런 쪽에 관심이 많았구나'를 새삼스레 알아가기도 하고, 지금의 삶에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꼬집거나 자신의 결핍을 말하는 등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배우.

내 입으로 말하기 쑥스럽지만, 매번 그랬다. 하지만 쑥스러워하지 않기로 한다. 앞에서 전제로 달지 않았던가.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조건을 다 내려놓는다는 전제하에 하는 선택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궁금할 테지. 왜 배우냐고 말이다. 이유도 생각보다 단순하다. 아마 내가 그 직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기 때문에 납작하게 접근한 것일 수 있겠지만, 감정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직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읽을 때도,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도, 감정선이 다채롭다. 많은 걸 느끼고, 많은 걸 생각하며, 그 감정에 대해 말하고 나누는 걸 좋아한다. MBTI 식으로 표현하자면 확실한 F라고 생각하는데(자칭 낭만주의자), 업무 특성상 일을 할 때는 확실한 T 모드로 진입하곤 하니, 이것 또한 뭐라고 딱 단정 지을 수 없는 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그냥 나라는 사람 자체로만 봤을 때, 나는 감정을 들여다보는 걸 좋아한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도 내가 느낀 것에 대해 다다다다 풀어놓는 그 순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몰입이 지나쳐 다 쓰고 나면 속이 울렁거리거나 머리가 어지러울 때도 있을 정도로 이 감각에 집중한다.


그럼 계속 글을 쓰면 되지, 왜 배우가 하고 싶냐고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비슷한 생각을 여러 번 해왔던 터라, 알 수 없는 이 결핍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자면, 아마 글은 공간이 좁다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말할 수 있겠다. 말하기와 쓰기, 읽기와 듣기처럼 자신이 좀 더 자신 있는 분야가 있을 테고, 나 또한 직접 말로 하는 것보다는 천천히 사유하며 활자로 한 글자, 한 글자 풀어쓰는 게 내 방식이긴 한데, 감정은 조금 다른 영역인 것 같다. 역할을 빌려 나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이건 마치 글로 치자면 소설을 쓰고 싶은 욕구와도 닮아있는 것이다.


정확한 시점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 소설을 쓰고 싶었고,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의 목소리를 빌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가 아닌 것처럼 말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가면을 쓰고서 겁이 많다는 핑계를 대가며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남들은 절대 하지 못할 기발한 상상력과 풍부한 스토리, 이중인격 같은 면모를 보이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가상의 인물을 통해 무언가를 표출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왕이면 주인공의 독백을 통해 감정선을 깊이 담아서 말이다.


그래서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내가 하고 싶은 직업은 배우다. 30대 중반의 나이, 우직하게 한 길만 걸어온 나의 직업과 지식, 158센티라는 작은 키와 45킬로도 되지 않는 왜소한 체구, 몸치라는 치명적인 결점을 다 차치한다면 말이다. 매일의 자유를 노래하는 내게 감정선을 풍부하게 담아 마음껏 표현하고, 하나의 창작물로 완성시킨다는 건 너무나 매력적인 일로 느껴졌다. 물론 그 직업을 택한다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대인관계 에너지에 내 모든 기가 빨리겠지만, 일단 그런 것 또한 넣어두고서 말이다.


하지만 지난주에 다녀온 전시 <논펀저블(NONFUNGIBLE): 대체 불가한 당신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이 생각들이 얼마나 철없고 얄팍한지를 깨달았다. 이 전시는 에틱(ETIK)의 첫 번째 전시인데, 에틱은 류덕환이 이끄는 예술 프로젝트로, '작품의 탄생에 적극 참여하는 배우에게는 저작권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류덕환이 총 네 명의 배우들(류승룡, 천우희, 지창욱, 박정민)을 인터뷰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과 인터뷰에서 발견한 서사를 기반으로 배우가 직접 퍼포먼스로 표현한 ‘NFA'(Non-Fungible Actors·대체할 수 없는 배우들) 영상으로 구성된 이 전시는 약 90분 동안 진행된다.



배우는 작품의 저작권을 가질 수 없는 걸까.
배우는 자신의 이야기로 연기를 할 수 없을까.
배우의 연기는 타인의 글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걸까.
배우는 필연적으로 타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네 명의 배우 중 가장 인상 깊게 봤던 배우는 천우희였다. 평소 일기 쓰기를 좋아하고 자기를 탐구하는 것에 관심이 많은 그녀는 기록에 대해 '지금 이 순간을 붙잡아둘 수 있는 작업'이라고 표현한다. "자기 자신에게 점수를 매긴다면?"이라는 질문을 받자마자 "나는 이 질문을 굉장히 싫어해. 점수가 몇 점이 만점인 건지도 모르겠고."라고 간결하게 답한다. 그녀가 연기를 하면서 힘들었던 건, 연기조차 기능적이고 효율적으로 해야만 하는 현장의 속도감과 분위기였다. 인터뷰 영상을 지나 그녀의 퍼포먼스 영상을 보는데, 컷 소리에 맞춰 울고, 웃고, 화내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신속하게 연기를 이어가는 모습에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단 몇 초 만에 좌중을 휘어잡는 압도적인 연기에 놀라는 한편, 찰나의 순간에 담긴 감정의 찌꺼기는 언제, 어떻게 덜어낼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효율적인 연기'를 빨리 해줘야지만 (진행)될 때가 더 많아."


내가 그날 본 배우들의 모습 속에는 자유가 없었다. 감정의 표현만 있었다. 그 감정조차 자신이 원한 것이 아니다. 타인의 역할을 말 그대로 연기하고 있었다. 나라는 존재를 철저하게 지워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전시의 제목처럼 "대체불가한 당신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말하기 위해 네 명의 배우가 모였고,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전한다. 연기 속에 진짜 자신은 없었다고, 여전히 '나'라는 존재를 찾고 있다고 말이다. 나는 그날 필연적으로 타인의 삶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가 아닌 배우라는 직업 뒤에 있는 가려진 개인의 서사를 만났다. 그들이 만든 영상이 처음으로 저작권을 갖게 되는 자리였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그날부터 배우들의 연기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마음껏 표현할 수 있지 않나? 라고 생각했던 나의 얄팍한 생각과 대척점의 위치에 있는 게 배우라는 직업이었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세계를 막연한 상상만으로 그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질문해 본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이제 답은 조금 더 명료해진다.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 책과 관련된 일을 하며 무언가를 계속 쓰는 사람이고 싶다. 돈이 되는 일이든 되지 않는 일이든, 어떤 속성을 갖고 하는 일이든, 꼭 직업이 아니더라도 이 생태계에 나를 계속해서 넣어주고 싶어졌다. 나는 이제 배우가 되고 싶지 않다(아니 근데, 누가 시켜는 준다니?). 뭐 어차피 될 수도 없겠지만. 무엇보다 타인의 삶을 대신 살고 싶지 않다. 나라는 자산을 소유할 수 있는 건 온전히 나 하나로 족하다. 그날 다녀온 전시의 여운은 꽤 길었고, 류덕환 배우의 첫걸음도 응원하고 싶어졌다. 시즌 2, 3... 계속해서 새로운 배우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담았으면 좋겠다. 좀 더 다채로운 질문이면 더 좋고. 삶은 곧 스토리의 연속이라고, 그 스토리가 있기까지 한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의 서사를 집중해서 듣는 건 너무나 소중한 작업인 것 같다. 누군가가 꿈꾸었던 책과 사람 프로젝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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