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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Aug 29. 2024

나도 들판을 걸어야지

아이오와는 뭔가를 잊을 수 있도록 돕고, 그것을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이라던 동료 작가의 말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그 말은 어쩌면 들판의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난 끝없이 들판을 걸어보고 싶다. 반대 방향으로 걸었을 때 우연히 진짜 삶을 발견하게 되어 지금까지의 삶을,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전혀 다르게 바라보게 될지도 모르니까. 한국과 정반대에 있는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유를 발견한 것과 같이. 그것은 들판이 내게 준 것이었다.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문보영



지난 주말,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 서울시발레단의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공연을 보고 왔다. 내 생애 첫 발레 공연이었다. 서울시발레단은 국립발레단, 광주시립발레단에 이어 48년 만에 창단한 국내 세 번째 공공 발레단이자 우리나라 최초 공공 컨템퍼러리 발레단으로, <한여름 밤의 꿈>은 그들의 창단 공연이기도 했다. 컨템퍼러리 작품답게 환상적인 영상과 감각적인 무대 연출, 의상, 음악 등 신선한 충격이라는 평이 많았는데, 내 경우 발레 공연이라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 더 어리둥절했다. 내가 기대했던 발레 공연이라 함은 한 마리의 백조처럼 우아하고 부드러운 동작과 서정적인 음악을 상상했는데, 웬걸. 1막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건가 싶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건 뭐 환상을 넘어 파격적인 퍼포먼스에 가까웠다. 무용수들의 광기 어린 모습에 눈을 떼기 어려웠다.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말을 유독 좋아한다(비슷한 제목의 노래도). 사계절 중 여름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나지만, 그럼에도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정서가 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과 열기, 손차양으로 아무리 막아내려 해도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강렬한 빛, 젊음을 상징하는 빨간색, 식지 않는 뜨거운 밤. 밤은 유독 여름과 잘 어울린다. 무더위를 피해 새벽에도 와글와글 활기가 넘치는 사람들, 집안에 콕 틀어박혀있던 겨울과 달리 늦은 밤거리도 위험하지 않을 생동감 있는 계절. 그래서였을까, 여름의 추억들을 상상할 때면 으레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리곤 했다. 정작 셰익스피어 희곡 <한여름 밤의 꿈>은 읽어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이번 발레 공연을 예매하며 예습도 할 겸 이 작품을 처음 읽었다. 익숙한 장르가 아니라 난해했다. 네 남녀의 사랑이 얽히고설켜 다소 난잡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거기다 등장인물도 많아 첫 장의 인물소개를 몇 번이나 들춰봤던지. 얇은 책이었지만 다 읽고 난 후에 든 생각은 '이게 뭐지?'였다. 원작을 읽고 발레 공연까지 보고 난 후의 소감 또한 '내가 도대체 뭘 본 거지?'였다.


이번 공연은 <한여름 밤의 꿈>을 모티브로 안무가가 재창조했다는데,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름만 같았다 뿐이지 공연을 관람하는 내내 원작은 단 한순간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다. 어쩌면 이건 예술 공연에 문외한인 나의 무지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1막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였다. 더 재미있는 건 충격과 공포 중에 공포 쪽에 더 가까웠다는 것이다. 감독이 그 장면을 통해 무엇을 연출하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다. 온몸을 꺾어가며 기계처럼(아니 사실 공포 영화의 귀신같기도) 동작을 이어가는 부분이 있었는데, 손짓 발짓 무엇 하나 정상성(?)을 벗어난 느낌이었다. 인간의 유연함을 뛰어넘는 기괴한 몸짓이라고 해야 할까. 보통은 발레 공연을 보면서 그로테스크하다는 표현도 하고, 막 그러나?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고,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여기는 영화관도 아니고, 내가 보고 있는 게 공포영화도 아닌데, 의자 손잡이를 꽉 부여잡아야만 했다. "서울시발레단 <한여름 밤의 꿈>은 고전의 틀을 과감히 깨뜨린 새로운 명작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는 소개글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20분의 인터미션이 지나고, 2막이 시작됐다. 다행이다. 2막은 내가 익히 알고 상상했던 본연의 발레로 돌아와있었다. 무용수들이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며 감정선에 따라 호흡을 이어가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을 보는 것 같았다. 섬세하고 날렵한 동작들이 부드럽게 펼쳐졌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아름다운 몸짓들이 경이로워 자꾸만 눈물이 났다. 정통 발레의 정수를 느낄 수 있었다. 1막과 2막은 각각 50분 동안 진행됐는데 극과 극의 분위기였다. 전혀 다른 작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생경한 경험이었다. 발레 공연이 처음이라 혹시나 지루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웬걸, 공연이 끝나고도 쉽사리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 다른 관객들이 공연장을 떠날 때까지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얼마 전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6일간 열린 국제음악제를 다녀왔다. 매년 여름마다 찾아오는 클래식 음악 축제인데, 올해로 4번째를 맞이했다. 고전과 현대, 클래식과 퓨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주를 선보였다. 나는 여러 공연 중 시간대에 맞는 공연을 찾아 다녀왔다. 이쪽 방면으로는 원체 조예가 깊지 않았던 터라 얄팍한 지식만 갖고 다가서는 게 맞나 싶어 머뭇거림의 시간이 길었지만, 이번에 알았다. 내가 이 분야에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걸, 더 정확히는 몰입하는 사람들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광기를 엿보는 것에 전율을 느낀다는걸. 그래서 다짐했다. 앞으로도 다양한 예술 문화를 경험해 보자고. 이번 발레 공연, 특히 1막의 충격은 아직도 쉽사리 가시질 않는다.


대학교 교양 수업 중에 '대중문화의 이해'라는 강의를 들었던 적이 있다(아닌가, 대중예술의 이해였던가. 뭐 어쨌든). 21살의 나는 예술과 창작에 재능은커녕 관심조차 없던 때라 '대중문화의 이해'는 그저 공강일을 맞추고자 끼워 넣었던 과목 중 하나에 불과했다. 보통 수강신청을 할 때, 소문처럼 떠돌던 나름의 정보들(족보라고 하는)이 있었는데, 이 강의는 그런 면에서는 허허벌판 같았다.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심지어 같이 수강하는 동기도 없어 더 막막했던 기억이 난다. 오리엔테이션을 들으면서 알았다. 매주 한 편의 작품을 감상하고 감상문을 제출하는 수업이었다는걸. 취소할까 잠시 망설였지만 '에잇 한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내버려뒀다. 그리고 한 학기 동안 그 수업을 들으며 알았다. 생각보다 내가 이 분야를 좋아한다는걸. 그 수업이 아니었다면 평생 내 손으로는 절대 찾아보지 않았을 여러 작품을 감상했다. 매 수업 시간마다 불이 꺼지고 영상이 펼쳐지던 강의실의 고요한 분위기가 아직도 기억난다. 심지어 수강생도 별로 없어 몰입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다만 어떤 작품은 억지로라도 감상문을 꾸역꾸역 써내는 과정이 꽤 고통스럽기도 했다. 그럼에도 분명 깨닫는 바가 있었다. 처음에는 난이도가 높은 수업이라 낙담했는데, 회가 거듭될수록 이 수업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성적표가 나오던 날, 과목 옆에 새겨진 선명한 A+가 내 마음에 울림처럼 다가왔다. 처음이었다. 내가 예술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던 게.


20대의 나와 30대의 나를 가만히 놓고 보자면 참 많이도 달라졌다. 변했다기보다는 서서히 나를 알아가고 있는 중이라 여겨진다. 뿌리는 같지만 잎의 색채가 선명해지는 느낌이랄까. 나의 영역이 아닐 거라 단언했던 분야가 실은 나의 영역이었다면? 나조차 몰랐던 또 다른 재능과 흥미를 뒤늦게 발견하게 된 것이라면? 그 순간 나는 이 모든 걸 조금 더 빨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 후회하는 사람일까? 그렇지 않았다. 모두 다 저마다의 속도(속력 아니고 속도)가 있다. 시기가 있다. 사람에 따라 환경에 따라 바라보는 차이가 있으니까, 깨닫는 시기도 다를 테고. 나는 그저 나만의 속도로 이 모든 과정을 천천히 밟아가고 있었을 뿐이다. 그저 내 박자에 맞게 말이다.


지난 독서모임에서는 문보영 작가의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이라는 책으로 독서모임이 진행됐다. 이번 모임이 유독 좋았던 건 멤버 구성원들 한 명 한 명의 진솔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림처럼 닿았기 때문이다. 책을 언제부터 좋아했냐는 질문에 '아마 이 멤버들 중에 내가 가장 늦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정말 그럴 것이다. 브런치에서도 유독 책에 대한 글을 많이도 썼는데, 그럴 때면 사람들은 으레 나의 독서력(?)에 대한 편견을 가진다. 어릴 때부터 읽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정답은 '땡'이다. 나는 20대 중반부터 책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사람이다. 이 행위를 좋아한 지가 다른 책쟁이들에 비하면 많이 늦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은 길고, 좋아하는 걸 제대로 좋아하기 시작하면 얼마나 지독하고 치열하게 좋아하는지를 내가 알기에. 나는 늦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뭐래) 어쨌든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으니까.


브런치에서 구독하고 있는 '배가본드' 작가님의 글에서 책을 좋아한다 말하면 '일 년에 책을 몇 권 읽느냐'는 질문이 꼬리표처럼 따라온다는 문장을 읽었다. 요지는 일 년에 책을 몇 권 읽었다는 사실이 과연, 책을 얼마나 좋아하느냐에 대한 지표가 될 수 있느냐는 건데. 나 또한 같은 마음이다. 자꾸 뭘 그렇게 측정하려 드는지 참. 그렇게 따지면 20대 중반부터 읽는 행위를 좋아하기 시작해, 일 년에 100권가량의 책을 꾸준히 읽어대는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물론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지표로 삼을 수는 있겠지만, 그건 그냥 내 경우인 거고. 그렇게 읽지 않는다고 해서 '에이, 그 정도면 책 좋아하는 거 아니지'라고 말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니 속단하지 마시라고요. 나는 그저 좋아서 읽었을 뿐이고, 책을 좋아한다는 걸 뒤늦게 알았을 뿐이고. 얼마나 좋아하고, 어떻게 좋아하는지는 그저 본인만 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회사에서도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게 여기저기 소문이 난 건지(심지어 연말에 '다독왕'이라는 상을 받은 적도 있다), 주변에서 종종 책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마다 난감하기 그지없다. 그건 본인이 스스로 찾아야지 곁에서 누가 알려준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을 싫어했다. 단순히 안 읽는 게 아니라 싫어했다. 지긋지긋하게 말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엄마가 억지로 읽으라고 강요했기 때문에. 온갖 필독서를 다 갖다주고는 강제로 읽혔다. 읽지 않으면 친구들과 나가 놀지 못 하게 했다. 그럼 오빠는 군말 없이 책을 해치우듯 읽어버리고 나가 놀았지만, 나는 강제성이 부여된 모든 것에 반골기질이 충만한 꼬맹이라 읽지도 않고, 놀지도 않았다(으이그).


하지만 지금의 나는 오히려 그 반대가 됐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력이 점점 떨어지는 게 두렵다. 읽지 못할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읽고 싶은데 읽지 못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는 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엄마가 그토록 바라던 '책 읽는 딸'이 되었지만, 매일 지독하게 무언가를 읽어대는 나를 보며 되레 엄마는 이제 이렇게 말한다. 너무 책만 읽으면 세상 물정에 어두워진다고, 꿈만 꾸는 사람이 된다고. 나는 엄마의 이중언어에 할 말을 잃고 그저 읽는다. 몰라,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누구에게나 다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옆에서 아무리 말려도 절대 말려지지 않는, 자신만의 고집스러운 때가 말이다. 발레 공연으로 시작했던 이야기가 결국 책까지 왔다. 그래, 그래서 이번 글도 결국은 책, 책 이야기다. 책을 지독하게 싫어하던 꼬맹이가 자라 책을 지독하게 읽어대는 어른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삶의 반의어는 들판이구나. 그럼 들판을 걸어야지."라고 말하는 문보영 작가의 문장처럼, 삶을 직면하다가도 들판을 걸을 수 있는 여유와 용기. 그 모든 순간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면 다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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