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민해 Oct 30. 2024

독서모임의 생과 사

"사람들이 전부 책을 읽고 온다고? 자기가 고른 것도 아니고 남이 고른 책을?"
"평일 저녁이면 갑자기 회사 업무가 생겨서 결석하는 사람도 있지 않아요? 한 명 정도면 괜찮겠지만 대여섯 명 중에 두 명 이상 결석하면 모임이 제대로 돼요?"
독서모임을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으레 듣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죠. 그런 게 뭐가 문제가 될지. 아예 독서와 담쌓고 지내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스스로 독서모임에 참여하겠다고 한 사람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책은 (적어도 절반은) 읽어 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사정이 생겨 결석하는 몇 사람이 문제가 될 거라고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몇 번 반복하고 보니 독서모임에는 규칙이 필요했습니다. 매번 예고 없이 결석하는 분이 있었고 정말 책을 조금도 읽지 않고 오는 분도 있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제시간에 오더라도 모임 때마다 혼자만 길게 발언하려는 분도 있었고요. 이 모든 변수가 모임 분위기를 크게 좌우했고, 반복되니 모임 전체가 흔들렸습니다. 모임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규칙을 정해야 했습니다.

<독서모임 꾸리는 법> 원하나



올해 초부터 시작했던 모임이 벌써 8회차를 맞았다. 한 달에 한 번씩 공동 리더님과 번갈아가며 진행하고 있어 부담도 없고, 고른 책마다 만족도가 높아 기분 좋은 설렘을 느끼며 다음 모임을 기다리게 된다. 다만 모임이 열릴 때마다 참석하는 분들이 다르다 보니 늘 변수가 존재한다. 덩달아 나의 마음도 오르락내리락, 불편함이 삐죽삐죽 돋아날 때가 있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자리니만큼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많은 걸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모임이라는 건 최소한의 규칙이 바로 서지 않으면 제대로 굴러가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자칫 모임의 본질을 망각하고 친목모임으로 변질되는 경우도 허다하니까.


오래전 트레바리(독서 모임 커뮤니티) 윤수영 대표의 인터뷰 영상을 봤던 적이 있는데, 그 영상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사실 독후감 제도였다. 독후감을 쓰고 안 쓰고의 중요성을 말하는 게 아니라, 모임 2일 전까지 독후감을 쓰지 않으면 모임에 올 수 없도록 하는 원칙을 만들었다는 게 흥미로웠다. '지정도서를 읽은 사람만 모임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라는 규정을 만들어뒀어도 사실상, 모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참석자가 책을 읽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모임 참석 전에 일일이 물어보는 것도 유치하고. 그래서 원칙을 세웠다는 것이다. 참 재미있는 일 아닌가. (너무나) 당연한 걸 하지 않아서 이런 장치까지 일일이 만들어야 한다는 게 말이다.


아니, 우리가 무슨 한두 살 어린아이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이 이걸 몰라서 못 하는 건 아닐 테고, 알면서도 하지 않는 거니까. 그런 이들을 붙잡고 숙제 검사하듯 하나하나 일일이 검사해야겠냐고(오죽하면 그랬겠니 오죽하면). 나는 차마 독후감까지 쓰게 할 수는 없었지만 여러모로 공감되는 원칙이긴 했다. 더군다나 트레바리의 경우 유료 모임이다. 그래서 회원들 중 버젓이 원칙을 어기고도 돈을 날리기 아까웠던지, 독후감을 쓰지 않았지만 참석할 수 있게 해달라고 떼를 쓰거나 환불해달라는 이들도 꽤 많다고 들었다. 심지어 소비자보호원에 고발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이걸 가지고 "으이그, 그렇게까지 해서 독후감을 받아야겠어? 그냥 대충 읽고 가면 되지"라고 말하는 사람과 "그거 하나 못 읽어서 일을 이 지경까지 만들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확실한 후자다. 그냥 읽으면 되는 거고, 읽기 어려우면 참석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규정에 명시되어 있잖아!). 너무도 당연한 걸 하지 않아서 장치를 만든 건데, 그걸 갖고 장치를 만들었다고 투정을 부리는 막무가내는 대체, 막내라서 막무가내인 거야? 뭐야? (말장난입니다)



두 번째로 해결해야 했던 변수는 책을 읽지 않는 회원들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독서모임의 묘미는 책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을 듣고 나누는 데 있습니다. 의견은 독서와 사유 속에서 만들어지죠. 책을 제대로 읽지 않으면 의견을 정립하기 힘들고 발언을 피하거나 책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 회원이 많아질수록 대화는 개인 에피소드 중심으로 흐르고 모임 분위기가 산만해집니다. 책을 열심히 읽은 회원은 원했던 토론을 하지 못하면 아쉬워하고 책과 무관한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을 불편해합니다.
(중략)
'매번 한두 명 정도는 상습적으로 책을 읽지 않고 오는 모임'과 '어쩌다 한두 명 정도 책을 읽지 않고 오는 경우가 있는 모임'은 분위기가 확연히 다릅니다. 책을 읽지 않은 회원의 발언 태도도 굉장히 다르고요. 독서모임에서 독서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완독에 대한 규칙은 어렵더라도 반드시 세워 두어야 하고, 그래야 독서모임다운 독서모임을 오랫동안 재미있게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지향하는 모임은 책을 일방적으로 권하는 모임이 아니다. 안 읽겠다는 사람을 억지로 붙잡아 '제발 책 좀 읽어주세요!'라고 사정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그럴 기운도 없습니다), 이 사회를 책 읽는 사회로 변화시키겠다는 거창한 포부를 밝히며 결의를 다지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저 한 달에 한 번 만나 정해진 책 한 권을 제대로 읽고 대화를 나누자는 게 그렇게 큰 욕심일까? 아무리 작은 모임일지라도 규칙은 중요하다. 최소한의 규칙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최소한이고, 그 최소한조차 지키지 못하면 모임이 망가지는 건 한순간이다. 이제껏 다양한 독서모임을 오가며 숱하게 겪어온 일이고, 그게 싫어서 직접 만들었던 것 아닌가?


공동 리더님을 알게 된 것도 그쯤이었다. 그분이 쓰신 글을 종종 읽곤 했는데, 어느 날 올라온 글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이런 분이라면 함께 모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치고 올라왔다. 본질을 흐리지 않고 목적에 부합해 정성스럽고 진득하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연구적인 사람이라 여겼다. '골랐다'는 표현은 다소 건방지다 여겨지고 '마음이 동했다'는 표현이 조금 더 적확하겠다. 기준은 단순했다. 나의 이 철저한(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당연한) 규칙들을 일일이 나열하다 보면 모임의 진입장벽이 높아져 사람들이 모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명(리더님과 나)이서만 모임을 진행해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괜찮겠다 싶은 사람. 회원 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설령 그분과 나 계속 둘 뿐이라 해도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첫 모임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되었다.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나기 전까지(사실 나는 그 사람도 싫었다) 우리 두 사람은 한 권의 책을 바탕으로, 밀도 있는 대화를 마음껏 이어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며칠 전에 있었던 모임은 공동 리더님이 주최한 모임이라 나의 의견을 덧댈 수 없었다. 읽지 않고 참석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이에게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지만 속마음은 달랐다(괜찮기는 개뿔). 내가 말하는 "다음에 또 뵈어요"는 일단 다음 달은 아니었다. 그 사람이 모임을 또 신청한다면 '한 번은 꼭 못 오게 할 테다'라는 마음을 품었다. 솔직히 아예 안 나왔으면 좋겠지만, 이 마음이 나쁜 건가? 모임 대문에 규칙을 하나 더 내걸었다. 완독 완독! 몇 번을 써 놓아도 뻔뻔스럽게 다 읽지 않았다고(근데 왜 오셨어요?) 말하는 심리는 대체 무어란 말인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그걸 일일이 하나하나 다 따져가면서 사람을 모으냐고. 글쎄, 그럼 내 대답은 이렇다. 그럼 모으지 않으면 되고, 모이는 사람들끼리만 하면 된다고.


책은 누구랑 같이 만나 읽는 것이 아니라 각자 읽고 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독서 모임도 마찬가지다. 그 정도도 못할 것 같으면 독서모임을 안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대학 때도 친구들 중에 꼭 같이 공부하자고(하물며 과제도) 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나는 이 말이 정말 이해되지 않았다. 다 자기 공부고 시험도 각자 보는데, 뭘 자꾸 같이 하자는 거지? 시험지도 같이 손잡고 풀래? 각자 혼자 알아서 좀 하고 오라고 쫌! 우리가 만나서 해야 할 건 개인 공부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공부하면서 몰랐던 부분, 토론하고 싶은 주제를 나누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좀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나?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계속해서 말하지만 그러려고 만든 모임이고, 그게 내가 지향하는 독서모임의 형태니까.


다만 모임을 혼자 운영하는 것이 아니기에 속마음을 글로 적기까지 고민이 깊었다. 중간중간 공동 리더님과 규칙을 조정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내 욕심 같아서는 더 독하고 세밀하게 가다듬고 싶었다. 그래서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혼자 생각이 깊어지곤 했다. 매번 선정되는 책을 읽을 때마다 모임분들과 나눌 이야기에 기대감이 한껏 부풀었다가도, 신규로 신청하는 분들이 계시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바짝 긴장한 채 모임 장소로 향했다.


'오늘은 괜찮을까?'


낯선 이들의 어떤 면면들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건 말일 때도, 행동이나 태도일 때도 있었다(지각 좀 하지 맙시다?). 그래, 이게 내 솔직한 심정이지. 지난 모임에서도 나눴지만 나는 생각이 너무 많다. 차라리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이 많은 생각을 꾹꾹 누르려니 답답했다. 나를 보며 너무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 수 없다고 말하던 지인의 말이 불쑥불쑥 떠올라 마음을 접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공동 리더님께 이 말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도, 이런 문제들을 나 혼자만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말을 삼키고, 또 삼키고. 마음속으로 차곡차곡 쌓아둔 말들이 흘러넘칠 때가 되면, 이렇게 또 자판 위에 손을 올린다. 다다다다다 신나게 글자를 써 내려가다, 지우고, 지우고, 또 지우고를 반복한다. 스스로를 검열하듯 글도 검열해간다. '이 말은 너무 심한 것 아닌가'라고 가만히 읊조리며 말이다. 그러던 와중에 문제의 인물 A에게서 모임 가입 신청을 받았다. 내 대답은 '거절'이었다. 물론 거절하기에 앞서 공동 리더님께도 의견을 구했다. 다음 달 모임 공지가 올라갈 때쯤에야 A가 신청하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빨리 신청하다니? 심지어 소셜링 모임도 아니고, 모임 자체를 가입신청하다니? 솔직히 많이 놀랍긴 했다. 다행히 공동 리더님도 나와 의견이 맞았다. 그날 우린 비슷한 지점에서 불편함을 느꼈던 것이다. 나란 인간은 원래 협업에 능통한 사람이 아닌데 이상하게 공동 리더님과는 그동안 어떠한 마찰도 없었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둘 다 연락을 잘 안 하는 편이라 더 그런지도. 다음 모임이 시작되기 전까지 서로의 존재를 잊어버릴 정도로 말이다.


이제 다음 달은 내가 모임을 여는 날이다. 책은 그전부터 이미 정해뒀고, 소개글을 어떤 식으로 써볼까 이것저것 고민하는 중이다. 내가 원하는 방식 그대로 날것을 쏟아낼까 독기를 잔뜩 품었다가도, 이건 아니다 싶어 (이성의 끈을 부여잡고) 토닥인다. 후기를 쓸 때도 비슷한 마음이다. 모임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앱이 너무 개방적이라 우리끼리 나눴던 내밀한 이야기를 후기로 좌르륵 담기에는 그 얄팍함이 싫었다. 소중한 이야기보따리를 꽁꽁 싸매고 싶어져 지난번 모임 후기도 올릴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업로드하지 못 했다(그날은 3명이라 이야기가 더 깊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초보 모임장은 여전히 어리숙하고 서툰 지점이 많다. 규칙이 하나하나 늘어갈수록 대문의 공지도 덩달아 길어진다. 큰일이다.


근데 솔직히... 큰일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완벽'이란 단어의 함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