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이민 살이 10년 차지만 아직 캐나다를 배우는 중에 있습니다
어젯밤, 내가 살고 있는 캘거리 북부지역에 큰 우박이 내렸다. 핸드폰에는 우박 주의보 문자가 왔고, 다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차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 창문도 굳게 닫은 채로 집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거리에는 사람이 없고, 평소라면 대낮처럼 밝은 저녁 7시이지만 어둠이 몰려와서 어두깜깜한 밤이 되었다. 뉴스에서는 야구공 만한 크기의 우박이 내릴 거니 밖에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당부했다.
8월의 한 여름 저녁, 한국에 있을 때는 매미가 울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더위를 피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8월 5일의 캘거리의 저녁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있을법한 크기의 수백만 개의 얼음이 모든 집과 차를 세차게 내려쳤다. 길거리에는 아메리카노에 실수로 우유를 많이 부어서 탁탁해진 커피색마냥 흙탕물이 넘쳤다. 캘거리는 여름 우박으로 유명하지만 이 정도의 크기와 강렬한 우박은 이민 생활 10년 만에 처음이었다.
다음 날 아침, 평소처럼 새벽에 일어나서 헬스장과 카페를 가기 전에 집주의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깨진 창문이 없었고 차도 무사했지만 집 한쪽 벽에 구멍이 서른 개 정도는 뚫린 것 같아 보였다. 큰 아이가 애정을 가지고 키우던 해바라기 마저 꺾인 채로 흙바닥에 내팽개쳐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또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돈이 들어갈 생각을 하니 한숨만 나왔다. 캐나다의 인건비와 재료비는 비싼데 가뜩이나 요즘은 캘거리의 부동산 붐으로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기 때문에 속상함이 밀려왔다. 보통 이런 일은 보험회사로부터 어느 정도 비용을 보상받지만, 우리 집 보험은 최소 금액을 내고 있어서 우박으로 인한 피해 보상은 제외되어 있었다. INFJ의 성격 때문인지 이런 일이 있으면 쉽게 잊으려고 해도 잊히지 않고 계속 걱정하게 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한 없이 작은 존재라는 걸. 그리고 모든 일은 전혀 예상치 못할 때 찾아온다는 것이다. 캐나다에 살면서 지난 10년 동안 많은 좋은 일과 속상한 일들이 있었다. 이번 일은 속상한 일이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고 항상 나쁜 일 뒤에는 좋은 일들이 온다는 막연한 믿음 때문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는 것 같다. 앞으로 캘거리에 오셔서 집을 처음 사실 분들은, 우박 피해 보상 항목을 집 보험 항목에 꼭 넣으시길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
행복은 아무 문제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이 문제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해결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레벨이 될 때 오는 것이라면 저는 아직까지 일상 문제들에 영향을 잘 받는 인생 초보자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