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대한 상
100세 시대를 처음 살아가는 우리들은 50대, 60대, 70대, 80대, 90대의 상을 새롭게 세워나갈 필요가 있다. 우리 시대 새로운 어른의 상을 제시해주고 있는 배우 윤여정 어록 중에 이런 말이 있다.
60살이 돼도 인생은 몰라요. 내가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나 67살이 처음이야
어른들이 통상적으로 말하는 '나이에 따른 상(나잇값)'은 100세 시대 기준이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균수명 82.7세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OECD 평균(80.7년)보다도 2년이 더 긴데 이는 세계 최상위권 수명이라고 한다. 100세 시대가 우리의 현실이고, 미래학자들은 이제 120세 시대를 내다봐야 한다고 하고, 보험사들도 120세 만기의 보험 상품을 내놓고 있다.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이’를 바탕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태도를 규정짓는다. 흔히 말하는 ‘나잇값’이다. 상대방을 ‘나이’로 으레 규정하고 그에 따라 상대를 대하는 태도와 언어를 설정해야 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나이’를 묻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 설령 나이를 직접 묻지 않더라도 대화를 통해 학번 등들을 통해 추측하려 한다. 나이를 기준으로 사람의 외모가 ‘동안’이다, ‘노안’이다를 판단하고 그 사람의 행동거지를 판단한다. 나이가 많은 것에 기준치가 된다.
고려시대(918~1392년) 34명의 임금들의 평균수명은 42.3세, 조선시대(1392~1910년) 임금 27명의 평균수명은 46.1세였다고 한다. 왕들의 수명은 40세 전후에 불과한 셈이다. 조선시대 서민들의 평균 수명은 34세 정도이었을 거라 한다. 다만, 당시 1세 전후 영아 사망이 많았을 때 인지라, 성인들의 평균 수명만을 가늠해 보면 50세 이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렇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인류는 평균 50-60년이 인생에 주어진 시간에 전부였던 것이다. 때문에 우리 사회 전반에 형성되어 있는 나이에 대한 기대도 평균수명 60세 시대를 살아가던 모습에 그쳐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100세, 더 나아가 120세 시대를 처음 맞이한 우리 모두는 우리에게 주어진 100년, 120년이라는 이 귀한 시간이 낮 설기만 하다. (많이 바뀌고 있긴 하지만) 우리 삶은 여전히 평균수명 60세 일 때의 사고와 라이프 스타일에 많이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형성된 ‘나잇값’에 대한 이해도 이 기준에 여전히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닐까?
유교적으로 예로부터, 10대는 사춘기라도 방황할 때가 아니라 학문에 정진하고(지학, 志學), 20대는 성년에 이르러 어른이 된다는 의미로 상투를 틀고 갓을 쓰고 혼인을 하여 사회생활에 힘을 쏟고(약관, 弱冠), 30대에 독립해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이립, 而立), 사물의 이치를 깨달았다는 40세는 자신의 이념과 철학에 따라 유혹에 홀리지 말고(불혹, 不惑), 50대는 하늘의 뜻을 깨닫고(천지명, 知天命), 60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이순, 耳順) 사는 삶, 그렇게 제 나이의 값을 하며 살면 70세는 뜻대로 행하여도 도에 어긋나지 않는 생활을 한다(고희, 古稀)고 여겼다.
이처럼 나이는 축적된 시간에 맞춰 말과 행동을 항상 점검할 수 있는 기준치가 되어 주었다.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 통념 외에는 기준점이 없는 추상적인 값이다 보니 가늠하기 어렵지만, 우린 여기저기서 ‘나이 값도 못 한다’, ‘나이 값 좀 해라’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듣고, 나이 값에 맞춰 행동하기를 요구받받는다. 그렇게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에 따른 부담이 있고, 간혹 나이를 훈장처럼 여기는 경우도 있고, 회사 승진에서도 암암리에 나이 많은 사람을 먼저 배려하기도 한다, (요즘엔 블라인드 채용을 많이 하기도 하지만) 신입직원을 뽑을 때도 기존 구성원들과의 연령 비율을 고려하기도 한다. 다만,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기대하는/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나잇값을 하는 것은 아니다.
윤여정이 말하듯 우리 모두는 지금의 나이를 처음 살아가는 것이다. 어른이나 아이나 모두 위아래가 없는 대등한 인간 대 인간일 뿐이고, 사회적 지위는 나이가 아니라 능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60년 정년이 무색한 요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통상적인 나이에 대한 이치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삶의 모습이 너무나도 다양해지고 있다. 100, 120세 인생의 여정을 그려가야 하는 우리는 사회생활을 2,30년 하다가 학교를 다시 갈 수도 있고, 새로운 경험을 쌓고자 새로운 도전을 70대에 하게 될 수도 있다. 30대가 당대표가 되기도 하고, 70대에 할리우드에 진출하게 될지도 모르고 80대가 대통령이 되기도 하고 지금이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 생각했을지라도, 2,30년 후에는 그 순간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축적된 시간이 주는 인생의 지혜와 통찰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삶의 방식과 모습이 다양해지는 요즘, 우리 모두 '나이에 대한 상', 나잇값에 대한 생각을 조금 더 유연하게 그려 보는 건 어떨까? 나이가 우리 삶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나잇값 꼭 해야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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