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끼리의지혜 May 19. 2021

당신은 노친이 있으신가요?

나이든 어른과 친구가 되는 것을 상상도 안해봤을 우리들에게

어느 명문대학교 교수로 퇴직하신 분이 젊은 스타트업 대표들과 만남을 갖는 자리였다. 

노교수는 젊은이들에게 “나는 당신들의 노친이 되고 싶어요.” 라고 했다.      


노친(老親)? 참 낯설고 이질적인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어사전에서 “노친”은 늙은 부모로 정의하고 있다. 허나, 우리가 일상에서 듣는 “노친네, 노친네”는 통상적으로 노인을 낮잡아 부를 때 쓰는 표현이다. 우리에게 “노친”은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지배적이다. 그런데 노친이 되고 싶다고?     


그 노교수가 말한 “노친”은 젊은 대표들에게 자기를 “나이든 친구”로 여겨 달라는 의미였다.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일하며 마주하는 난제를 털어 놓으며 때때로 함께 맛집도 찾아가서 술 한 잔을 기울일 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Photo on iStock


잠시 상상했다. 


2030대의 스타트업 대표들과 70대의 노교수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난 스무살 이상 차이 나는 친구가 있던가? 한국 사회에서 2-30년 나이 차가 나는 사람들의 만남은 어떻지? 학교나 회사 밖에서 만나게 된다면 친구가 당연히 될 수도 있는 것 아니야? 그런데 왜 우리는 유독 나이 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려워하고, 친구가 되고 싶다고 하는 것이 생소하다고 느꼈던 걸까? (아니면 나만 그런가?) 외국 사람들과는 나이와 무관하게 친밀한 사이가 되는 것이 흔한 일인데? 왜 유독 한국 사람들과는 친구 사이에서 나이가 걸림돌이 되는 걸까?     나이 자체가 훈장이 되는 한국 문화 전반 특유의 장유유서 정신이 아마도 가장 컸을 게다. 그 문화는 우리의 언어에도 한껏 깃들어 있지 않은가?      


우린 어렸을 적 언어를 배울 때, 어른에게 존댓말을 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존댓말은 말하는 상대에 대한 존중을 담은 말인지라, 상대방에 대한 존중감을 바탕으로 친밀감이 덜 형성 된 사이에서는 당연히 써야 하는 언어인데, 우리는 나이의 높낮음으로 언어의 체계를 선택적으로 사용하기 까지 했으니, 문화 전반에 나이에 대한 부담을 갖고 살아왔던 것이다. 언어 말고도, 복합적인 이유들이 작용했지만 우리에겐 나이 많은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것이 낯설고 어려웠던 것이다. 

      

아무리 친밀하더라도 나이, 학년에 따라 선후배 사이라고 칭하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과 친하면 형/오빠, 언니/누나 이렇게 지칭을 하지 ‘친구’ 혹은 상대의 ‘이름’으로 칭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래도 2-30살이 많은 사람이 노친이 되고 싶다 했을 때 드는 이질감은 너무나도 당연한 감정이었을지 모르겠다. 일단, 2-30살 많은 친구에게 어떤 호칭을 써야 할지 부터도도 난감하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관계에서 ‘호칭’ 정리를 하는 것도 우리만의 문화이다.)                                                     

Photo on 익스트림무비


오스카상 덕분에 74세 윤여정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더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윤여정이 그 전부터 대중에게 호감을 산 이유는 삶을 대하는 솔직하고 연륜에서 깃든 솔직한 입담과 화면 안에서 젊은 세대들과 만들어가는 긍정적인 관계 때문이었을 거다. 나영석, 이서진, 정유미, 박서진, 최우식에게던 권위의식을 내려놓고 흔하디흔한 대개의 어른들이 가질 법도 한 꼰대성을 털어내고 인간 대 인간으로 다가가는 모습에 우리는 오스카상 이전부터 윤여정이라는 사람에 호감을 갖고 있었다. 더욱이, 오스카상이라는 어마어마한 상을 받아들이는 윤여정이라는 “어른”의 태도에서 꼰대성으로 낙인 되었던 “어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호감형으로 극상승 시켜 놓은 것이다. 오스카상 이후 LA 총영사관에서 진행되었던 기자회견에서 지금이 인생 최고의 순간이냐’는 질문에도 윤여정은 딱 잘라 “일등, 최고, 이런 거 싫다”고 답했다. “아카데미가 전부인 것도 아니고, 최고의 순간인지도 모르겠다며 우리 모두 최고가 되려고 그러지 맙시다. 최중(最中)만 되면 되잖아. 다 동등하게 살면 안 되나요?”라고 말하는 모습에 대중은 모두 머리 한 대를 세게 맞은 느낌 이였을 게다. 


윤여정은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하고 귀한 일을 하면 되는 것이지 길고 긴 인생에서 지금 순간이 ‘최고’인지는 본인도 모르는 것이라는 것을 터득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당연하게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말은 70대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 었을게다. 시간을 통해 깨우친 인생의 진리는 나이가 들었을 때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니 말이다.      


노교수가 젊은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노친이 되고 싶다고 한 것이 이질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스크린을 통해서가 아니라 일상에서) 나이든 사람과 편하게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젊은 사람들이 아무리 노력하고 열심히 공부를 하더라도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시간이 만들어 낸 연륜이 깃든 지혜를 가진 좋은 어른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빡빡한 우리 삶에  다른 작은 위안과 용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노친을 사귀고 싶다.           




사진출처 : iStock, 익스트림무비, Wisdom Well

Cover photo from Wisdom Well


이 글이 도움이 되셨거나, 흥미로우셨다면 "좋아요(하트, Like)"를 눌러주세요. 글감을 선정하거나, 글을 써 내려가는데 큰 힘이 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직장인 긴장성 통증에 도움되는 도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