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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끼리의지혜 Jul 17. 2021

우린 왜 “젊음”에 집착할까?

나이 들어도 아름답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안성기의 눈가 주름이 좋았다. 많이 웃고, 많이 미소 짓는 사람 - 좋은 생각과 삶에 대한 따뜻한 태도를 갖는 사람에게만 나올 수 있는 주름이라 생각했다. 찡그리고, 인상 쓰는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온화한 주름이 나올 수 없다 생각했다. 얼굴 근육 움직임에 따라 생기는 눈가와 빰에 생기는 표정 주름이야 말로 삶에서 묻어 나오는 인품이라 생각했고 그것이야 말로 - 나이 들며 완성될 수 있는 외모라고 생각했다.

출처: 한국일보 웹사이트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사람이 머리가 새카만 것은 사실 어색하다. 그러나 우린 얼굴 주름이 가득한 사람일지라도 머리카락이 진한 색이면 회색빛 머리의 사람보다 젊어 보인다고 여긴다. 우리는 탱탱한 피부, 진한 머리색, 주름 없는 얼굴 – 젊었을 때 누릴 수 있는 외적 아름다움이 미(美)의 보편적 기준이라고 사회적으로 자리매김시킨 것 같다.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것은 칭찬이고, 그래서 새치를 가리기 위해 노력하고, 주름을 피려고 리프팅 시술을 받으니 말이다. 우리는 미디어가 지향하는 “젊음”에 편중된 미의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애써 미용실, 피부과 등에 열심히 돈을 쓰고 시간을 들이며 “동안”에 집착한다.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동안"에 애써 집착한다.)

   

그런데 최근 미디어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탱탱한 피부와 짙은 머리색 “젊음”으로 가득했던 미디어의 화면상이 바뀌고 있다. 차별과 편견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고, 자신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담은 브랜드를 지지하기 시작하면서 기업들 또한 사회적 담론에 대한 기업 가치를 브랜드에 담으려는 노력이 미디어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2015년 즈음부터 패션지 보그(Vogue)에서 빅사이즈 모델을 표지에 담으면서부터 인가 각종 브랜드에서도 플러스 원 사이즈 모델, 다양한 인종을 기용하며 다양성을 담아 왔었는데 최근엔 그 다양성 범주에 “나이 듦”을 표현하려는 노력도 종종 보인다.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 Angels Daniela Pestova (49세)와 Helena Christensen (51세)

최근 1-2년 사이 빅토리아 시크릿은 천편일률적이었던 젊음으로 가득했던 모델판을 바꿨다. 4, 50대의 “나이 든(old, senior)” 모델을 기용했다. 최근 보그 싱가포르(Vogue Singapore)도 60대 여자 모델 쥬디스 앤 워렌(Judith Ann Warren)의 누드 사진을 실었다. 나이 들면 자연스럽게 처지거나 건조해진 살결을 그대로 담기도 하고, 편집 효과 없이 얼굴의 주름도 화면 안에 그대로 살려낸다. 어떠한 꾸밈도 없는 50대 사람 여성 그대로의 모습을 화면 안에 담았다. 모델의 수명은 20대 초반에 모델을 시작하면, 30대만 돼도 노땅이라 모델 세계에서 은퇴를 한다고 하는데 Judith는 64세에 다시 모델 세계로 복귀를 하였고, 얼마 전 로레알 모델로 헬런 미렌(Helen Mirren), 러너웨이에는 나오미 캠벨(Naomi Campbell)도 51세 나이에 컴백을 했다.  


5,60대에 다시 복귀한 나오미캠벨, 앤워렌쥬디스,헬런미렐


그 간 우리 눈에 익숙했던 모델(특히나 패션모델)은 대부분 10대, 20대였고 거의 균일하게 극도로 마른 여성들이었고, 마치 미디어는 젊음과 잡티 없는 균일한 톤의 완벽한 피부, 탄탄한 몸매가 그 브랜드의 제품을 사용하면 영원할 것 같은 메시지를 보내왔던 것 같다. 진시황이 그토록 찾았던 영생의 불로초는 현대사회에서도 찾지 못한 것 같지만, 과학의 힘을 빌어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리프팅 시술이나 영양제, 그리고 웰빙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과 일상 속 노력으로 사람들은 우리 모두가 인지하는 보편적 젊음을 나이가 들어도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요즘 미디어와 브랜드에서는 “나이 듦”에 대한 메시지를 조금 다르게 전하고, 난 그 움직임들이 마음에 든다. 보그 촬영을 한 쥬디스 앤 워렌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나 자신을, 나만의 독특함을 그리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믿으세요. 아름다움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행복이 아름다움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Trust in yourself, your uniqueness, your own individual beauty.
Beauty is many things but isn’t what brings happiness.
Happiness brings beauty.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브랜드 중에서는 아모레 퍼시픽의 설화수가 작년(2020년)에 론칭한 “아름다움도 자란다”라는 캠페인이 눈길을 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생애 모든 순간에 본연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설화수의 브랜드 철학을 전하는 캠페인으로 캠페인 첫해인 작년에는 ‘아름다움에는 정해진 시기는 없다’는 화두를 던졌고, 올해는 ‘당신의 모든 생애에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존재하며, 설화수는 생애 전반에 걸쳐 더욱 깊어지는 당신의 아름다움과 함께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데 나이와 보편적 젊음의 미에 얽매이지 않는 개인마다의 아름다움의 메시지를 전해서 울림을 준다.



전 세계적으로 인구가 고령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세계적으로 고령화 속도가 빠르다. 현재 전 세계 65세 이상 인구는 약 7억 5천만 명으로 2030년에는 10억 명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고 OECD는 이 인구층이 15조 달러 규모의 가장 큰 소비력을 갖는 연령대로 보고 있다. 영국 국제장수센터(International Longevity Centre, ILC)에 따르면 영국 65세 이상 노인은 2001년부터 지출이 현저하게 증가했으며 2040년까지 소비자 지출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삼성경제연구소도 65세 인구층의 소비시장이 2020년이면 약 125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인구통계학적으로도 명백하니, 경제적 마케팅 효과도 50대 이상 인구를 묘사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큰 이익이다. 120세 인생을 바라보는 현대인들에게 탱탱한 피부와 젊음만은 강조하기보다는 생애 주기 전체를 걸쳐, 나이 때에 맞는 가치가 곧 아름다움이라는 메시지가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우리 모두 "젊음"에 집착하지 않아도, 나이 들면서 얻을 수 있는 더 큰 가치를 잘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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