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와 일기 쓰기 그리고 .....
내가 카메라를 따로 들고 다녔던 여행은 2015년까지다.
스마트폰은 2011년부터 사용했지만 초반기(?)의 스마트폰은 포켓와이파이를 대여하거나 로밍을 하지 않는 이상 와이파이 환경에서만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와이파이가 되는 환경에서 잠시 정보만 찾거나 음악을 듣는 용도로만 사용했었다. 그러다 보니 여행을 떠나면 시간이 많았다. 오늘은 그 빈둥거리던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엽서 쓰기
여행을 떠나기 전에 친한 친구들, 내가 꼭 엽서를 보내고 싶은 사람들의 주소를 받아 다이어리에 적었다. 좋아하는 펜도 두어 개 정도 여유 있게 챙기고(잃어버리기 쉬우니까) 여행 중 일기를 쓸 다이어리도 새로 샀다. 여행하면서 쇼핑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언제 쓰고 싶어 질지 모르니 엽서만큼은 두어 개씩 구입했다. 지나가다가 우체국이나 우표를 파는 상점이 있으면 넉넉하게 사두었다.
구입한 엽서는 다이어리 속에 껴두고 다니다가 갑자기 심심한 밤이나, 느긋하게 커피숍에 앉아서 쉴 타이밍이 오면 그때 생각나는 사람에게 엽서를 썼다. 엽서의 메시지란은 크기가 작다 보니 "누구에게"를 쓰고 나면 쓸 내용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보고 한 문장씩 신중하게 정리하면서 써 내려갔다. 그렇게 쓴 글씨들이 번지지 않게 잉크를 잘 말리고 다시 다이어리에 껴둔다. 그렇게 보관하던 엽서들은 그 도시를 떠날 때쯤 우체통에 넣거나 우체국을 방문해 보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꽤 즐거운 작업이었다.
엽서 속 디자인을 한참 들여다보면서 누구에게 보낼까 고민하기도 하고, 이 사람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를 고민도 해보고... 이메일이나 문자로는 차마 할 수 없는 간지러운 표현들도 엽서 위에서는 왜인지 모르게 자연스러웠다. 여행에서 돌아와 잘 받았다고, 고마웠다고 말해주는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멍 때리기 혹은 관찰?
현지에서의 이동은 대부분 기차나 버스를 이용했는데, 기다리는 시간에는 대부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내 차편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놓치면 안 된다는 초조함 때문에 엽서 쓰기나 책 보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런 시간엔 주저앉아 그냥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특히 기차역이 재밌다. 나처럼 어디로 떠나기 위해서 전광판을 보는 사람, 누군가를 마중 나온 사람, 드디어 만나서 반가워하는 사람들... 1분 1초가 지루하지 않다. 포르투 상벤투역에서 아베이루로 가기 위해서 기다리던 이때도 멍하게 서서 사람들을 구경했다. 이 역은 아줄레루 벽화가 화려해서 역사 내부를 구경하는 것도 꽤 재미있었다.
운 좋게 풍경이 좋은 식당이나 카페에 자리를 잡으면 바깥을 보면서 한참 멍한 시간을 갖는다. 대부분 혼자 여행을 하다 보니 여행지에서 밤 풍경을 구경하는 것은 나에게는 꽤나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이런 날에는 가능한 오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식사 외에 와인을 몇 잔 곁들이면서 길게 시간을 보냈다.
독서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시절까지는 책 한 권도 꼭 챙겨갔다. 가져가는 책은 정해져 있었다. 장 그르니에의 섬 아니면 지중해의 영감,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번갈아 가지고 다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들이기도 하고, 세 권 모두 두께가 많이 두껍지 않아 배낭에 넣기에도 부담이 없었다. 새로운 책을 갖고 가는 것보다 읽던 책을 가지고 가는 것이 맘이 편했다. 나는 감정이 예민한 편은 아니지만 나름 책이나 음악, 영화에서 느끼는 인상에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미지의 책보다는 이미 서너 번은 읽은 책 중 맘이 편한 책을 가져가는 것을 좋아했다.
유일하게 다른 책을 들고 갔던 것은 2013년의 치앙마이 여행 때다. 폴 오스터의 책을 구입해서 가져간 것은 생각나는데 빵 굽는 타자기였는지 달의 궁전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니 딱히 인상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실 폴 오스터의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데 왜 굳이 골랐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높은 확률로 표지가 예뻤고 열린책들에서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출판사 열린책들 좋아함)
일기 쓰기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여행사진을 뒤져보니 짧은 여행에도 혼자 가는 여행에는 꼭 일기장을 챙겨갔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때 나는 일기를 존댓말로 쓰고 있었다. 이건 20대 때부터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버릇 중 하나인데, 대학 시절 좋아했던 교수님이 계셨다. 존경이라기보다는 정말 인간적으로 좋아했다는 말이 적당한 분이었는데 졸업 전 꼭 한번 그분에게 내 깊은 고민이나 마음을 편지로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실제로 보내지는 못했다. 용기를 내서 한 번쯤은 보내봤어도 좋았을 텐데...
대학을 졸업한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느꼈던 것들, 고민이 되는 것들, 방황하거나 상처를 받거나 주는 일이 생기면 일기장에 혹은 머릿속으로 그분께 긴 편지를 썼다. 마음속으로만 하던 그 긴 독백이 멈춘 것은 언제였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엊그제 일 같기도 하고, 벌써 몇십 년 전 이야기 같기도 하다. 솟구쳐 오르는 감정과 생각을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말하고 싶었서였던 것 같다. 마음이 불같이 끓어오를 때
선생님,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한마디를 종이 위에 혹은 마음속 어딘가에서 쏟아내기 시작하면 어느새 마음이 편해졌던 것이 기억난다.
이번 브런치북을 쓰면서 옛날 사진을 찾아보고, 기록들을 다시 찾다 보니 여전히 변하지 않은 나와 이제는 많이 성장한 나를 동시에 만나고 있다. 지나간 모든 시간에 새삼 감사하고 신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