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이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 파리 2

전환점을 맞이한 두 번째 배낭여행의 마지막 도시

by 첼라

중학교 때 방과 후 활동으로 처음 카메라를 만져봤다. 우리 집 카메라는 올림푸스에서 나온 자동카메라여서 내가 수동으로 조작할 수 있는 것은 플래시 정도였지만, 그때 담당 선생님이 열심히 알려주신 기본적인 용어 말고는 사실 별로 아는 것이 없다.


여행에 필카를 들고 가기 전, 일상에서 여러 롤을 찍어보며 연습했지만 수동 필름카메라는 익히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처음 3 롤 정도는 거의 버렸다 해도 좋을 만큼 망했고, 한 10 롤쯤 넘어가서부터는 그래도 초점을 맞춘다-라는 개념이 뭔지 알게 되었다. 참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과정이지만 그 과정이 짜릿하게 재미있어서 굉장히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파리 @2006

파리 여행을 할 때부터는 조금 더 감각이 늘었다. 그래서 유독 파리 사진은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사진이 많다.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사진이 찍히는 프레임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 것. 전에는 예쁘다 싶으면 무작정 셔터를 눌러버렸는데 파리에서는 내가 원하는 프레임을 상상해 보고, 뷰파인더 안에서 풍경을 맞춰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눈으로 보이는 화각과 카메라가 담아낼 수 있는 화각은 확실히 다르다 보니 셔터를 누르기 전 조금 더 신중하게 프레임을 잡게 되었다.


파리 @2006

맘에 드는 프레임을 설정하면 잠시 기다린다.

내가 초점을 맞춘 대상이 사람이라면 움직임이 멈추는 순간을 기다리고, 풍경이라면 바람이 부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이때다! 싶은 순간이 오면 그때 셔터를 누른다. 필름 사진을 찍는 경험이 늘어갈수록 기다리는 법을 배운 것 같다. 단순히 예쁜 풍경을 예쁘게 담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그보다는 내가 잡은 프레임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관찰하는 것이 점점 더 재미있었다.


파리 @2006
파리 @2006

그저 세상의 많은 풍경, 유명한 지역, 교과서에서만 보던 풍경을 내 눈에 담는 것.

그것이 내 여행의 이유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랫동안 한 장면을 관찰하다 보니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어쩌면 나는 관찰하고 천천히 마음에 새기는 그 자체가 좋아서 여행을 꿈꾸고 여행을 떠나왔는지도 모르겠다.


파리 @2006

가슴이 두근거렸다.

첫 배낭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는 또 어디로 배낭여행을 갈까? 하는 기대감으로 두근거렸다면, 두 번째 배낭여행을 마무리하는 파리에서는 어쩌면 일상도 관찰하듯 천천히 들여다보면 지금과는 또 다른 어떤 하루를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희망이 생겼다. 그전까지는 애매했던 나의 직업도, 돌아가면 나를 받아줄 곳이 있기나 할까? 걱정하던 마음도 어쩌면.., 어쩌면. 조금 더 일상을 잘 관찰하면 조금 느려도 내 길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파리 @2006
파리 @2006

루브르 안쪽 광장에 앉아 한참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오가고,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천천히 걷고, 누군가는 잠깐 멈춰서 감상하는 풍경을 멀리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동안 변덕스러운 파리 날씨는 먹구름을 몰고 왔다가, 잠시 비를 뿌리다가 해가 다시 뜨기를 반복했다.


첫 컷이라 탔지만 좋아하는 컷 @2006
파리 @2006

무언가 말로 설명하기는 힘든 충만한 기분이 가득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더 다른 여행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낭여행의 로망에 흠뻑 빠져있던 몇 년 간, 확실히 나는 현실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어딘가 반쯤은 둥둥 떠있는 것 같은 그런 사람이었다. 돈을 벌면 있는 대로 모아 어디론가 떠날 곳만을 찾았다. 매일 똑같은 옷차림을 하고 출퇴근을 반복하는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은 싫었다. 그래서 딱히 땅바닥에 발을 붙이고 싶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진짜 제대로 여행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의 배낭여행 계획은 나에겐 필요 없었다. 마침내 두 발이 제대로 힘을 주고 땅에 선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여기, 그리고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위대함이 보였다.


파리 @2006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일터로 나가고, 별로 다를 것도 없는 업무와 싸우고 다시 돌아와 잠을 청하거나 가끔은 누군가를 만나 술 한잔을 기울이는. 너무 별볼 일 없고 지루하고 뻔한 하루를 사는 일. 그 지루한 평범한 하루하루는 사실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그런 하루하루를 쌓아가다가 어느 날 다시 여행을 가고 싶다면 그 기간이나 거리에 상관없이 천천히 고요하게 누군가의 위대한 하루를 잠시 들여다보고 오는 그런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 @2006
가장 좋아하는 파리 사진 @2006

두 번째 배낭여행의 마지막 도시였던 파리는 그래서 내게 특별하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생각의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얼마큼 보느냐 보다는 무엇을 볼 것인가를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파리 @2006
파리 @2006
파리 @2006


오랜만에 2006년의 파리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고, 여러 가지를 깨달았던 그때의 나 자신을 조금은 예뻐해주고 싶다. 감정적으로 많은 것들을 겪었고, 어설프게 겪은 좌충우돌도 많았지만 비로소 현실이라는 지점에서 두 다리 곧게 뻗고 선 그 순간을 다시 한번 축하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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