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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두부 Feb 17. 2020

[살았다!] 재회상담 서비스받아 보셨어요?

나는 어쩌다가 정신과에 가게 되었나? 1편

나는 어쩌다가 정신과에 가게 되었나? 1편 - 재회상담서비스


네? 제가 중증의 우울증이라고요? 그냥 6주째 밥맛이 없고, 잠을 한숨도 못 자고,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흐르고, 가끔씩 심장이 떨리고 불안해질 뿐인걸요? 그런데, 이별하면 다들 그러지 않나요?

에?? 제가 약을 먹어야 한다고요? 저 그냥 여기 개업 이벤트 한다고 해서 온 건데......(긁적)


영화 <기생충>을 보면 기택네 가족이 치밀하게 세워둔 계획은 엉망이 되고 무계획이 계획이 되지 않나. 나도 그랬다. 계획대로였다면 난 영국에서 그 친구와 함께 브리티시 잉글리시를 솰라 하며 로스트비프를 촵촵썰고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랬다면 아마 이런 바보 같은 책을 낼 일도 없었을 텐데. 정신과 방문은 또 어떤가. 내 인생 계획을 통틀어 정신과 방문 역시 전혀,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삶이 계획대로 되면 그게 삶이겠나.


우울증이 있는 사람 본인이 스스로 '아, 나는 지금 이런 상태구나. 그래! 현실은 바뀔 수 없지만, 내 마음은 변할 수 있지. 지금은 내 머릿속에 세로토닌이 낮아져서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우니 병원에 가서 도움을 청해야겠다!'라는 아주 합리적이고 멋진 생각을 하기란 꽤나 어렵다. 감정의 소용돌이가 극화 상태일 땐 더욱 그렇다. 나도 그랬다. 당장 내게 닥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 절실하지, 내 마음의 평화 따위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네이버에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환승 이별 재회 방법. 환승 이별 후폭풍. 환승 이별도 재회가 되나요?' 오! 된단다. 어,, 근데 그 방법이 일월천지신성초공양기도급속재회비방이요.....? 인터넷으로 보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 상태로 어디 강남역에서 도를 아십니까를 만났다면 어디 끌려가서 손이 닳도록 열심히 치성을 드리고 있었을련지도 모르겠다. 사실 조금 흔들렸다. 그만큼 절실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지난주엔 교회에 가고, 이번 주엔 무슨무슨 선녀님을 찾아 부적을 쓰는 건 조금 웃긴 것 같았다. 다른 방법을 알아보기로 했다.


<사랑을 돌려드립니다!! 재회상담서비스>


그날도 어김없이 새벽 세시에 눈이 떠졌다. 슬픈 사람에게 밤의 공기는 슬픔을 배가시키는 마법이 있다. 먹먹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켰다. 그러다가 발견한 어느 글귀. '환승한 남자 친구/여자 친구 돌아오는 법.' 칼럼의 글을 읽는데 쓰인 말마다 구구절절 공감이 되었다. 그 글은 재회상담서비스로 이어지는 링크가 있었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내게 그 글은 굵은 철실로 튼튼하게 꿴 동아줄 같았다. 재회상담서비스는 마법의 주문이 필요한 내게 가장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재회 방법이었다. 곧 나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는 상담사에게 구구절절 사연을 글로 남겼다. 언제, 어떻게 만나셨나요?로 시작한 질문지는 사귀는 동안 행복했던 일, 헤어지고 있었던 일,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등을 꼼꼼하게 물어보고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인터넷 공간 속의 사람이었지만, 이미 그/그녀는 내게 정신적 지주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래, 이 사람이라면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거야!'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구구절절 사연을 남긴 뒤, 결제 페이지까지 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가격이 헉 소리 나게 비쌌다. 백만 원!? 재회 상담을 위해 1분 전에 작성한 설문지의 마지막 질문은 '그 사람은 당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나요?'였다. 아아- 이것은 곧 닥칠 사랑의 무게를 시험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 나의 사랑을 다짐해보라는 의미였던가? 그 질문에 나는 아주 절절한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이에요. 이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어요'

그리고 (미안하다, 네가 내 책을 사 읽지 않길 바란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던 내 사랑은 결제 페이지 앞에서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게 된다.


아니 사실, 그 찰나의 순간에 조금 약이 올랐었다. 이별의 충격 때문에 이성이 없는, 나의 가장 마음 약한 시기를 공략하는 재회 상담 서비스의 영업 방식은 매우 영리하지만, 동시에 얄미웠기 때문이었다. 물론 재회 상담은 영화나 드라마의 연애 조작단처럼 시나리오를 만들어서 접근한다거나, 단순히 재회의 방법론을 가르쳐 주는 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사람 간의 관계론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이었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앞으로 계속 이어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상당히 아름다운 서비스였다. 애착 유형에 따르면 내가 그 사람을 만날 당시 나는 안정형이고, 그 사람은 불안형이었다. 그런 관계에서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불안형 사람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지를 실제적으로 코칭하고 가르쳐준다고 했다. (재회 상담 서비스를 받았다면 아마 그 방법이 어느 정도 통했을 것 같다. 인간이란 꽤나 유형화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가장 불안한 시기의 마음을 이용한 영업 방식이 정말이지 내키지 않았다. 또 상담 서비스의 심리학이 성공하여 재회를 하더라도 '과연 그래도 나는 괜찮을까'라는 생각을, 늘 그 사람의 마음만 생각하고 내 상처는 돌보지 않았던 나는 괜찮아질까라는 생각을, 헤어지고 처음으로 '나를 위한 생각'을 어렴풋이 해 봤던 것 같다.


'내가 견디고, 내가 너를 이해하고, 내가 잘 못해줘서 떠난 거라고 미안하고 자책하는 마음으로 너를 다시 만난다면, 그럼 지금 내가 받은 상처는 괜찮을까? 나는 괜찮을까. 나는 괜찮을까? 나는 지금 괜찮은가?'


나는 나를 미워하고 있었다.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이해할 수가 없어서 모든 건 내 탓이어야만 했다.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하면 정말로 이 관계가 완전히 끝나 버릴까 봐 그게 너무 무서워서 차마 미워할 수가 없었다. 너무 밉고 원망스러운데 내 맘대로 미워할 수도 없어서 더 아팠다. 그 마음을 견딜 수 없어서 차라리 나는 나를 미워하고 책망했다. 모든 게 다 내 탓이라고, 나 때문이라고.


그래서 결국 처음 찾아갔던 곳은 심리 상담 센터였다. 하지만 심리 상담 센터를 찾아간 이유는 더 기가 막히는데...


- 나는 어쩌다가 정신과에 가게 되었나? 2편에 계속





p.s 지금 우울증으로 인해 고통받고 계신 분들의 마음을 감히 헤아려봅니다. 그리고 응원합니다.


instagram : @sundubu_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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