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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두부 Mar 09. 2020

[브라버꼬 산티아고] 까미노 준비물 챙기기

부제 : 이러면 안 됩니다.

그래서 걷게 된 산티아고 이야기.


1. 산티아고 준비, 이렇게 하면 안 돼요.

일주일 만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떠난 일정이라 난 산티아고가 유럽에 있는지도 비행기표를 끊으면서 그날 처음 알았다. 산티아고라는 지명은 스페인에 하나, 칠레에 하나 있는데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는 산티아고는 스페인에 있다. 길은 다양하게 있지만 그중에서 내가 선택한 길은 프랑스 길. 선택이 이유는 단순했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덴 이유가 있겠지 뭐. 그리고 나보다 먼저 어디로 갈까 고민 많이 한 사람들이 여러 이유를 가지고 선택했을 거야.라는 안일한 생각. 산티아고가 어디 붙어 있는 땅인지도 모른 채 무작정 떠난 일정에 대단한 정보 수집을 할 수 있었을 리 없다. 사람들이 제일 많이 가는 길이라니까 나름 안전하겠지 뭐. 인터넷으로 순례자 커뮤니티를 통해 산티아고 준비물을 알아가긴 했는데, 그 밖에 알베르게 정보라던지 길의 유구한 역사에 대해선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순례자들이 애용하는 합리적인 가격의 아웃도어 브랜드인 데카트론도 스페인에 가서야 이런 브랜드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 데카트론 좋다. 혹시 산티아고 갈 계획이 있는 국내 소비자라면, 아웃도어계의 이케아, 데카트론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제품의 질이 아주 좋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평소 전문 등산을 다니고, 여러 지역으로 트래킹을 다니는 사람이 아닌 나처럼 그냥 어쩌다가 산티아고에 가보려는 사람이라면 데카트론으로도 충분히 괜찮다. 


정보를 찾다보면 정말 한없는 정보의 홍수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네이버에 큰 순례자 커뮤니티도 있다. 까미노에 가서 알게되었는데 까미노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오픈카톡방도 있더라. 좋은 정보가 많지만, 사실 내겐 너무 많은 정보라고 생각했다. 그 많은 정보들이 모두 순례길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어느 알베르게가 좋은지, 어느 식당이 좋은지, 어느 길이 좋고, 어느 시기가 좋고, 무슨 제품이 좋고, 무슨 어플을 이용하는 게 좋을지. 순례길 위에선 많은 것들을 버리고 오게 되는데 불필요한 정보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챙겨야 할 단 한 가지는 안전이다. 해가 뜰 때 걷고, 노란 화살표를 따라, 배고프면 밥을 먹고, 눈에 보이는 알베르게에 들어가자. 


너무 불안해 말고 안전만 챙겨 가시길 바란다. 아래 홈페이지는 신뢰할만하다고 생각되어 가져왔다.

http://caminocorea.org/?page_id=3953


2. 나의 배낭 고르기 - 얻어걸렸는데 좋았다. 

어디서 가방은 좋은 걸 써야 등을 잘 지지해주어 오래 걸을 수 있다는 말을 들어서 좋은 걸로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백화점에 갔는데, K2는 너무 아저씨 같아서, 코오롱은 이상한 보라색이 싫어서, 내셔널지오그래피 가방은 왠지 너무 유행과 멋을 내는 느낌이라 마음에 안 들던 차에 내가 좋아하는 예쁜 주황색 가방이 눈에 보였다. 피엘라벤이라는 스웨덴 브랜드 제품인데, 사실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였다. 순례 정보는 안 찾아봐도 비싼 제품을 소비할 땐 기업정보는 종종 찾아보는 편이라 찾아보았더니, 기업의 브랜딩과 가치관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재생섬유를 사용했고, 지속 가능한 제조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천의 품질, 디자인도, 색감도 모두 좋아 보였다. 등 뒤에 달린 강한 철제 프레임이 내 등과 허리를 단단히 지지해 줄 것 같았다.


더 고민하고 싶지 않아 배낭을 바로 샀다. 어처구니없게도 내겐 영국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기 위해 지난 1년간 악착같이 모아둔 돈이 아주 넉넉하게 있었고, 더 이상 갈 일이 없게 되었고, 통장에 남아 있는 돈을 바라보고 있자니 공허하고 무의미해서 내 돈이지만 내 돈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가격은 꽤 비쌌지만 이 정도는 나를 위해서도 투자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그동안 나를 위해서는 돈을 써본 일이 거의 없잖아. 내 잠옷은 목 늘어난 티셔츠면서 잘도 너한텐 10만원도 넘는 파자마를 사줬겠다. 살거야. 이번엔 나를 위해서. 그동안 영국간다고 진짜 악착같이 벌고 아끼고 살았는데. 게다가 배낭은 한 번 사면 오래 쓸 수 있을거야. 누가 알아? 이 여행이 너-무 좋아서 이러다 평생 방랑자로 살게 될지?' 뭐 그런 마음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나는 정갈한 마음으로 차근차근 순례를 준비하는 순례자라기보다는 그냥 어디든 가고, 살 이유가 필요한 도망자에 가까웠다.


*이 영상에 홀랑 반해 피엘라벤 가방을 구매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YZYSWfBVeY&feature=youtu.be

-> 결론적으론 배낭은 산티아고 길 내내 아주 만족스러웠다. 어떻게 매는지 몰라서 너무 힘들었던 초반만 빼고.



3. 나의 침낭 고르기 - 제 베드 버그 방치 침낭 사실 분....?

순례 준비를 하는 와중에도 너무 죽고 싶은 날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 와중에 추운 것은 싫었다. 또 그 와중에 모기에 물려도 알레르기 때문에 병원에 가곤 하던 나는 베드 버그도 무서웠다. 힘드니까 죽고 싶은데 아프거나 추우면 더 힘들어지니까 싫었다. 그래서 배낭 다음으로는 아주 도톰하고(무겁고), 베드 버그 방지 기능이 있다는(무거운) 침낭을 샀다. 순례길이 뭐 밖에서 노숙하는 것도 아니고... 생각보다 알베르게는 안 추웠고, 내 침낭은 부피가 크고 무거웠으며, 3월의 알베르게들은 꽤나 깨끗하고 쾌적해서 베드 버그를 못 봤다. 물론 나중에 베드 버그에 물린 사람이 나타나는 바람에 한차례 베드 버그 난리가 났지만, 다행히 나는 길을 마칠 때까지 베드 버그를 보지 못했다. 결국 길 위에서 베드 버그 기능성 두툼한 침낭은 나의 고장 난 필름 카메라의 완충제로 산티아고로 먼저 보내버리고, 데카트론에서 무조건 초경량 침낭으로 다시 샀다. 가방이 가벼워지니 걷는 걸음걸음이 더욱 가볍고 즐거워졌다. 그럼 이제 제 베드 버그 방지 침낭 사실 분? 



4. 옷 고르기

무슨 옷을 들고 갈까 고민했는데 얼마 전 꾸준히 운동도 다니고 건강한 삶을 살자며 선물로 받은 요가 레깅스와 요가 나시티가 눈에 보였다. 볼 때마다 슬퍼졌지만 그 옷을 꼭 입고 다니고 싶었다. 어차피 내 옷장엔 옷도 별로 없다. 그리고 두 번째로 눈에 들어온 옷은 입으면 초등학생 같다고 놀림을 들었던 노스페이스 후드티였다. 자꾸 면박을 줘서 안 입고 다녔지만, 이 길은 나를 찾으러 가는 길이니 내가 좋아하는 옷도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브래지어는 챙기지 않았다. 배낭 메고 러닝을 할 것도 아니고, 어차피 천천히 걸을 텐데 그게 더 건강에 좋으니까. 그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해보기로 하자.


여담.

내가 봤던 어떤 한국인 여성분은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 중 제일 잘 걸으셨다. 되게 작고 아담한 체형이셨는데 키가 190씩 되는 유럽 남자들보다도 훨씬 잘 걸으셨다. 날다람쥐 같았다. 처음엔 자기도 자신이 얼마나 걸을 수 있을지 잘 몰라서 하루 10~15Km씩 예상을 하고 이 길에 왔는데, 걷다 보니 하루에 40-60킬로도 힘들지 않아 그냥 걸으셨다고. 배낭을 보니 아주 가벼워 보였다. 나도 줄인다고 많이 줄였는데도 아직 무거운데 어떻게 저렇게까지 가벼울 수 있을까 비법을 여쭤보니 이렇게 대답하셨다. "대신 돈을 많이 쓰면 돼요..^^;;" 정말 맞는 말이다. 필요한 건 필요할 때 그냥 길 위에서 사면된다. 가벼울수록 걸음이 즐거워진다. 



부러 그 사람이 유치하다며 가장 싫어했던 후드티를 꺼내 입었습니다.
부러 그 사람이 건강해지라며 사준 바지를 꺼내 입었고요.
이렇게 뒤뚱, 하고 거니는 까닭은
흘려보낼 마음과 지키고 싶은 마음들 사이에 고민하기 때문입니다.
이 기묘한 여행은 그래서 당신과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유럽여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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