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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두부 Mar 01. 2020

[살았다!] 나는 어쩌다가 정신과에 가게 되었나? 3편

문턱을 넘다, 병원으로


심리 상담 센터에 다녀왔지만, 여전히


괴로운 날이 이어졌다. 건강하기 위해 애쓰는 모든 노력을 통해 역설적으로 지금 내가 지금 불건강의 상태라는 걸을 확인하는 날들이었다. 괜찮아진것 같다가도 갑자기 불안해지고, 사람들 많은데서 여전히 알 수 없는 포인트에 혼자 눈물을 쏟았다. 어느 날, 대전역에 앉아 떡을 먹고 있는데 심장이 빨라지고, 가슴이 조여오는 것이 느껴졌다. 숨이 막혔다. 격렬하게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 점점 고장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그러다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정신의학신문 포스팅을 보다가 무료 마음 건강검진이라는 이벤트를 보게 되었다. 개업 이벤트로 20만 원에 해당하는 심리 상담을 무료로 해준다고. 하지만 워낙 흉흉하고 희한한 일들이 많이 발생하는 세상 아닌가. 심리 상담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이상한 종교 집단으로 데려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게다가 단어 조합은 뭐 이렇게 의심스러운가. "무료+마음+건강검진"이라니. 세상에서 제일 의심스러운 단어 조합이 아닌가. 이건 마치 "신용등급에 관계없이 누구나 무.담.보.대.출.가.능!" 같은 소리 같기도 하고, "원금 보장, 확정 500% 수익"이나 "OO테마주 상위 1% 주식 비법" 같은 소리 같기도 하지 않나. 달콤한 단어들만 놓고 사람을 꾀어내는, 당신이 잃을 건 없으니 일단 연락해봐라. 같은. 아니, 누가, 왜? 20만 원어치 상담을 무료로 해준단 말인가. 더욱더 깊어진 의심의 눈초리로 모니터를 째려보았다.


한껏 경계하며 알아보니 상담을 해 준다는 곳은 서울 시내 협력 정신과 의원들이었다. 병원이니까 일단 사이비 종교 집단은 아니겠군. 한시름 놓으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마치 미용실에 들어갈 땐 5만 원 인줄 알았는데 숱 추가-기장 추가-영양 추가하고 나면 20만 원이 되어 있는 것처럼, 무료 검진 이외의 검사를 와장창 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나 문자는 못 하고 소심하게 카톡을 보내봤다. '정말 무료인가요...?' 답변을 받고서야 마음을 놓았다. 이건 서울시 보건소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프로그램이라고. 따라서 서울 시민이라면 추가 비용을 받지 않는다고. 그렇게 여차여차 드디어 나도 정신과 방문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정신과에 대한 편견은 없다고 생각했다. 친구 중에도 평소 우울증이 있는 친구가 있고, 그 친구가 특별히 다르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울증 친구를 받아들이는 것과, 자신의 우울증을 인정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심적인 부담이 컸다. 정말 내가 가도 되는 걸까? 더 아픈 사람들이 가야 하는 곳 아닐까? 내가 결심을 하게 된 것은 먼저 우울증을 앓고 있던 친구의 격려 덕분이었다.


그날은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은 날이었다. 부모님 집에 살고 있던 나는 울 곳이 없어 다짜고짜 친구 집에 가서 울었다. 울며불며 죽을 것 같다고, 차라리 죽고 싶다는 내게 그 친구는 친절하게도 자기 방 10층 창문을 열어 주며 이리로 뛰어내리면 된다고 안내했다. 젠장. 진짜 당장 죽으려던 건 아니었어. 그리고 거기서 그렇게 죽으면 부딪힐 때 너무 아플 것 같아. 그리고 혹시 다리부터 떨어지면 어떡해. 끝까지 찌질한 나였다. 창문을 닫으며 친구는 병원을 권유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죽는 것보다는 나아. 지금은 안 죽고 싶은가 본데, 어느 날 갑자기 쓸데없는 용기가 나서 죽어 버릴 수도 있어. 우울이란 건 꽤 무서운 거야. “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 어쩌고, 약물이 어쩌고 해도 갑자기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는 친구의 다정한 섬뜩한 말에 조금 정신이 들었다. 그런데도 내게 정신과의 문턱은 여전히 높았다. '내가 가도 되는 곳일까'하는 마음이 심리적인 문턱이라면, 정신과에 대한 정보가 적은 것은 또 다른 문턱이었다. 정신과에 대한 정보는 너무 적다. 감기에 걸려 내과에 가는 일이 쉬운 것은 그곳이 아는 곳이기 때문이다. '진찰을 받고, 약을 주겠지. 가끔 주사를 놓기도 하고. 진찰비는 적당히 5-6천 원일 거고, 약값은 3-4천 원일 거야.’ 하는 대강의 정보가 있다. 정신과는 모르는 곳이다. 그래서 무섭다. 내 경험이 정신과라는 미지의 영역에 깔린 안개를 조금 걷어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여차여차 참 많이도 돌아서 병원 문을 드디어 넘게 된다.


정신과 분위기에 대한 Tip)   

정신과 역시 예약제로 운영되나, 아무 때나 가더라도 기다리면 진료를 볼 수 있다.

흔한 개인 병원 분위기다. 내과 의사 선생님이 앉아있으면 내과, 정형외과 선생님이 앉아 계시면 정형외과 같은 분위기. 백색 등이 환하게 밝혀 있고, 환자 옆에는 울고 싶을 때 언제든 울 수 있도록 휴지가 마련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상담과 약값을 포함한 비용은 만원 안팎이었다. 많이 나왔을 때도 3-4만원 정도였다. 우울증은 보험이 되기 때문에 누구나 비용 면에서 부담 없이 의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병원에 백 번을 가도 재회 상담 비용이랑 같다! 의료보험 만세!

상담은 심리 상담보다는 짧은 20~30분 내외다. 하지만 환자의 상황에 따라 그보다 더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다. 내 경우 첫날은 한 시간, 두 번째 방문부터는 30분 내외의 상담을 받았다. 나중에 약만 처방받고 가면 되는 경우엔 증상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처방받으면 되기 때문에 시간이 더 적게 들기도 한다.

약을 병원에서 직접 조제해 준다. OO 정신과라고 적힌 처방전을 들고 따로 약국에 갈 필요가 없어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약을 받을 수 있다.

생각보다 병원을 찾아온 사람이 많아서 놀랄지 모른다. 게다가 연령층도 다양해서 엄마와 함께 온 어린아이들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남녀노소 대기실에 앉아 있다. 그 풍경을 보고 있자면 내가 내과에 왔나 싶을 때가 많다.

의사 선생님은 나의 재회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다. 내 마음이 지금 어떻게 해도 안 되는 것처럼 그 사람 마음도 안될 거라고.

대신 내 마음에 관심을 두신다.



instagram: sundubu_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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