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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춘 Nov 08. 2024

친절한 산악회장

  예전에 100대 명산 오르기에 도전한 적이 있었다. 대부분 혼자 산행을 했다. 하지만 원거리에 있거나, 대중교통이 닿지 않은 산은 산악회 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00클럽'도 그때 가입한 산악회 중 하나였다. 다른 곳과 달리 같은 나이의 회원으로만 구성되어 있어 회원 수는 적었지만 모임이 알차게 진행되었다.

  산악회장은 궂은일도 솔선수범하고 행사 비용도 선뜻 찬조를 하곤 했다. 성격도 호탕하면서 꼼꼼하게 회원들을 하나하나 챙겼다. 산악회 임원진들도 산악회를 위해 아낌없이 노력하였다. 무박 2일로 산행을 떠날 때는 회원들의 이른 아침을 위해 손수 밥과 국을 마련해 올 정도로 정성을 쏟았다. 서로를 배려해 주고 아껴주는 산악회가 마치 고향 친구 모임처럼 정이 갔다.

  산악회장은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겨서 그를 따르는 여자 회원들이 많았다. 문제는 그중에 유독 눈에 띄는 미모를 자랑하는 A와 친분이 두텁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 산악회장은 별 뜻 없이 같은 동창생으로 대했는지 모르지만 여자 회원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A의 조금 과한 애교와 서슴없는 스킨십이 문제였다. 소문은 이상하게 났다. "두 사람이 사귄다." "호텔에서 나오는 걸 봤다" 등 소문은 들불처럼 번져갔다. 원래 산악회는 뒷담화가 많은 곳이었다. 나는 산악회장을 믿었다. A가 자제해 주길 바랐지만 선뜻 이야기할 수 없었다.

  '00클럽'에서 한여름에 산행을 갔다. 대부분 회원들은 그날 산행 코스도 험난한 데다가 불볕 햇살에 갈증이 일어 가져온 물을 다 마셨다. 나는 산행 중 물을 많이 마시기에 남들보다 더 많이 준비를 해서 물이 조금 남았다. 갑자기 뒤에서 소리가 났다. "물 있니?" 얼굴에 땀 범벅이 된 A였다. 가까이에서 처음 봤는데 땀을 흘려도 얼굴이 예뻤다. 여자 회원들이 질투할 만큼 상당한 미모를 가졌다. A는 애원하듯 나를 보았다. 더위에 빨갛게 익은 얼굴을 보니 순간 고민이 되었다. "내가 마시기에도 모자라는데 A에게 주어야 하나?" "물을 주었다가 나도 이상한 소문에 휘말리는 건 아닐까?" "아냐, 그래도 목마르다고 하는 사람을 외면하는 건 도리가 아니야" 물통을 꺼내서 A에게 주려고 하는 찰나에 "A야 목마르니? 여기 물 있어" 어느새 산악회장이 다가와 A에게 물통을 내밀었다. 나는 물통을 꺼내려던 손을 슬그머니 감추었다. 산악회장을 안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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