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에 진심이다. 여행을 간다면 볼거리·먹거리·놀거리를 폭풍 검색한다. 해외여행일 경우에는 여행지와 관련된 안내 책자뿐만 아니라 소설도 읽는다. 다녀온 이들의 후기를 꼼꼼히 읽어보고 가야 할 곳을 정한다. 유의사항도 정리하고 준비물 체크리스트를 만든다. 최종적으로 시간대별로 자세한 일정이 담긴 여행 계획표를 만들어 일행과 공유한다. 아내는 나와 달리 즉흥적인 여행을 선호한다. 그래서 여행 계획은 내 담당이다.
아내가 여행을 가자고 했다. 1박 2일 여행을 같이 가기로 한 지인에게 일이 생겨 혼자 가게 되었다고 했다. 얼떨결에 동행을 하게 되어 여행지에 대해 폭풍 검색도 못했고 준비물 체크리스트도 만들지 못했다. 미리 준비를 안 하니 문제가 생겼다. 숙소에는 비누가 없어 아내의 폼 클렌징으로 토끼 샤워를 하고 세안을 했다. 휴대폰 충전기를 안 가져와서 자동차에서 충전을 했다.
조금의 불편함이 있었지만 느슨한 여행도 괜찮았다. 여러 일정을 쫓기듯 바쁘게 다니지 않고 카페에서나 휴양림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여행이 될 수 있음을 처음 알았다. 어쩌면 여행은 일상을 떠나는데 방점을 두기에 애초부터 여행지에서 무얼 하느냐는 무관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