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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Dec 18. 2024

음식이 시간을 담고, 시간은 어머니를 기억합니다.

청국장찌개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따뜻함을 겨울은 이야기합니다.

눈이 내리는 밤이면 어둠도 날아가고 잠복했던 군불 같은 온정이 새삼 일어섭니다. 눈보다 흰 옥양목 이불깃으로 노출되지 않게 고단함을 덮으시고 소나무 등걸 같은 손바닥으로 닳은 걸레조각 짜듯 가난의 물기를 인내로 말리셨습니다. 이토록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피도 마르지 않는 연탄불 위에 데운 뜨끈한 청국장 국물 같은 따뜻함이 내 마음 밑뿌리에 자라서입니다. 오늘 같은 눈 오는 밤이면 두 팔 펴서 실눈 뜨시고 꿰매시던 구멍 난 양말에서 유년의 단내가 납니다. 옹망졸망 자식들 끼니 붙이려 콩나물 바구니 들고 걸으시던 그때 어머니 흰 고무신 속 얼은 발보다 더 마음이 시려 옵니다. <눈 오는 밤에 어머니, 이순이 지음>


어릴 적 겨울은 요즘 겨울보다 더 추었습니다. 밖에 나갈 때는 양발 두 켤레는 기본이고 내복과 털장화는 겨울 필수품이었습니다. 사회가 현대화되고 발전하면서 건물 내부의 온도 조절 시스템은 우수해졌습니다. 겨울에도 추운 건물이 없고 아파트도 반팔을 입을 정도로 시스템이 잘 되어 있습니다. 건물이 가동되기 위해 밖으로 내뿜는 열기들은 밖의 기온들을 올려놓았고 이제는 겨울이 어린 시절의 겨울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밖에서 놀다 들어오면 추운 몸을 녹이기 위해 안방 아랫목 이불속으로 몸을 집어넣었습니다. 밖에서 부는 외풍들이 방으로 들어와 방 곳곳이 차가운 기운이 있습니다. 그래서 겨울에는 외풍을 잡기 위해 창에 비닐을 둘러싸 놓고 바람이 들어오는 틈 사이를 테이프로 붙여 놓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추운 겨울이 되면 이중으로 힘들었습니다. 쌓여가는 집안일을 끊임없이 해야 하고 그것에 추위도 견뎌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부엌은 지금은 상상하지도 못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장작과 솔가지로 군불을 때고 밖의 칼바람은 지속적으로 부엌 안을 차갑게 했으며, 가만히 있으면 추위가 온몸을 감싸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군불을 새벽부터 때면서 가족을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을 준비하셨고 가족들이 따뜻한 물로 씻을 수 있도록 물을 데워 놓으셨습니다. 곤로에는 청국장찌개가 끓고 있었습니다. 겨울이 되면 추운 날씨를 잊을 수 있도록 몸에 단백질을 넣어주는 음식이었습니다.


발효된 청국장과 송송 쓸어 넣은 김치, 그리고 두부가 조합이 되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청국장찌개가 만들어지면 추운 겨울을 잊을 만큼 너무 맛있습니다. 다른 반찬은 필요가 없습니다. 찌개 국물을 덜어 갖지은 따뜻한 흰밥에 비벼 먹으면 입이 너무 행복해집니다.


청국장 냄새가 온 집안을 감싸지만 청국장 냄새는 추운 겨울의 기운을 녹여주는 역할을 해 줍니다. 초등학교 등굣길에도 그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 겨울에는 청국장찌개가 우리 집만이 아닌 동네 모든 집안의 음식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향기였습니다.


어머니는 청국장을 만들 때마다 정성을 다하셨습니다. 콩을 정성스럽게 씻고, 발효시키는 과정 하나하나에 어머니의 손길이 닿았습니다. 그 손길은 가족에게 따뜻함을 주기 위한 섬세하고 정성스러운 과정이었습니다. 따듯한 방안에 온도를 조절하며 청국장이 만들어지는 시간을 인내하고 기다리시면서 자식도 그런 마음으로 인내하며 키우셨습니다. 어머니의 손끝에서 탄생한 청국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예술 품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청국장이 그리워지는 추운 겨울입니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찐한 청국장의 맛을 보고 싶지만 그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청국장이 맛있다고 찾아간 음식점도 어머니의 찐한 청국장찌개 맛을 내지 못합니다. 오래 끓이며 나오는 청국장찌개의 깊은 맛이 아닌 옅고 아쉬운 맛이었습니다. 추운 겨울을 잊을 수 있도록 하는 어머니의 정성은 없었습니다.


요즘은 청국장찌개를 즐겨 먹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냄새를 부담스러워하고 청국장찌개의 깊은 맛을 만나보지 못한 세대들이 성장해 왔기에 청국장찌개는 다른 음식들에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집안에서도 청국장찌개를 끓여 먹기를 귀찮아합니다. 어머니의 추억이 담긴 청국장찌개는 이제 맛보기 힘든 음식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어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어머니의 청국장을 다시 맛볼 수 없지만 그 냄새와 맛은 여전히 가슴속에 살아 있습니다. 겨울에는 어머니의 청국장찌개가 늘 떠오릅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음식에 담기고 그 추억들이 추운 바람을 막아 주는 힘이 되어 줍니다.  



어머니의 청국장을 다시 맛볼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쉽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주었던 따뜻함은 자식들 마음속에 아직도 살아 있고 어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청국장찌개는 아직도 입의 기억을 살아 있게 합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어릴 적 추억이 그리워지고 어머니의 흔적들이 너무 소중하게 온몸으로 느껴지는 시간인가 봅니다. 


어린 시절 추워서 떨던 시절이 지금보다 훨씬 불편했지만 이제 와서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나이가 들어감에 대한 대가인 듯합니다. 겨울이 유난히 우리들을 추억 속으로 끌어들이는 이유는 차가운 겨울바람을 어머니 등으로 혼자서 막으시며 보내셨던 힘든 시간들이 나이 들어감에 더 생생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흰 두부가 올라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청국장찌개가 어머니를 그립게 합니다. 음식 하나가 이렇게 어머니의 시간을 담고 있다는 게 너무 고맙습니다. 죽기 전까지 어머니의 따듯함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오늘은 꼭 청국장찌개를 먹어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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