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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현대인을 위한 자연 치유, 새벽 명상

자연의 흐름 속에서 찾는 진정한 나

by WOODYK
천수천형千樹千形. 천 가지 나무에 천 가지 모양이 있다는 뜻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가진 유일무이한 모양새는 매 순간을 생의 마지막처럼 최선을 다한 노력의 결과다. 수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나무의 선택은 늘 ‘오늘’이었다. <나는 나무에서 인생을 배웠다. _우종영 저>



물들어가는 가을, 살아있음의 증명


어느새 북한산이 물들어 갑니다. 가을이라는 계절에 나무들은 자신의 색을 바꾸고 있습니다. 자연 속의 공기가 선선해지며 청청함도 더욱 강해집니다. 자연은 그렇게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증명합니다. 그냥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조용히, 어떤 때는 격렬하게 움직입니다.


죽은 나무의 멈춤보다 살아있음의 흔들림으로 우리들에게 철학을 이야기합니다.


두렵거나 외롭거나 불행한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치료법은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들이 조용할 수 있는 곳에, 하늘과 자연과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곳에 가는 것이다. 그래야 모든 것이 원래대로 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안네 프랑크 >


자연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우리에게 삶의 진리를 전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자연이 갖고 있는 철학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놀이터로만 생각했습니다. 봄이면 산에 올라가 나물도 캐고, 여름이면 나무 그늘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가을이 되면 밤나무 밑에서 익은 밤을 줍고, 겨울이 되면 비닐 포대로 눈썰매 타던 그런 놀이터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냥 늘 곁에 있는 그런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고등학생이 되며 자연과는 조금씩 거리가 멀어집니다. 집에서 학교, 학교에서 집의 왕복 운동으로 시간을 보내며 자연 속에서 나를 풀어놓은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사회생활을 하게 되고 모든 삶이 도심에서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주변의 자연보다는 주변의 화려함과 풍요 속에 건조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러움이 사라지는 도심 속의 나


문명화된 도심의 화려함이 늘 주변을 감싸고 한순간도 스마트폰과 주변의 편리함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세상은 더욱 빨리 바뀌고 순식간에 수많은 새로운 것들이 생겨납니다. 정적과 조용함이 사라지고 분주함과 소음이 지속되는 도시가 되어갑니다.


주변을 감싸던 자연의 모습은 조금씩 사라지고 어느샌가 자연이 자리하던 곳이 도심으로 변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아지고 자연이 자리했던 곳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자리를 차지하며 사람들의 욕망을 덕지덕지 붙여 놓게 됩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길들여지고 익숙해집니다.


딱딱한 건물들과 건조한 시멘트 속에 사람들의 삶이 시작되고 우리는 그 속에 익숙해지는 미물이 되어갑니다. 자연이란 것을 느낄 새도 없이 그냥 현대화와 문명화에 적응하는 사람들이 되어 갑니다. 익숙함과 편안함은 끝이 없어집니다.


문명화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마케팅의 현란한 말에 흔들리고 주변은 불필요한 물건들로 쌓여갑니다. 물건을 사며 쾌락을 느끼고 행복함은 남들에게 들키고 싶어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며 자신의 플렉스를 드러냅니다. 그게 행복이고 주어진 권리를 누리는 멋진 존재로서 자신을 밀어붙이게 됩니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시간을 흘려보냅니다. 그 속에 자연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 가까이에서 물질과 욕망을 좇다가 삶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부족함을 만들어 낸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테두리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며 하루의 일과를 바삐 살아가며 자신의 테두리를 지켜나갑니다. 그래도 늘 부족합니다. 월급을 받고 생활을 해 나가도 부족함은 끝이 없습니다. 나아지기보다 주변은 늘 부족함으로 살아갑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것이 늘 부족함을 말하게 하는 시스템입니다. 사람들이 돈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자본주의는 더욱 강화되기 때문입니다. 돈은 신용을 만들고 신용은 빚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강화는 사람들에게 돈의 부족함을 더욱 강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은행들은 빚으로 자신들의 이윤을 남기는 장사를 하게 되고 어느 순간 자신도 빚을 갖고 있는 존재로 살아가게 됩니다. 빚을 갚아 나가기 힘들지만 현대 문명의 시스템 속에 살아가기 위해 더 소비를 하게 되고 그 굴레 속에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는 않게 됩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버거운 순간이 있다. 그럴 때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는 것도 용기다."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멈출 줄 모르고 달려가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자연이 전달해 주는 각성


자연은 그런 시스템에서 떨어져 자신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자연에서 탄생되는 힐링의 의미는 혼돈과 어지러움, 유혹과 번잡함을 잠시 잊고 나라는 본래의 사람을 찾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자연은 자연스러움을 간직합니다. 인위적인 것은 자연이 아닙니다. 자연스러움이 있고 그들의 위상을 드러내기보다 그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보여주기 위함도 아닙니다. 존재함 그 자체가 자신입니다. 겉치레를 둘러매고 누구에게 뽐을 내고 싶어 안달하지 않습니다.


생존을 위한 버팀은 한번 싹을 틔운 곳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나무들의 공통된 숙명이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피할 길이 없고, 사람을 비롯한 다른 생명체의 위협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버틴다고 하면 굴욕적으로 모든 걸 감내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평생 나무를 지켜본 내 생각은 다르다. 나무에게 있어 버틴다는 것은 주어진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 내는 것이고, 어떤 시련에도 결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버팀의 시간 끝에 나무는 온갖 생명을 품는 보금자리로 거듭난다. <나는 나무에서 인생을 배웠다. _우종영 저>


가을 풍경1.jpeg


하지만 움직이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겉치레를 조금은 벗어버리고 자연스러움을 이해하며 자연스러움에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바람이 불며 우리가 쌓아왔던 내 주변의 먼지들을 날려 버리라고 말합니다. 도심 속에 살아가지만 그 도심 속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자연스러움과 자연을 느끼며 자신의 부자연스러움과 인위적 모습을 조금은 덜어내기를 바랍니다.


아침 햇살이 창가로 들어오고 창문을 열었을 때 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집안으로 들어오면, 몽롱했던 정신이 맑아지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자연은 늘 움직이고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그런 자연스러움과 움직임을 우리가 이해할 때 우리는 살아있고 자연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자연으로서 가치를 느낍니다.


삶의 가치도 물질의 많고 적음이 아닙니다. 자연 속에서 느끼는 살아있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척도가 아닐까요.


새벽, 자연이 주는 각성의 시간


멀리 있는 숲 속을 찾기가 어렵다면 주변 속에 자리 잡은 작은 자연들을 느끼며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북한산 자락 밑은 공기가 차갑습니다. 차갑다는 것은 몸에서 유지하는 체온보다 밖의 공기가 낮다는 것이고, 공기가 차가워지면 몸은 긴장하며 새로운 뇌의 가동을 통해 차가움에 적응하려 합니다.


정신이 바짝 들고 자연이 주는 각성에 하루를 자연스러움으로 채워가려 합니다. 차가운 공기가 들어오는 시간이 나를 잠시 정신 차리게 하는 시간입니다. 아직 어둠이 온 세상을 간직하고 있지만 저 멀리 서는 서서히 태양이 떠오르고 있을 것입니다.


어둠도 밝음도 그리고 차가운 공기도 우리들이 느끼지 못하는 모든 것들이 자연의 일부입니다. 자연이 주는 삶의 패턴을 새벽에 느끼며 자연스럽게 몸도 반응합니다. 밝아지는 정신이 오늘 하루를 지탱해 줄 에너지가 됩니다.


자연이 전달하는 에너지 속에 인간은 살아갑니다. 자연이 움직이는 힘 속에 인간은 살아있게 됩니다. 가을의 새벽 아침, 새소리조차 잠들어 있는 어두운 새벽 시간, 자연의 차가운 공기를 창가로 들여보내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가진 것을 버리고 비울수록 마음은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진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우리는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자연이 나에게 준 시간과 각성을 간직하며 하루의 힘을 보충해 봅니다. 자연은 말없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가르쳐줍니다. 살아있다는 것, 숨 쉬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순간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축복받은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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