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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혼 Nov 15. 2022

<이른 나이에 이른 '기레기'> Silence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외면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

올해 연말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징크스가 찾아왔다. 괜찮아질 줄... 괜찮아진 줄 알았으나 트라우마라는 과거의 껍질은 항상 내가 안정적이지 않을 때를 노린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 다만 웃고 떠들고 미소질 수 있던 사람들과의 추억이 가득한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상황을 생생하게 지켜본 이후 거울을 잘 보지 못한다. 이를 닦을 때도 고개를 숙이고 닦는다. 벌써 2주가 지났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정말 정상이 아니었다. 나 자신에게 "그만 울자"라고 말하면 더 울음이 나오고 심폐소생술(CPR)을 했으나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휩싸여 '나는 살인자다'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에 갇혀 있었다.

  

웃프지만 기자질을 한지도 어느새 6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비명과 눈물로 얼룩진 극단적 상황을 보고 직접 경험해온 탓인지 트라우마는 나에게 익숙해져 버렸다. 


2년 전 치료가 필요하단 것을 알게 되고 내 주치의이자 정신건강 의학계의 권위자인 백종우 교수님을 뵈었다. 지난 2주간 어땠는지 현장에서 무얼 하고 그 이후에 내가 지금 당장 무얼 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게 됐고 할 수 있게 되어 행복하다고 말씀드렸다.  


비정상(?)에서 정상이 되어가고 있다고 단정할 순 없다. 내 행동은 여전히 똑같다. 육체적 정신적 피로와 녹슬어져 가는 상태가 변화되지 않았다. 다만 몇 가지 바뀐 것이 있다면 마음가짐이다. 내가 무얼 할 때 가장 행복한지를 찾은 것이다. 이른바 '기쁨의 눈물'이다. 나라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기뻤다. 가장 위험하면서도 사소한 거다. 그 누군가에게 도움조차 되지 않으면 쉽게 죄책감이라는 수렁에 빠지기 때문이다. 


백 교수님과 처음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정말 많은 위로를 얻었다. 환자와 주치의가 아닌 기자와 전문가의 입장이었으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기사로 마무리를 지으면서 위로와 격려라는 따뜻함을 느꼈다. 


교수님은 "과거 일본의 경우 백신 사고로 어린이들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진상 규명이 이뤄지고 정부 후속대책이 마련된 바 있다. 시간이 지나 유가족들이 더 이상 볼 수 없는 아이들에게 ‘발생해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너희들의 희생 덕에 우리 사회와 다른 아이들이 조금 더 안전해졌다’고 말할 수 있었을 때가 가장 치유적이었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슬프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은 현실 그 자체다. 극단적 상황만이 극단이라는 추진을 통해 변화가 생긴다. 


안타깝지만 여전히 “놀러 가서 죽었는데 왜 추모하고 애도하나” “자업자득”이라며 2차 가해를 일삼는 일은 빈번하다. 대부분의 2차 가해자들은 MZ세대다. 한국의 '트라우마 감수성'이 사실상 제로라고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이유다. 


백 교수님은 “다양한 애도 방식도 존중돼야 한다고 본다. 다만 희생자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혐오를 표현하는 것은 2, 3차 가해가 될 수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여과 없이 영상을 유포하는 등은 다른 사람에게 심각한 고통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유족을 향한 2차 가해는 정부가 지난달 31일 ‘사망자에게 위로금 2000만원, 장례비 최대 1500만원 지급’ 지원 대책을 내놓으면서 심해졌다. 도의적 책임을 지는 이가 없던 상황에서 돈 얘기부터 나오자 일부 청년들은 “놀다가 죽은 이에게 내 세금을 왜 주느냐”는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냉혹한 사회라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말을 내뱉을 필요도 없다. 결국 이 또한 정부의 ‘판단 미스’다. 백 교수는 “정부가 피해 보상 여부나 액수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관례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2001년 9·11 테러로 남편을 잃은 유족을 만난 적이 있는데, 정신과 치료비용은 보건복지부 관할 하에 평생 무료로 지원되고 테러 피해에 따른 배상은 법무부 관할로 장기간 조사와 협의를 통해 지급됐지만 어느 매체도 액수를 기사화하지 않았다고 들었다”면서 “한국에서는 금액이 언론에 보도된다고 하자 놀라워하더라”고 말했다.


영국의 경우 살인 범죄 사망자의 유족에게 국가가 최대 10억원을 지원하는데 ‘국민의 안전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해 발생한 불행에 배상하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오늘도 이태원 참사의 여러 유가족분들과 2시간가량 통화를 했다. 8년 전 내가 겪었던 기자생활을 하며 내가 마주하고 내가 보호해야 했던 여러 사람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이겨낸 경험들을 말씀드렸다. 


유가족분들은 여러 우려와 걱정 속에서 생활하고 계신다.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또 시체팔이 한다'는 폭언에서 살고 계신다고 한다. 그래서 정치권에서의 연락이 와도 걱정부터 하신다고 한다. 여야를 떠나 어떤 방법으로 소통해야 진정성이 있을지를 고민하고 계신다. 


이번에 참사 희생자의 명단이 공개된 것을 두고는 언젠가는 그리되어야 하지만 동의를 얻지 않고 공개한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말씀을 하신다. 특히 "지금은 때가 아니다. 성급한 결정을 했던 것 같다"고 하셨다. 


우선 협의체가 제대로 구성되어야 한다. 현재 시민단체와 법조계 등 여러 곳에서 유가족분들에게 도움을 드리려 하고 있다. 그러나 유가족분들은 이리 말씀하신다. "물에 빠져 있는 위기 상황에서 누군가 손을 건네면 잡고 빠져나와야 하지만 누구의 손을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정치권과 법조계를 포함한 정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입장이 아닐까?  나는 이렇게 유가족분들의 위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장담과 확신이란 것만큼 되돌아올 때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기에. 본인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을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 상황만큼 무저갱에 빠지는 상황은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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