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증오 그 한 끗 차이
벌써 2023년의 1분기가 끝났다. 정말 눈 깜 할 새에 흘렀다. 지난달은 정말 내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3월이라고 할 수 있다. 실패하진 않을까?라는 불안감과 엄습하던 두려움은 성공적 보도를 통해 '성취감'으로 다가왔다. '기자질'을 하면서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1년 가까이 취재했었지만 의미 있는 보도를 하지 못했었다. 인터뷰를 했던 아이의 죽음과 눈앞에서 벌어지는 가해기업의 은폐 시도는 "인간이라는 생물은 괴물이다"라는 문장을 머리에 각인케 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유효하지만 징크스를 깬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말 JTBC 탐사팀 최광일 선배와 약 두 달간의 공동취재 끝에 검찰과 경찰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 전체와 일부 생존자의 금융정보를 조회한 사실을 파악하고 윤희근 경찰청장의 사과를 받아냈다. 작지만 의미 있는 보도였다고 선배들에게도 평가받는다. 검찰과 경찰의 비인간적 수사 문제를 지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보도를 마치기 전까지 난 피해자와 유가족을 위한답시고 내 존재 이유를 찾아 헤매던 수년간의 세월을 이기심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쓰레기라 옥죄며 모든 상황에 대한 예상은 비관과 부정으로 자리 잡았었다. 그 예상이 빗나가면서 이번에는 내가 그리 못된 사람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알려줬다.
그렇게 소리치고 "나대지 말자"라는 생각을 머리에 박아 넣으면서 다듬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던 것 같다. 아직기가 막히고 잘 나가는 글쟁이가 되지는 못한다. 다만 '좋은 취재와 기사를 쓸 줄 아는 사람'으로서의 자격은 갖춰 가고 있다는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먼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 갈길이 멀지만 타인을 위한 배려와 희생이 있어야 '좋은 사람'이 되어갈 수 있다는 생각은 확고해졌다. 지금껏 내 취재 과정에 그 생각을 묻히려 해 왔다. 감정과 상황에 지배당하지 않는 것이 우선이었다. 나 자신의 상황은 중요치 않고 피곤에 절어 눈이 따가워도 괜찮았다.
과거에는 잇단 실패로 나 자신을 혐오하고 증오했으나 징크스를 깨고 나니 이해되기 시작했다. 수고했어 나쁘지 않았어 잘했어 고생했다는 말을 나 자신에게 여러 번 해주었다. 하도 힘든 상황을 겪어봤던지라 지금도 여전히 공감이라는 것에 무리가 있지만 이제 노력하는 상황에서의 예상은 조금 바뀌었다. 어쩌면 내가 손을 대는 것들이 항상 부정적인 결말을 초래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한 끗 차이다. 증오하고 혐오하기 이전에 나 자신의 다른 인격을 마주 보고 안아주려 하고 이해해보려 함이 선행되는 게 더 좋은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항상 그렇지는 않겠지만 시도해도 나쁠 건 또 없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소중한 이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곧 세월호 9주기다. 내가 기자를 하게 된 이유기도 하고 인생이 180도 바뀌게 된 4월 17일 오전 11시 반의 시간은 점점 무뎌져 간다. 요즘 20대 초중반의 동아리 후배들은 사실 세월호 참사를 자세히 알지 못한다. 거의 10년 전의 일이라 본인이 초등학생일 때의 사건인 이들도 있다. 사회적 아픔을 피부로 느꼈을 리 만무하기도 하다. "아끼던 이가 살아있었다면 이제 20대 후반이다. 너희들의 선배가 됐을 수도 있겠지"라고 던져봐도 고개만 갸웃거리는 이들도 상당하다. 내 가방에 항상 붙어 있는 배지를 보고 "그거 왜 붙이고 다녀요?"라고 묻기도 하지만 '진지충'이라 여길까(맞기도 하지만) 자세한 얘기는 꺼린다. 그만큼 현세대의 '트라우마 감수성'은 현저하게 낮다. 내 주변에도 꽤 많아 상당한 거리를 두는 편이다.
또 하나의 참사가 발생하면서 비슷한 상황이 흘러갔지만 난 앞으로도 잘 이겨낼 수 있다. 이제는 지금의 삶과 이 직업을 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렇게 8년 차 기레기가 됐다. 그 과정에서 겪은 트라우마가 정말 나아졌다고 생각하면서도 감정적 공감 자체가 되지 않는 이질적 모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