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결과 그리고 배반자
무던한 4월이 지났다. 어느새 기온은 영상 20도를 넘으며 곧 폭염이 올 것임을 알린다. 4월부터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까지 의미 있는 기사를 쓰진 못했으나 사소한 경험들은 많았다. 그동안 JMS와 관련된 취재에만 열을 올렸다 보니 과거에 취재했던 사건들과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연장선을 그리지 못했다. 당분간 이 선이 이어질 것 같지만 소식은 지속적으로 접하려 노력 중이다.
천성적 우울의 나날이 흐른 가운데 지난 10일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해 11월부터 취재했던 사건의 성과가 나타났다. '키다리 아저씨'를 자처하며 오갈 데 없는 아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보호종료아동센터 대표인 안모 목사가 성폭력 혐의로 구속됐다. JTBC 탐사팀 최광일 형이 최초보도를 했고 나와 <투데이코리아> 김성민 선배가 약 두 달간 지속적으로 취재하면서 안 목사의 범죄 정황 및 행위에 대해 검증해 나갔다.
올해 초까지 사건을 담당했던 경기북부청은 안 목사에 대한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주장에 대해 하나하나씩 검증하고 정황을 확인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으로 일관했다. 법조계에서 "수사가 해도 해도 속도감이 너무 없다"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경찰의 소극적 수사 때문이었을까? 당시 일부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거나 수개월간 불안감에 시달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그들은 점점 나아질 수 있을까? 최근까지는 일부로 연락하지 않았다. 어제의 성과 이전까지 도와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죄책감과 동시에 원망하진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한 피해자에게 연락이 왔다. "기자님, 고마워요. 기자님 잘못한 것 없어요."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몸을 감싸며 또 키보드를 눈물로 적셨다.
지난 3월부터 취재를 시작한 기독교복음선교회(JMS) 관련해서는 한 충격적인 제보를 받았다. 물적 증거와 정황이 뚜렷했다. 아직 당사자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진 않았으나 만일 사실이라면 수십 년간 국민들을 속인 것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 정명석에게 성폭력을 당한 한 피해자 A씨와 2주 전에 만났을 당시 물었다.
"정명석에게 성폭력을 당하셨을 때 맨 처음부터 '성범죄'라고 인지하셨을 수도 있지만 또 다른 피해자들 중 일부는 피해를 당했음에도 정명석에게 세뇌를 당했기에 인지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비슷하게 현재도 피해자들이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정명석만큼은 아니지만 이용하거나 뒤통수를 쳤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어떻게 하실 요량이시냐."
"기사 안 써주시면 안 돼요?.... 못 버틸 것 같아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여전히 취재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취재를 끝내고 기사를 쓴 이후 피해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진 않을까? 정명석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가라앉고 프레임이 180도 뒤바뀔까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또다시 "나 때문이다"라는 죄책감에 갇힐까 봐.
어쩌면 좋을까? 지금도 모른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인 걸까? 아니라고 못을 박고 직업에 충실해야 하는가? 타인의 죽음에 모르쇠로 일관해야 하는가? 깊은 고민에 빠진 지 한 달이 다 돼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