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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혼 Dec 03. 2023

<이른 나이에 이른 기레기> Blunt

괴물이 되진 말자

7개월 만에 글을 쓴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 새로운 인연들도 생기고 나 자신을 대하는 자세도 많이 좋아졌다. 약을 끊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져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도 덜하다. 가끔 술 처먹고 취해 질질 짜는 등의 오버를 떠는 것만 빼면 말이다. 안 운지도 꽤 됐다. 난 신이 아니기에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고 스스로를 인정하면서 속이 뻥 뚫리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실수를 연발 중이다. 멈춤 없이 다듬고 감정에 무감각해지자는 스스로와의 약속은 뻔한 결말이었다. 


한 달 전 소주 5병을 처먹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길 나눴다. 내가 글을 쓸 때마다 자주 언급하는 양반이다. 광일 선배와 필리핀을 다녀오면서 나름 재밌고도 위험한(?) 보도를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6개월간의 취재 끝에 '마약왕 박왕열'에 관한 보도는 그렇게 끝이 났다. 법무부의 소극행정 문제를 지적하고 옥중 마약 유통 실체를 언급했다는 의미가 있었다. 실제 박왕열을 만나고 전화통화까지 했으니 나름 열심히는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얼마 되지 않아 이태원 참사 1주기가 됐다. 변한 건 없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는 현실은 "우리가 열심히 한 게 맞나?", "정말 잘했나?", "더 열심히 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죄책감을 심어줬다. 트라우마 공감대가 현저히 낮아진 현 사회는 죄책감이란 못을 더욱 세게 박아 넣었다. 고작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주치의셨던 백종우 교수님께 말씀드렸다. "개인주의의 집단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교수님... 이게 앞으로의 세대에게 시대정신으로 이어진다면 그 세상은 멸망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배려가 사라진 사회. 각자의 정치적 경제적 정서적 빈곤으로 인해 더 낮은 곳에 있는 타인을 향한 따뜻함은 황폐화됐다. 요즘 내 주변에 결혼을 하는 지인들이 적지 않다. 대부분은 꿈도 꾸지 못한다. 경제적인 이유와 자기 인생에서의 손해를 언급하는 이들이 많지만 난 다르다. 혐오가 만연해진 세상에서 나 자신만 행복한 것은 이기적이라는 생각만 든다. 아직 난 건강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아직 정립되지 않은 오염된 생각의 마침표는 언제 찍힐지 모른다.     


이선균 마약 사건 보도에는 나의 경솔함이 담겼다.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이른바 재벌 3세로 잘 알려진 황하나씨를 언급하기도 했다. 관련 보도만 약 5년을 했다 보니 감정을 배제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사실상 <단독>에만 몰입하는 괴물이 됐다. 첫 보도 이후 2주가 지나서야 경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지만 부끄러웠다. 분노와 개인적 괘씸함이 담긴 위험한 기사는 아직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되지 않은 이들에게 "내가 죽어야 되나"라는 오판을 가져다줬다. 실제 일부 피내사자들은 나에게 "기자님 제가 그냥 죽을게요"라고 전하기도 했다. 죽음과 극단적 선택이라는 단어를 밥 먹듯이 내뱉는 이들이라고 해도 나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건 분명했다. 


최근의 실수를 종합해 본 결과 난 여전히 괴물이었다. 아니 아직 겸손하지 못하고 신중치 못하더라. 선배들과 난 요즘따라 '괴물'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한다. 누군가에겐 동경과 존경의 대상이었던 이들을 보며 괴물이 되진 말자고. 나에게 괴물이 되지 않는 법은 간단했다. 더 많은 자책과 옥죄기. 그러나 이젠 이런 건강하지 않은 방법으로 대처하진 않으려 한다. 책을 읽거나 더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들이 바라보는 다른 사회를 이해하며 아직 죽지 않을 가치가 있다고 되새긴다. 


이 생각은 부산 돌려차기 피해자인 A 작가님을 보고 더욱 확신하게 됐다. 내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이기적이었던 거다. 작가님은 여전히 바보 같고도 이해하기 힘든 플랜의 연장선을 그리는 중이다. 성폭력 스토킹 피해자를 위한 법률의 미비점을 지적하고 그들이 한 데 모여 공감할 수 있는 대책도 구상 중이다. 백 교수님과 YTN 라디오 김혜민 선배는 작가님을 두고 이리 말했다. "인생을 여러 번 산 것 같다. 피해당사자가 이렇게까지 해내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소통을 자주 하면서 나 또한 오히려 배우는 게 많다. 관련 사건을 깊이 있게 취재했던 것도 아니다. 단지 혐오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 무언가를 그릴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보태드릴 뿐이다. 이런 작은 뿌듯함이 내가 살아가는 삶의 가치가 됐다. 기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보편적 괴물이 되고 싶진 않다. 이기심이라는 욕망의 감정이 인간의 본질이기에 더욱 무감각해지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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