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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희 Jun 06. 2020

내향인이 나설 차례

정희의 일기 #6


책방을 3개월 만에 오픈하고 일주일 동안 너의 진화를 지켜보았어.

‘알 껍질 밖의 세계’를 완전히 뚫고 나온 엄청난 괴력을 말이야. 몸 쓰고 마음 쓰고 정말 고생했어.

나는 사부작 사부작 몸을 사리면서 문을 열고 워밍업을 했단다.  다시 돌아오니까 내 자리를 찾은 기분 오랜만이었어.        


우리를 오래 지켜본 사람들이 얘기하지. 둘이 엄청 잘 맞는 것 같은데 성격은 정말 다르다고. 어떤 뜻에서 하는 말인지 구체적인 건 모르겠지만 다르다는 것은 확실해.

우리는 서른 넘어 만난 친구니까 내 어릴 적 얘기를 처음 꺼내 볼까 해.     


초등학교 다닐 적에 말을 한마디도 못 하고 온 날이 많았어. 집에 돌아와서야 화석이 된 혓바닥을 꺼내 놓았지.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이렇게 말을 안 해도 되나? 나 이상한 거 아닌가...’ 하고 속으로 걱정을 했다니깐. 선생님 입에서 ‘김정희’하고 이름만 불러도 얼굴이 뜨거운 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화끈거리고 눈꺼풀까지 마비된 느낌이었어.    

 

‘얌전한 아이’     


교실 안 인싸와 아싸가 가장 쉽게 구분되는 척도. 활발하고 거침없는 성격을 ‘가진 자’는 선생님과 친구들의 인기 독차지. 거기에 공부까지 잘함. 그것을 ‘못 가진 자’는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는 투명한 아이가 됨.     

 

나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교실에서 ‘마음대로 자리 정하기’였어. 무리가 형성된 아이들 혹은 인기 많은 아이들은 서로 같이 앉겠다며 난리였지. 나같이 소극적인 아이는 쭈뼛쭈뼛 잉여존재마냥 남은 자리에 앉았어. 가장 큰 공포는 ‘나랑 앉고 싶은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었어. 아직도 한번씩 꿈에 나와.     


차츰 나도 ‘가진 자’가 되고 싶었어. 성격을 바꿔 보려고 엄청 노력했지. 중학교 짝꿍이었던 그 친구를 지금도 만나는데 그때의 나를 ‘엄청 웃긴 아이’로 기억하고 있는 거야. 하루를 나 때문에 울고 웃었대.

지금 생각하니 참 다행이었어. 그 친구는 원래 웃음이 많은 아이였거든.

주로 선생님 흉내, 개그맨 흉내를 내며 놀았는데 짝꿍은 엄청난 리액션을 하면서 나를 봐주고 있었던 거야.

그때 나는 ‘아, 내 안에도 흥이 있었네. 그렇다면 가망 있어.’하고는 밝은 내일을 꿈꾸던 기억이 나.    

 

여고생 시절엔 운동 잘하고 쾌활해서 인기가 많았던 친구가 있었어. 한 계기로 그 친구와 친해지게 되었지. 의리까지 있는 친구라서 어딜 가나 늘 나를 챙겨주더라고. 내가 장단 맞춰 너스레를 떨거나 우스꽝스럽게 말을 하면 깔깔깔 웃으며 그 애가 말했어.     


“미친, 넌 뭘 해도 어색해”     


그 너스레를 사회에 나갈 때까지 질질 끌고 간 거야. 첫 회사생활은 근거도 없이 세 보이고 싶은 마음도 한몫했지. 그냥 나의 내성적인 성격을 아무도 모르게 덮어 씌우려 했던 것 같아. 나이 차가 있는 선배 여직원에게 눈을 부릅뜨고, 과장님에게 버럭하고 돌아서서 쫄깃해진 심장을 가라앉혔지. 객쩍은 혈기까지 한몫했던 철없던 시절이었네. 참, 부끄럽다.     


며칠 전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어.

미국의 작가 수잔케인은 <콰이어트>지에 현대 세계사가 외향적인 사람을 선호하는 이유를 분석했대. 19세기 개인이 가져야 할 자질은 명예, 도덕성, 예절, 진실성이었지만, 20세기의 개인은 매력, 에너지, 카리스마를 보여줘야 했다는 결과야.  한 인간 안에는 다양성이 존재한다만 외향인에게 속하는 저 3요소는 버거운 사람이었던 거지. 너무 힘들었단다. 이상 20세기 말 내향인이 살아간 너덜너덜한 이야기였어.      


서서히 ‘가진자’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김정희 답게’ 살자고 마음먹었어. 뭘 하려고 했던 나를 버리니까 차츰 자연스러워지더라고.  “미친, 넌 뭘 해도 어색해”라던 그 친구의 말, 대단한 통찰력이었다니까.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자아를 꺼내놓았더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다수 안에서 잘 견디지 못한 나는 학창 시절 늘 단짝 친구가 있었듯 지금도 일대일 친밀한 관계를 더 좋아해. 코드가 맞는다 싶으면 그냥 나의 사람으로 받아들여. 그걸 구분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마주 보고 침묵해도 불편하지 않는 사이야.

     

관계에서 오는 불필요한 감정 소모, 피로감이 꽤 많았는데 마스크가 엄청 큰 역할을 하고 있더라. 동네를 지나가다가도 인사하기 애매한 사이었거나, 얼굴은 아는데 누구인지 기억하는 동안 먼저 아는 척해오는 민망한 상황이 사라졌어. 그리고 애써 웃어 보이느라 고생했던 입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거. 여자들이 꾸밈 노동에서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다는 거.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니 자연스럽게 혼자 누리는 시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게 사실이야. 스펙 쌓고 경쟁하고 성공을 추구하던 인간은 가고 ‘개인의 성장’에 관심을 두는 분위기로 바뀌어 간다고 해. 타인에게 집중하지 않고 나에게 집중한다는 것은 언제나 옳은 일이지.      


‘성장’이라는 힘을 알고 있어. 나 같은 사람이 책방에서 모임을 이끌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잖아. 결혼 후에도 나의 고민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탐색하는 시간이었어. 혼자서 서점이나 도서관 갈 때가 제일 설레고 즐거웠어. 그때 알게 되었지.

더 나아가 모임을 만들었고, 8년째 이어오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고. 가장 좋아하는 일이 책을 보는 시간이라면,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모임을 준비하고 사람들 앞에서 진행해야 하는 일이었어. 말이 어려운 사람은 정말 꾹 견뎌야 하는 일이지. 집에 돌아오면 뿌듯함과 자괴감이 동시에 들었어. 그렇게 시간이 쌓이니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업그레이드되었구나 싶다.

여기까지 딱 한 명의 친구가 있어서 가능했어. 누군지 말 안 해도 알겠지만.

화려한 인맥 없어도 함께 가는 친구 한 명만으로 삶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몸소 겪어오며 알았어.

성장은 자기 성찰, 견디는 힘, 동지 이 세 가지가 참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디지털 세상이 깊숙이 들어와 있고 얼마든지 나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지. 초연결 시대에 성격이 문제가 되는 일은 사라졌어. 말과 글 또는 그 무엇으로도 나의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오은아가 유튜브에 「읽다익다 TV」를 만들어 능수능란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며 실감하지. 나는 글과 그림을 남기는 플랫폼에 내 삶을 발행할래.     


두근두근 한 발짝 나서 볼까.     


내향인 업글인간 정희 씀.





https://brunch.co.kr/@ok5euna/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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