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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희 Jan 02. 2022

사람, 떡국, 환대

우리 넷은 제주도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늦은 아침을 먹으러 근처 검색한 맛집 식당을 찾았다.

매생이가 들어간 닭곰탕이냐, 그냥 닭곰탕이냐 고민하던 사이 주방에 있던 식당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사근사근한 목소리의 그녀가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오늘은 메뉴 준비를 안 했어요. 새해이기도 하고 일 년 동안 찾아주신 고마움으로 떡국을 준비했어요."

"아~떡국요? 그럼 그거 주세요."


우리처럼 처음 찾아온 사람들이 있는지 둘러보니 관광객으로 보이는 가족이나 연인들이 대부분 테이블을 채우고 있었다. 막걸리 한 사발과 떡국을 든든히 먹고 덕담을 주고받고 가는 동네 사람도 제법 있다.

미닫이 출입문 앞에 가득 담겨있던 꼬치전과 생선전, 떡이 접시에 담기고, 주방에서 바로 나온 따끈한 배추전과 잡채가 푸짐하게 접시에 담겨 막걸리와 함께 우리 테이블에도 놓였다.

그리고 사골로 우린 떡국 한 그릇이 내 앞에 놓였다.

주방과 홀 사이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 부부는 넉넉한 말들을 잊지 않았다.

"더 드시고 싶은 것 있으면 말씀하세요. 뭐 부족한 것은 없어요? 맛은 괜찮아요?"

어제 봤던 사람처럼 다정했다.


'이렇게 정성 들인 푸짐한 상을 받아도 되는 걸까?

막걸리를 그냥 내어 주는 건 서비스일까. 떡국은 그럼 얼마인 거지?'


조금 지나 누가 봐도 동네 사람이라는 걸 알 만한 남자분이 양손에 커피믹스 한 박스, 비타민 음료 한 박스를 들고 왔다. 멋쩍은 웃음과 친근한 인사를 짧게 주고받더니 주방 앞에 놓고 간다. 그 광경을 보니 갑자기 마음이 몽골몽골 해지고 나도 모르게 속에서 뭔가 차오른다.


나는 떡국에 후추를 뿌렸고, 한 숟가락 뜨자마자 이 낯선 곳에서 어릴 적 먹었던 떡국 맛이 떠올랐다.

이 작은 공간에 모인 사람들은 환대를 받은 환한 얼굴로 새 해 첫날, 첫 끼를 그렇게 맞이하게 되었다.


모두가 떠오르는 해를 보러 새벽잠을 설치고 일어날 때,

새벽잠을 몰아내고 달걀물을 풀고, 전을 부치고, 떡국 끓일 준비를 하고, 배추를 다듬었겠구나.

그것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내가 헤아릴 수 있는 크기를 훨씬 벗어난 품의 세계를 발견한 하루였다.

옹졸한 마음과 이기적인 마음이 올라올 때 내가 받은 이 떡국 한 그릇을 떠올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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