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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광 Jul 26. 2022

(1) 공중방역수의사?

"졸업하면 어디 병원 가지?

"무슨 과 석사 하지?"

"기초는 별론가?"

"요즘 대동물이 돈 많이 번다던데..."


수의예과(예과) 2년, 수의학과(본과) 4년으로 이루어진 수의과대학 6년의 과정 중 마지막 학년인 본과 4학년이 되고 수의사 국가시험을 공부할 때쯤, 동기들 사이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레퍼토리다.


사실 수의대에 온 우리들 중 명확하게 어떤 수의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입학한 사람은 거의 없다. 성적에 따라 대학에 온 친구들도 상당히 많고, 수의사가 되고 싶어서 수의대에 왔더라도 'OO 하는 수의사'까지 미리 철두철미하게 고민하고 대학에 온 친구들은 거의 보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수의사 중 일반 국민들이 생각하는 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들고 개나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을 진료하는 수의사는 절반이 겨우 넘는다. 나머지는 제약회사, 사료회사 등에서 회사원이나 연구원으로 근무하기도 하고 또 소와 같은 산업동물 수의사로 농촌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수의사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그리고 농림축산검역본부나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같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서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수의사도 20%나 된다.


고작 이만 명 남짓의 직군이지만 저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하다 보니 수의대를 졸업할 때까지 방학마다 수의대생들은 이곳저곳으로 실습을 떠나지만 결국 졸업할 때까지 수의사의 영역을 모두 체험해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미필 남성 수의사들에게는 좋게 이야기하면 3년의 유예기간이 생긴다. 바로 수의사관(장교) 또는 공중방역수의사로 병역의 의무를 지는 기간이다. 


보통 수의사 국가시험은 매년 1월 실시되고 수의과대학은 2월에 졸업을 하게 된다. 겨울이 끝나갈 2월 말, 미필 남성 수의사들은 잉크도 안 마른 수의사 면허를 든 채 병무청에서 진행하는 역종 분류를 통해 수의장교 또는 공중방역수의사로 임의 배정을 받게 된다. (**우선 지원할 경우 중위 임관 및 대위 전역인 수의장교로 선발이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수의사관 후보생들은 임의 배정을 기다리며 공중방역수의사로 배정받기를 희망한다.)


가축방역과 동물위생을 책임지다.

공중방역수의사


'공중방역수의사'란 무엇일까? 수의사 면허를 가진 수의사들 중 병역의 의무를 아직 다하지 못한 미필 남성 수의사의 일부는 우리나라의 가축방역과 동물위생을 책임지는 가축방역관(또는 동물검역관)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대체 복무를 하게 되는데, 이들을 공중방역수의사라고 부른다.


공중보건의사나 군의관이 의사나 치과의사, 한의사를 위한 제도라면 수의사는 수의장교와 공중방역수의사로 나뉘며 수의장교가 대한민국 국군에 소속되어 군의 위생이나 방역을 담당하고 있다면, 공중방역수의사는 '공중방역수의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가축방역관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전국에는 2022년 현재, 약 450명 정도의 평균 나이 30세가 안 되는 공중방역수의사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농림축산검역본부와 광역시도의 동물위생시험소, 그리고 기초시군청에 소속되어 있다. 논산에 위치한 육군훈련소에서 3주(2020년 복무를 시작한 본인까지 4주였으며 이후 모든 대체복무는 3주로 변경되었다.) 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제외하고 36개월의 복무를 하게 된다. 육군훈련소에 입소할 때는 다른 훈련병들과 다를 것 없이 머리를 빡빡 민 채로 들어가게 되며 훈련소에서는 공중보건의사가 될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들과 같은 방을 쓰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4월 초중순 밤톨이 머리를 한 공중방역수의사들은 복무를 시작하게 된다. 


3년 내내 같은 지역에서 복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1~2년 근무 후 도내이동(ex. 경상북도 내에서의 이동)이나 도간이동(ex. 전라남도에서 농림축산검역본부로의 이동) 등이 가능해진다. 광역배치기관에 따라 이동의 방법이나 절차 등이 조금은 다를 수 있지만, 각 광역배치기관의 대표 공중방역수의사를 하거나 울릉도와 같은 도서지역에서 근무할 경우는 우선순위가 주어진다. 본인은 1년차 때는 농림축산검역본부 천안가축질병방역센터라는 곳에서 도내(기관 내) 이동을 통해 2년 차부터는 용인가축질병방역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공중방역수의사들 중에는 가보지 못했던 새로운 지역을 경험해보는 것을 즐기는 이들도 있다. 3년 동안 제주도에서 근무하며 휴일에는 서핑을 즐긴다거나 평생 도시에서 살아오다가 시골의 한적함을 즐기는 이, 심지어는 낚시를 해보고 싶다며 바다 근처의 배치기관을 자처하는 이도 존재한다.


공중방역수의사가 배치되는 기관은 크게 '시군청', '광역시도'의 동물위생시험소, '농림축산식품부'의 농림축산검역본부로 나뉜다. 


시군청에 배치되는 공중방역수의사는 전체의 절반 정도 되는데 시청이나 군청의 농업기술센터 축산과 내에서 해당 지역의 농장을 방역 실태를 감독하거나 거점소독시설 등과 같은 해당 지자체가 관리해야 하는 시설을 관리를 담당한다. 조류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나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 Swine Fever) 등과 같은 질병이 발생해서 농장의 닭이나 돼지를 살처분할 경우, 그 모든 절차를 관리 및 감독하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동물위생시험소에서 근무하는 공중방역수의사는 주로 관할 지역의 농장을 방문하여 가축들을 시료를 채취(채혈 등)하여 해당 농장에서 키우는 가축들이 질병을 가지고 있는지, 백신을 통해 항체는 적절하게 형성되었는지 등을 점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마지막으로 농림축산검역본부는 공항만 등 사무소에서 외국으로 나가거나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동물이나 축산물들에 대한 검역 검사를 진행하거나 가축방역센터 등에서 관할 지역의 방역 정책에 대한 최종적인 승인 및 검사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공중방역수의사 또한 그곳에서 다른 공무원들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근무시간 동안 맡은 업무를 끝내고 나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게 공중방역수의사의 최대 장점이다. 주말과 휴일을 이용하여 수의대를 다니는 동안 바쁜 학업 탓에 하지 못했던 취미 생활을 즐길 수도 있다. 


반면 학업에 더 매진하는 이들도 있다. 그동안 부족했던 수의학 분야 전공책을 다시 정독한다거나 수의학 온라인 강의  플랫폼을 통해 실제 임상 수의학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경영전문대학원 등 대학원에 입학(기관장의 승인이 있다면 다닐 수 있다.)하여 새로운 전공을 탐구하기도 하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하여 또 다른 공부를 시작하는 이들도 있다. 


퇴근 후 자기 계발이나 취미 생활을 하는 것은 일반적인 직장인과 다를 것이 없다. 다만, 수의사의 인생에서 여유 시간이 가장 많이 주어지는 기간인 만큼, 근무 시간이 아니라면 지속적인 딴짓을 열심히 추구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바디 프로필을 찍기 위해 운동에 전념하거나 골프나 테니스를 배우는 이들도 있고 1주일에 두세 권의 책을 읽어버리는 이도 있다. 


물론 힘든 점도 많다. 소수이긴 하지만 농장 점검을 위해 방문을 하였는데 공무원들에게 너무 시달린 나머지 낫을 들고 위협을 당한 이. 농민이 뿌린 오물을 뒤집어써 하루 10번도 넘게 샤워를 하였다는 이. 위에서 언급한 살처분 현장에서 수천, 수만 마리의 동물들이 땅에 묻히는 것을 보고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얻었다는 이. 함께 일하는 공무원들이 외지인이라는 이유로 지역감정에 기반하여 따돌리거나 심한 경우에는 폭행 사건까지 경험한 이도 있었다. 이처럼 공중방역수의사가 겪는 어려운 점은 수없이 많다. 3년이란 시간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공중방역수의사는 수의사 면허증을 가진 사람이자, 임기제 국가공무원 신분이며, 대체 복무자다. 수의사이기 때문에 수의사법을 당연히 준수해야 하며 국가공무원법, 병역법, 공중방역수의사에 관한 법률 등 까지 따라야한다. 그에 따라 동물방역과 축산위생의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하지만, 공중방역수의사들은 그러한 법들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수의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역할을 앞장서서 수행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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