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가 낭만이 사라진 요즘이다. 월간에세이 기고글에 쓸 소재를 찾으며 과거를 헤집다 문득 그 시절의 나는 참으로 낭만스러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적인 자극, 사실적인 정보, 과학적인 분석을 최고로 여기며 그저 속지 않기 위해, 그래서 더 성공하기 위해 살고 있던 지금 , 문득 낭만의 부재라는 심심한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는 아침이다.
낭만에는 먼저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상상력이 발동하기 위해서는 무언가의 부족함이 필요하다. 시각적, 청각적 정보의 부족함이던 금전의 부족함이던 , 무어라도 부족함이 있어야 낭만이 모습을 드러낸다. 상상으로 머릿속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소설 읽기가 낭만이고 , 차 속에서 운전하는 대신 햇살을 받으며 골목을 걸어야 낭만이다.
현실을 살짝 왜곡해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각도 필요하다. 타인의 생각을 알지 못하여 제 맘대로 상대와의 관계를 발전시킬 때가 낭만이고 이어폰을 통해 음악을 들으며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광경을 뮤직비디오로 만들어버리는 것도 낭만이다. 여행 가기 전 짐을 싸며 이미 머릿속으로 출발한 비행기가 낭만이고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먹기 전 군침을 흘리며 맛을 상상하는 것이 낭만이다. 비록 도착한 여행지가 고생천지고 음식이 제 값보다 맛이 없어도 낭만이 있다면 또다시 그 현실을 미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낭만이 좋다.
우리나라에 낭만이 있다면 덴마크엔 휘게가 있다. 휘게란 몸과 마음이 행복해지는 상태라고 간단히 기술할 수 있지만 이를테면 '촛불 켜진 겨울밤 친구들과 도란도란 나누는 수다'라던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날밤'같은 단어들을 통해서 그 의미를 더욱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휘게를 생각하면 일상에서 낭만을 찾는 법도 더 쉽게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퇴근길에 내가 좋아하는 꽈배기를 사서 넷플릭스를 보며 먹기, 자전거를 타고 가고 싶은 만큼 달려보기, 연고도 정보도 없는 도시에 무작정 가서 눈에 보이는 아무 식당에나 가서 밥 먹기. 새벽에 친구동네 편의점 앞에서 맥주 마시기. 친구와 사놓고 한 번도 안 입은 옷들을 입고 만나서 패셔니스타인척하기, 여자친구, 남자친구와 백화점에 가서는 500일의 썸머와 같은 영화처럼 상상 속 신혼집을 생각하며 놀기 등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이렇게 많은데 참 그동안 나는 돈, 일, 명예만 전부라 생각하고 살았던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글을 쓰고도 점심에는 다이어트 식단을 먹고 저녁에는 운동을 할 것이다. 낭만 없이 고양이를 쓰다듬고 낭만 없이 일을 하고 일을 하러 출장을 할 것이다. 그게 현실이니까. 다만 오늘부터는 조금 더 낭만스럽게 살 수 있도록 시도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