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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중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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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버들 May 03. 2023

꽃 진 자리에서

  

 각기 다른 봄꽃들의 임무가 끝나가고 있다. 모습에, 향기에 벌과 나비들은 어느새 분주해진다. 미련 없이 떨어지는 꽃잎을 본다. 바람이 지나가면 가는 대로, 곤충의 흔들림에도, 계절의 민감에도 떨어지고 떨어진다. 꽃 진 자리 잎이 무성하게 작은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다.


 선물 같은 꽃과 나무. 산중 언덕을 한 바퀴 둘러보며 주변의 식물을 본다. 작년과 다르게 어떤 나무는 풍성하게 꽃을 피웠고 또 어떤 나무는 그렇지 못하다.  자두는 꽃이 가지마다 닥닥 붙어 꽃의 전쟁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꽃이 많이 피었다고 해서 자두가 많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농약을 뿌리지 않기에 벌레와 그해의  날씨 변화로 생각보다 떨어지는 열매양은 많다. 그러고 보니 꽃만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에 비해 정작 청이나 술을 담을 수 있는 매실은 꽃이 제대로 피지 않았다. 아마도 작년보다 수확량이 적을 것이다. 얼마 전 비탈진 언덕 사이 배나무에 아이보리 꽃이 만발했다. 유일하게 하나인 배나무. 이 배나무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30살은 넘은 것 같다. 여기 내가 오기 전 시간과 머문 시간을 더하니 얼추 나온 나이다.

 

 식물에서 채움과 비움을 배운다. 계절이란 한해를 반복하며 변화에 맞게 적응하고 대응한다. 한 해 꽃과 열매로 풍성함을 즐겼다면 에너지 소비량으로 인해 다음 해는 해거리를 한다.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위해 하는 대응법이라 할까.  식물들은 민감하게 스스로 지키고 스스로 생을 마친다.  

 


라면을 끓일 때 나는 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양계장의 닭들과 사지를 결박당한 과수원의 포도나무 사과나무배나무 들과 양식장에서 들끓는 물고기들을 생각한다. 라면을 끓일 때 나는 사람들의 목구멍을 찌르며 넘어가는 36억 개 라면의 그 분말수프의 맛을 생각한다.

                                                                                       ― 김훈,『라면을 끓이며』     


 인간 중심으로 동식물이 만들어지고 있다. 김훈 작가는 사소한 부분에서 동물의 삶을, 틀어진 나무의 모습에서 인간 중심의 세계를 생각한다. 나를 떠나 그다음의 세계를 생각하자. 인간의 눈에서 벗어나 동식물의 눈으로 본다면 좀 더 인간도 자연도 건강해지지 않을까.

 예쁜 사과는 예쁘다. 하지만 맛있는 사과는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예쁜 사과를 원하고 좋다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그 이상의 농약이 분사되고 나무들이 결박당한다. 원래 나무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이곳 식물들은 건강하다. 농부가 게으른 탓일지도 모른다. 이번 봄도 선물 같아 덕분에 꽃구경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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