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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버들 Jul 25. 2023

유황 연기가 배었다

  

일본 홋카이도에 위치한 노보리베츠 지옥 계곡을 다녀왔다. 산 일부가 사라진 또는 무너진 자리에서 뿌연 연기가 여기저기서 솟아올랐다. 지옥이라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까? 황량하고 조금은 무서워 보이며 땅속에서 화산활동이 계속 진행되는 곳. 작은 구멍 안에서 유황 연기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곳. 생명체가 살 수 없을 것 같은 곳. 지옥의 고정된 이미지는 어둡고 축축하고 무섭다.  하지만 이곳은 뜨거운 지열을 피해 푸른 이끼와 이름 모를 작은 풀들이 자라고 있다. 오히려 지옥보다는 태초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명이 시작되는 곳. 땅속 화산과 함께 생명이 태어나고 움직이는 곳. 살아 움직이는 자연이다.    

  

전날 일행과 함께 들렸던 지옥 계곡을 혼자 마음껏 느끼고 싶었다. 숙소에서 천천히 걸어 15분 정도의 거리, 멀지 않기에 조식을 포기하고 가기로 했다. 새벽시간이라 길거리는 조용했다. 커피를 사기 위해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별다른 게 없는 거지만 타국 편의점에서 뽑아 먹는 커피의 맛은 다르다. 커피를 뽑기 전 동전투입기에 동전을 넣기 위해 선반 위에 동전을 쏟았다. 일본에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동전의 활용도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우받지 못한 동전들이 여기서는 제법 쓰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서랍 구석에 있던 일본 동전을 찾아 준비해 오기를 잘했다. 일엔, 십 엔, 백 엔 동전 고르는 맛이 있다. 필요한 만큼의 동전을 골라본다. 작고 앙증맞은 일 엔부터 백 엔까지. 우리나라 ATM기기는 동전을 받지 않지만 일본은 지폐 칸과 동전 칸이 있어 동전도 입금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있는 동전통에 수북이 쌓인 십 원, 백 원짜리 동전들이 갈 곳을 잃어 주저앉은 모습과 다르게 이곳에서는 동전의 가치를 느낀다.     


커피를 들고 지옥 계곡으로 향했다. 새벽 시간이라 사람은 거의 없었다. 벤치에 앉아 땅속 구멍에서 나오는 하얀 연기를 쳐다보았다. 삭힌 달걀노른자 냄새가 났다. 유황 냄새와 함께 새벽의 물기가 느껴진다. 작은 협곡 사이에서 힘차게 솟아오르는 연기와 흐르는 물소리 그리고 산새 소리는 환상적인 계곡을 만들어 주었다. 뿌연 연기 사이로 사슴 두 마리가 물을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에서는 사슴을 흔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한참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연기는 계속해서 뿜어지고 있는 사이 커피잔에 커피는 다 먹고 없다.  좀 더 마시면서 머무르고 싶었지만 내려갈 시간이 다 되었기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계곡의 모습을 좀 더 눈에 담았다. 내려가는 길에 동양인 여자와 서양인 여자 한 명이 올라온다. 한 사람은 영상을 찍으면서 걸어간다. 또 한 사람은 나와 눈인사를 하고 위로 올라간다. 그들도 무언가를 담아 갈 것이다.


숙소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탔다. 의자에 앉아 가는데 유황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끙끙대며 옷에 냄새를 맡아보니 유황냄새가 배었다.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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