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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버들 Sep 18. 2023

남해로 가는 길

풀벌레와 동행

           

혼자 길을 떠나는 새벽길. 남해를 향해 달린다. 교통체증 없이 잘도 달린다. 천천히 가고 싶은데 천천히 갈 수가 없다. 간혹 뒤에 따라오는 또는 가고 있는 그 차를 배려할 필요가 없는데도 바짝 거리가 짧아지면 밟는다.  6시간 걸려 가는 거리. 생각 없이 가고 싶지만 생각이 떠오르는 거리의 시간. 나는 왜 그곳을 가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가고 있는가. 되묻는 거리의 시간. 앞을 향해 페달을 밟는다.      


서해대교를 지날 때쯤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고속도로 갓길 옆 풀숲에서 들려오는 소리일 것이다. 이 빠진 모습처럼 파인 얕은 야산을 지난다. 소리는 내 오른쪽 귀를 따갑게 하며 계속 따라온다. 그래 가을이니까. 밤이고 낮이고 겨울이 되기 전 있음을 알려야 하니 종일 소리를 전파하겠지. 달린다. 고속도로 길옆에 풀이 없다 야산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계속해서 소리가 들린다, 뒷좌석에서. 차바퀴 속도의 소리일까. 아니다. 피곤해서 환청처럼 들려오는 소리일까. 아니다. 그래, 풀벌레 소리다.     

                   

           차 뒷좌석에서 울리는 소리. 풀벌레      


 그렇다면 길가에 머물러 있는 풀벌레는 아니라는 것이다. 뒷좌석에 허락 없이 무임승차한 풀벌레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뒤를 돌아볼 수 없다. 앞을 향해 달려야 하는 고속도로이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풀벌레의 모습으로 앉아 있을 것이다.      

차 안에 울려 퍼지는 풀벌레 소리. 오른쪽 귓속으로 들어가 북을 치듯 고막을 두드린다. 소리는 달팽이관 속으로 계속해서 빙글빙글 들어가 머릿속 안을 가득 메운다. 어지럽다. 신체의 기능이 분리되는 시간. 눈은 앞을 응시하지만 모든 신경이 오른쪽 귀로 몰린다. 한쪽 귀와 얼굴 반쪽이 사라지는 느낌이라 할까. 몸은 하나라고 생각했다. 무의식적으로 내 몸이 알아서 움직이기에 분리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눈과 귀는 각기 다른 생명체이다. 다른 곳을 향해 있는 신체 부위. 단지 작은 풀벌레 한 마리로 인해 분리와 합체 그리고 한쪽으로 몰리는 현상을 느끼고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차 안에서.    

  

그렇게 오른쪽 귀가 얼얼할 정도로 무감각해질 때쯤 휴게소로 들어갔다. 이상하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래 차 안에 있을 리가 없지. 착각일 것이다. 잠시 풀벌레 소리를 잊고 커피를 마신다. 조용하다. 내가 가는 곳. 남해. 방에서 바다가 보이는 곳. 창문을 통해 아침의 일출을 보고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며 마음을 다잡는 곳. 그곳을 생각하며 다시 페달을 밟았다. 남해를 향해 가는 도로는 드넓다. 익어가는 벼, 구름이 한가득, 눈이 부시게 깨끗한 하늘.


고속도로를 나와 남해 도로를 달린다. 빨간 신호다. 멈춤과 출발이 횡단보도 교차점에서 기다리거나 지나간다.  신호를 기다리며 나를 생각한다. 꼭 무언가를 얻기 위해 떠나는 길은 아니다.  너무 멈춰있어서 다시 출발해야 하기에 떠나온 길이다. 그리고 풀벌레 소리도 멈춤과 동시에 다시 들리기 사작했다.  이번엔 엔진 쪽에서 들린다. 언제 이동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제 궁금증보다 함께 길을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얼굴 본 적 없지만

차 안 스피커 설치 없이 울려 퍼지는

어딘가에 있을 풀벌레와 함께

우리는 바다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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