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강아지, 토끼, 돼지
가족이 생겼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아이의 양말인형

by 오진미



우리 집에는 고양이, 강아지, 돼지, 곰, 토끼가 산다. 네 식구 살기에도 가끔은 좁다고 느껴지는 공간에서 새로운 가족이 무려 9명이나 늘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매일 저녁이면 관리사무실에서 층간 소음에 신경 써 줄 것을 당부하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혹시 우리 집이 주범이 되는 건 아닐까. 서로 다른 성격의 동물이 함께 함에도 너무나 조용하다. 참 이상한 일이다.


비밀의 우리 집 얘기를 풀어봐야겠다.

“엄마 나 고양이나 강아지 키우면 안 돼?”

“엄마 내가 다 돌봐줄 수 있어, 밥도 주고 목욕도 시키고 똥도 치우고.”

“안 돼.”

몇 년 전부터 계속된 나와 막내의 대화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어 하는 아이와 내가 결론 내지 못하는 문제다. 집안 분위기가 이보다 좋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한 날, 내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을 만큼 기분 좋아 보일 때 아이는 그 틈을 비집고 돌아온다. 간곡히 부탁하기도, 어떤 목표를 내걸고 소위 거래 아닌 거래를 하려고 할 때도 있다. 그때마다 나는 단박에 거절한다. 평소라면 ‘한번 생각해 보자’라는 말로 아이의 요구에 답 하지만 이때만큼은 여지를 남겨 두지 않았다.


끊임없는 설득과 설명의 과정을 거치며 한 해, 두 해 그렇게 보냈다. 함께 모여 사는 아파트는 동물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게 내 논리의 중심이다. 우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없고 모든 걸 사람의 손으로 돌봐줘야 하는데 어린아이가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 강아지 고양이가 짓거나 우는 소리가 위아래층 이웃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등 생각나는 모든 이유를 아이에게 나열한다.

“아니 엄마, 어제도 엘리베이터에서 봤잖아. 4층에도 강아지를 키우고 있고 1층도 키우던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 거야?”

아이도 내 말에 쉽게 의지를 꺾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 사례를 들어 내 생각이 잘못된 건 아닌지 물음을 던진다. 때로는 그럴싸한 질문으로 당황시킨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순간이다. 아이 말처럼 대한민국 전형적인 주거공간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상당수가 반려동물을 키우며 살고 있다. 무리 없이 잘 지내 있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니까.

사실 난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족으로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우는 일에 자신이 없다. 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목록 1순위 오를 정도다. 그렇다 보니 아이의 희망 사항에 답해주기 어렵다. 대학생 시절 치와와를 키우는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헐레벌떡 도망치듯 나왔던 기억이 선명하다. 남들은 강아지 털의 부드러움이 좋다는데 난 피부에 닿는 느낌이 이상하리만치 싫었다.


아이가 원하고 그리 어려운 게 아니라면 경험하게 해야 한다는 게 평소 생각이다. 그럼에도 살아있는 생명을 키우는 일은 주저하게 된다. 잠깐의 즐거움과 호기심만으로 결정 내리기에는 책임져야 할 일이 많다는 걸 잘 아는 까닭이다. 잔잔한 호수보다는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일 때가 많은 내 마음을 알기에 더욱 그러했다. 아이를 위한다는 이유로 결정 내리기에는 사방이 지뢰밭이었다.


아이도 커가면서 지금의 상황으로는 어렵다는 걸 깨달았나 보다. 어느 날 낡은 양말을 찾았다. 서랍을 뒤져 양말 몇 개를 던져주었다. 뭘 하려는 건지 그려지지 않았지만 두고 보았다. 네임펜으로 양말에 디자인을 한다. 실과 바늘 등 재봉 도구가 있는 상자를 찾는다. 바늘구멍에 실을 꿰어 달라 해서 기꺼이 해주었다. 자기 방에 들어가더니 한참을 나오지 않는다. 집이 적막강산일 만큼 조용하다. 한 50분이 지났을 때다.

“엄마 어때요? 고양이 만들었어.”

분홍색 작은 고양이다.


며칠 후 아침부터 검색할 게 있다며 유튜브를 본다. 엄청 진지하게 커다란 눈을 더 크게 뜨고 초집중한다. 그러고 나서는 이제는 쓸모없어진 양말을 찾는다. 온 가족 양말 상자를 뒤져 적당한 것을 찾았나 보다. 가위로 양말을 자르고 어려운 바느질을 조심스럽게 한다. 뭣이 힘들었는지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기분이 별로다. 금손인 언니에게 도움을 청한다. 동생이 어려워하는 일에 언제나 달려가는 우리 집 해결 반장이다. 몇 분을 함께 만들더니 분홍색 볼이 귀여운 고양이 ‘퐁퐁이’가 태어났다.


새로운 친구가 생길 때마다 하루 종일 손에서 양말 인형을 놓지 않는다. 잠잘 때도 작은 그것을 손에 꼭 잡고 꿈나라로 간다. 그렇게 강아지와 고양이 식구가 늘더니 이제는 예닐곱을 넘었다. 어느 날은 귀여운 돼지 ‘햄’도 만들었다. 굴러다니는 단추로 얼굴과 입을 만들고 통통하게 살 오른 모습이 보기만 해도 유쾌하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인형들을 보면서 내 이기심 때문에 애가 힘들었던 건 아닌지 미안해졌다.

“집에서 엄마가 고양이랑 안 된다고 했잖아. 그래서 양말인형 만들기 시작한 거야?”

“응 엄마 그런 것도 있고, 심심할 때 친구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내가 비염이 있어서 동물 털이 날리면 몸에 안 좋으니까 키우기 어렵다고 엄마가 말했잖아.”

아이가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꺼냈다. 동물 털이 호흡기 건강에 적이라는 얘기를 흘려보냈었다. 잠깐 이었는데 맘에 두고 있었다니 아이의 마음 깊음에 한참이나 멍해졌다. 언제나 아이니까 진지하지 않고 단순하다고 넘겨버렸는데 말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지혜도 배운다. 야옹 하고 반응하는 진짜 고양이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을 나름 받아들였나 보다. 마음을 담은 인형에 숨결을 불어넣는 아이의 적극적인 모습이 반갑고 고맙다. 만약 나였다면 불만을 쌓아두거나 원망하기에 바빴을 텐데 말이다.

구름이, 퐁퐁이, 포슬이, 하양이 군밤이, 햄, 토토, 반달이 모두가 우리 집 식구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얼굴이다. 마음 가는 대로 특징을 살려 이름도 지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이의 반려동물들은 이름을 짓고부터는 특별한 존재로 다가온다.


오늘 아침, 막내가 졸린 눈을 비비고 어제 만든 구름 이를 안고 일어났다. 밤이 무섭다고 하는 아이에게 든든한 친구가 되어 준 모양이다. 상황을 탓하는 일에만 매몰된 일상이었다. 유연함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아이를 보며 불편함과 불안함의 원인을 탓했던 나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