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이별을 배웠다

보니하니 종영하던 날

by 오진미


어디선가 훌쩍이는 소리다.

“엄마 ‘보니 하니’ 오늘 마지막이야. 어떡해, 정말 좋아했는데.”

아이 얼굴이 온통 눈물범벅이다. 얼마나 흘렸는지 모르겠다. 온 힘을 다해서 엉엉 우는 까닭에 얼굴 전체가 붉다. 동그란 큰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큰비가 오는 날 생긴 작은 맑은 연못 같다.


“다음 주부터 새로운 거 할 거야. 그것 보면 더 재미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그만 울자. 응”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티비의 속성상 프로그램이 생기고 사라지는 게 예삿일이라 여겼던 까닭이다. 어른의 눈으로 바라보면 아이의 모습은 천진난만하다. 저리도 헤어짐이 아쉬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준비로 바쁘기도 했기에 내 일을 하기로 했다.


좀 잠잠하나 싶더니 다시 눈물 폭포다.

“보니 하니 안녕!”

프로그램 진행자에게 인사하며 그동안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혼잣말로 나열하기 시작했다. 간간이 들리는 아이의 얘기에 귀 기울여 보니 진심이 전해왔다. 아이의 일시적인 감정이라고만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이는 6시면 하루도 빠짐없이 프로그램을 챙겼다. 진행자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웃고 이들의 질문에 답하거나 때로는 열심히 몸을 흔들었다. 한 시간 동안 거실 중앙을 독차지한 채, 마치 방송국 생방송 현장에서 같이 호흡하는 사람 같았다. 어느 날은 인사 메시지를 전하는 코너에 수십 번의 도전 끝에 성공했다. 자기 이름이 불리자 하늘을 나는 것처럼 기뻐했을 정도였다.

“엄마 내 이름을 하니가 불러줬어. 정말 믿기지 않아. 이런 일이 생기다니 말이야.”

한동안 만나는 이에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감탄사를 연발했던 적이 아이에게 몇 번이나 있었을까.


<생방송 톡! 톡! 보니하니>는 어린이를 위한 만화와 퀴즈, 이야기 등을 모은 종합 선물세트 같은 것이었다. 아이에게는 힐링의 시간이었다. 보니와 하니가 편지를 읽으며 그동안 고마웠던 여러 가지를 얘기한 후에 막을 내릴 시간이 다가오자 아이는 참았던 눈물을 다시 쏟아낸다. 안쓰러울 정도로 아이는 진지했다.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엄마로서 가만히 있다는 게 미안할 정도다. 아이 마음을 공감하기보다는 내 식대로 괜찮을 거라고 얘기했다. 위로가 아닌 공허한 말들이었다. 몇 번을 그리하다 시간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는 멈추었다.


저녁을 먹고 자기 전까지 몇 번이나 아쉬움과 아픔을 얘기했다. 학교에 다녀와서는 저녁의 행복의 사라졌다는 듯 상실감은 상당했다. 며칠이 지나도 그러했고 현재까지 진행형이다. 그제야 아이가 이별을 알아가는 큰 사건이었음을 짐작하게 되었다. 단지 좋아했던 프로그램이 종영됐다는 하나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별에 대해 어른들의 단어로만 생각했다. 아이들은 금세 잊어버리게 될 거야 하는 편견이 작용한 터였다. 다시 만나기 힘들다는 전제는 두려움이고 애써 보내려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아이는 이 프로그램을 사랑했던 것 같다. 간간이 방송을 시청하는 모습을 보면 저리도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아이는 꽃처럼 피어났다. 키득키득 웃거나 춤을 춘다. 출연자들이 맘에 들지 않을 때는 목소리를 높여 반대 의사를 정확히 밝혔다.


티비에 얼굴을 묻고 한 시간 동안 희로애락의 단면들이 아이에게 다가왔다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다섯 살부터 보기 시작했으니 5년을 훌쩍 넘겼다. 시간이 겹겹이 쌓여 정이 들었던 모양이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느꼈고 아이는 커갔다.


다른 프로그램으로 채워진 첫날, 아이는 마음을 두지 못하는 모양이다.

“엄마 재미없어. 보니하니 보다 별로야.”

실망이 가득한 목소리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지만, 왠지 아이는 기운이 없어 보인다.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로 온 집안을 채웠던 그 시간이 그립다. 아이는 헤어짐의 여러 가지를 경험하는 듯했다. 새롭게 선보이는 것에 마음을 두기는 아직은 이른가 보다.


티비 프로그램에도 저리도 지극한 마음을 쓰는 아이가 사랑스럽다. 한편으론 더 늦게 다가오면 좋다고 여겼을 감정들을 어느새 알아 버린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순진무구한 세계를 오래 지켜주고 싶다.

“엄마 여기 홈페이지 보니까 보니하니 볼 수 있나 봐. 이거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 오랫동안 여기 남아 있을까?”

그리움에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나 보다. 다시 보기를 통해서 그나마 마음을 달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작별의 루비콘강을 건넌 게 아니라 다시 돌아볼 자취들이 충분히 남아 있어서 부럽다.


만남과 이별은 종이 앞뒷면 같다. 언제나 짝을 이뤄 다니지만 망각하기 쉬운 이 둘을 잠깐 들여다보게 되었다. 아이의 이별이 아름다워 보인다. 부럽다. 아이가 다시 들여다볼 무엇이 있어서 괜찮다. 내 가슴속 아픔으로 남은 그것들도 이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슬프지 않은 것들로 채워졌으면 하는 이루지 못할 소망 하나를 그려본다.

매거진의 이전글고양이, 강아지, 토끼, 돼지 가족이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