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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r 21. 2024

쑥국 쑥전

봄을 캐고 먹는 일 

매화를 만났고 좀 있으니 산수유가 피었다.  따뜻한 날이 다가오는 건 분명하다. 겨울이 한창이던 어느 날에 했던 봄날의 약속이 있다.  내게 연락해 오는 고마운 친구들이 어느 날 만나자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봄이 오면 쑥 캐러 가자고 했다. 그때만 해도 정말 가는지, 아직은 먼 얘기라고만 여기고 함께 가겠다고 했다.     


그때가 돌아왔다.  어릴 적 고사리를 두세 번 꺾은 적은 있지만, 나물이나 쑥을 캔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쑥이 어디에 많이 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찬 바람에 커피나 한잔하고 쑥을 뜯자고 해서 찾았던 카페 어느 한 편에 그곳에 쑥이 있었다. 한 친구가 쑥을 캐기 위해서 칼도 준비한다고 전날 알려오니 나도 작은 과도를 갖고 갔다.   

  

별 기대가 없었는데 드문드문 풀 사이로 쑥 같은 게 보였다. 이리저리 보니 그래도 쑥이 제법 자랐다. 손에 힘을 빼고 쑥과 뿌리가 연결된 밑동을 조심스레 잘랐다. 하나 둘 손이 움직임이 잦아질수록 쑥을 캐는 일에 집중하게 된다. 땅과 가장 가까이서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이었다. 지난해 얼마나 땅에 깊이 뿌리를 내렸는지 겨울 추위에 말라버린 나무가 된 쑥 주변에 새순이 돋아나고 있었다.     

쑥과 쑥국 그리고 쑥전

텔레비전에서 봤던 나물 캐는 모습은 정겹고 여유가 있다. 본격적인 농사 시작 전 황량해 보이는 밭에 잡초인 듯해 보이는 것들이 겨울을 보내고 나온 나물이라며, 어르신들이 손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들은 미소를 지었고, 딱 한 끼 먹을 만큼만 준비하고 간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시골에선 그렇게 몸만 움직이면 밥은 굶지 않고 산다는 말도 더했다. 그것을 볼 때마다 그리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게 사는 일이구나 싶어 마음이 가볍다. 

   

삼십 여분을 훌쩍 넘길 만큼 쑥에 집중했는데 비닐봉지는 그리 빨리 가득하지 않다. 그리 길지 않은 동안 시간이 갈수록 꾀가 난다. 몸을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게 불편했다. 시골에서 자라서 과수원에 들락거리며 밭일을 경험했지만 오래전 일이었고, 이미 도시 사람이 되어있었다.     


뜻밖의 수확도 있었다. 눈에 다가오는 초록들에서 가지를 치는 생각이다. 농사를 짓지 않아서 그런지 황량한 땅이었음에도 작은 봄 풀꽃이 보였다. 쑥은 아기 티를 벗어나 제법 힘이 생겼다. 춥다고 옷을 껴입었지만 봄은 저마다 살아가려는 생존의 몸부림으로 땅을 의지해 피어나고 있었다.     


이 삭막한 곳에서도 무엇인가 솟아나는 걸 보면서 봄을 다시 바라봤다. 큰 구름 한 덩이 같은 목련꽃의 아름다움 뒤에 가려진 봄 풍경은 숨죽여있던 자신의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건 다시 세상으로 얼굴을 내밀어야 의미 있다는 사물의 아우성이었다.  

   

검은색으로 변한 작년 쑥 가지는 누구의 발길에서인지 바람 때문인지 꺾여 고개를 숙였다. 그럼에도 그 주변으로 새 쑥잎이 빼곡히 감싸고 있다. 일 년 전 그것이 사라졌기에 다시 새로운 것이 태어날 틈이 생긴 셈이다. 그렇게 쑥은 가고 오며 머물러 있었다.

      

쑥을 장난처럼 캔건 아니었다. 진심으로 식탁에 올린다는 분명한 목적이었다. 마음 같아선 쑥떡을 해서 먹고 싶었지만, 양이 너무 적었다. 현실적으로도 번거로운 게 많아서 이미 마음을 접었다. 옆 친구는 쑥국을 얘기했다. 이쪽저쪽을 오가며 몸을 숙인 만큼 제법 쑥이 모였다.   

  

저녁에는 남편을 위한 쑥 전을 만들었다. 먼지나 마른 잎 없는 것으로만 골라서 한다고 했는데 집에 와서 보니 잎이 바래거나 다른 풀잎이 섞여 있는 등 버려야 할 것들이 많다. 그래도 귀한 것이기에 씻고는 한번 데쳤다.     

차가운 물로 한번 헹구니 양이 정말 적다. 제법 질긴 듯해서 칼로 먹기 편하게 자른 다음 밀가루와 달걀 하나를 놓고는 작은 전을 부쳤다. 쑥 향이 가득할 것 같다는 바람과는 달리 피어나다 달아난 꼴이다. 아쉽지만 양이 적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다음 날 저녁에는 쑥국을 끓였다. 전날처럼 데친 후에 했는데 디포리 육수 국물에 된장 한 숟가락을 더했다.     

 

내가 캔 쑥은 전과 국으로 우리 집 밥상에 올랐다. 마트에서 파는 것을 한 봉지 사서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기분이었다. 내 것이라는 뭔지 모를 뿌듯함이 먼저였다. 봄을 기다리다가도 막상 그때가 되면 맨송맨송하게 지나버린다.   

   

이 봄은 내가 그 현장에 있는 기분이다. 예쁘다는 말로 어느 한 시기를 정의하기보다는 세상에 있는 생명을 가진 것들의 애타는 노력 같은 게 보였다. 자갈과 무엇 하나 자라기 힘든 곳에서도 꽃이 피어나고 쑥이 힘을 내어 커가고, 더 따뜻해질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 뒷산으로 밭으로 바구니를 들고나가 봄에 나는 것들을 캐서 밥상에 올리는 일이 감성보다는 현실적인 삶의 방식으로 다가왔다. 그건 계절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네 부지런한 생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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